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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란 재앙의 날에 가정 자녀 문제 (욜 01:2-4, 사 44:1-4)

첨부 1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 영적 구원에서 끝을 맺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주님께서 노아때나 롯의 때 같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가족적인 구원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의 가정이라야 재앙의 날에도 축복이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을 대조해 보기로 한다.

1. 말세에 새일의 역사에 증인된 가정의 자녀 문제를 가르친 것이니 사44:1-4이다. 본문은 사43장과 같은 증인된 종의 가정에 축복을 44장에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종의 가정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친히 오시어 복을 나리시되 풀가운데서 솟아나는 시냇가의 버들같이 무성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이 임재하는 가정이 아니고는 재앙의 날에 남는 백성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사49:24).

2.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고난을 당했던 자의 가정에 그 가정을 위하여 보수적인 일을 행함으로 자녀를 구원하는 것이다(사49:25). 마지막 환란과 재앙은 원수를 갚아주기 위한 심판의 일이니 억울함을 당하던 가정은 절대적인 피해가 없도록 하나님은 싸워주시기 때문이다(사54:1-3).

3.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몸에 탄생하신 것은 그 목적이 영혼 구원만이 목적이 아니요 그 피를 믿는 자, 참된 이스라엘인 그 자녀로 열방을 얻으며 황폐 되어진 성읍을 복구하여 새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사54:1-3, 계7:9-17).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에 별같이 모래같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사54장 본론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구원을 개인들에게만 국한된다고 생각하면 종말적인 진리에 탈선된 일이다.

4. 하나님은 종들의 자녀에게 역사적인 한 페이지를 남겨 놓는 것이니 그 자손에 손자에게 전할 큰 역사는 환란 중에서 남는 가정인 것이다(욜1:3-4).
우리는 인류 역사가 내려오는 중 크게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는 과거가 아니고 이제 이루어질 환란 재앙에 남는 가정이 되며 남는 자녀가 되는 일이 가장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거룩한 씨로 거룩한 시대를 이루려는 것이 종말의 심판 날에 있는 숨은 비밀의 뜻이 될 것이다(사65:9). 만일 남은 자녀가 없는 심판이라면 이것은 의로운 심판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의 묵시는 목적이 종말적인 환란 날에 재앙은 북방으로부터 올 것이니 여기에서 남는 자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어떻게 남는 자가 나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요엘서의 중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기도 응답과 완전 승리
(욜 2:15-26)

서론

인간 종말에 완전 승리는 어떤 무력이나 권력에 있지 않고, 오직 기도 응답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묵시로 모든 선지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히 요엘 선지에게는 어떠한 기도를 하는 자가 완전한 승리를 이룬다는 것을 더 세밀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제 기도 응답과 완전 승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금식일을 정하는 일이 있어야 됨 (15)

기도라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도 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도 있다. 그런데 완전 승리라는 것은 사랑에 불타는 마음으로 금식하되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있으므로만 열매를 거두게 된다. 금식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은 희생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한다 하여도 자신을 희생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큰 응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북방 환란을 인력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북방을 심판하되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 세력을 이기게 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북방 환란이 올 때에 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북방을 치시려고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다. 금식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최후 극단에 이를 때에 생명을 바치는 일인데, 금식일을 정하고 부르짖는 기도가 없이는 북방으로부터 오는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응답이 나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북방을 들어 환란이 오게 하는 것은 인간 종말에 참된 시온으로 남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낙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금식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일이 된다.

2. 단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됨 (16)

만일 어떤 사람이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만났을 때에 자기 홀로 잠잠히 무엇을 할려고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환란인데 단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불이 일어났는데 대중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 혼자서 잠잠히 그 불을 끌려고 하는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 그러므로 북방 환란이 올 때는 단체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하여 강한 대책을 세워야 된다는 것이다.

3. 남을 구원코자 하는 기도가 있어야 됨 (17)

남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눈물 흘리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된 일이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완전 승리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독생자 그리스도가 만민을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완전 승리를 이루도록 하셨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위기를 만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종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단체적인 승리를 이루도록 응답하시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워져서 북방을 치심 (18-20)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북방을 들어 환란이 오게도 하시며,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 때에 북방을 치기도 하시는 것이다. 예를든다면 막대기를 들어 때리던 자라도 매를 맞는 사람이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 때에 도리어 막대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북방 군대를 들어서 부패한 자들을 치시기는 하지만 거룩한 성회를 열고 부르짖는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방을 쳐 없애므로 말미암아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5.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요, 완전 승리를 목적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원이 당신의 종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나리는 동시에 축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주었던 축복을 빼앗겼던 인간에게 이것을 다시 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에게 잃었던 축복을 다시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금식일을 정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그 난국을 돌파하게 하시는 동시에 새 땅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워지는 일
(욜 2:18-20)

서론

하나님은 위대하고 높으신 분이지만 낮고 천한 인생을 향하여 그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신이시다. 이것은 여호와는 창조주요 인간은 그의 피조물인 동시에 택한 백성은 특히 아끼는 중심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제 어떠한 일에 여호와의 마음이 뜨겁게 움직이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보아 알 수 있다.

1. 인간이 송구하고 기절할 일이 생길 때 (욜 2:6)

하나님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무서운 환란을 당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종말적인 거룩한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이때를 당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자에게 구원이 있고 어떠한 자에게 멸망이 있다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 택한 백성에게 어려운 일이 올 때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2:12-13).

만일 어떤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위급할 때에 배반하고 만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노의 채찍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릴 때 절실히 깨닫고 참된 통회의 눈물로 회개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보고 뜻을 돌이키는 것이다.

3. 급한 환란이 올 때 열심히 성회를 열고 부르짖는 일이다.

만일 어떤 교회가 환경이 좋을 때에는 집회를 열지만 어려운 환란이 올 때 해산하고 만다면 이 교회는 허명무실한 즉 외식의 형식적인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환란이 부딪쳐 와도 열심히 모여서 부르짖는 교회라면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은 뜨거워지는 응답의 강한 역사는 필연코 있을 것이다.

4. 대표자의 간곡한 기도가 있으므로 (2:17)

만일 어떤 종이 어려운 환란이 온다고 교회를 집어 던지고 양떼를 버리고 자기 생명 하나를 보전하기 위하여 도망을 한다면 이것은 삯군의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극도로 교회가 위기를 만날 때 모든 것을 자기가 기도할 문제로 알고 제단 사이에서 울며 부르짖는 호소의 기도가 있다면 그 종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중심에 뜨거워지는 응답이 있으므로 모든 문제는 일시에 해결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적인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북방 군대를 일으켜서 환란을 가져오게 하는 동시에 당신의 백성과 종들의 호소를 듣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북방 군대를 전멸시키고 평화의 새시대를 이루는 것이 종말적인 하나님의 큰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와 심판기의 역사
(욜 2:28-32)

서론

시대를 따라 역사하실 것을 요엘 선지를 통하여 분명히 가르쳐 준 것이 여기 본문이다. 하나님은 시대가 이루기 전에 먼저 이러한 시대에는 이렇게 역사하고 저러한 시대에는 저렇게 역사하신다는 것이 선지의 예언인 것이다. 이제 시대와 역사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여 말할 수 있다.

1.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줄 때에는 어떠한 역사인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코저하여 독생자의 피로 속죄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서 그 진리를 바로 믿고 그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역사를 하시되 남종과 여종을 세워서 역사하시고 더 큰 역사를 하도록 신을 부어주는 것이다(28-29).
다시말하면 성령을 사람의 몸에 부어주는 것은 심판기에 쓰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며 세세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금일 세계 모든 민족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19세기 반기가 지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역사는 이것을 목적한 것 뿐이다.

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캄캄한 흑암 세계가 올 것이다(31). 이와같은 흑암 시대가 올 때의 역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하였다(사41:25).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세상의 정치인들을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같이 밟으리라는 것은 흑암 시대에 역사하는 종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은혜시대에 성령을 받은 종으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적군을 무찌르고 나가는 역사이다.

3. 피할자가 환란을 피하도록 하는 역사이다.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도록 하는 역사이다. 이와같은 역사는 강권 역사이다. 은혜시대에는 신자들의 육체가 쓰러져 죽을 때에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였으나 이 역사는 모든 인류가 다 쓰러질 때 쓰러지지 않고 남은 자가 되도록 하는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요. 은혜를 받되 성령을 천하만민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은혜시대요 다음은 흑암이 덮인 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흑암을 이기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전멸되는 날에 자기의 택한 자로 아무런 피해를 당치 않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시대적인 역사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대를 따라 그 하나님께 순종할 때 시대적인 축복과 구원을 받는 것이다.

스룹바벨의 역사와 심판
(욜 3:1-2, 14-17, 학2:18)

서론

하나님은 과거에 이스라엘 성민이 극도로 부패하여 렘5:1과 같이 예루살렘 거리에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에게 황폐화되어 인간의 힘으로는 다시 성전을 복구할 가능성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방 파사국의 고레스왕을 들어 바벨론을 멸하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마음이 감동되어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을 나리되 스룹바벨이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합세하여 성전 지대를 놓고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동족의 시기와 방해로 성전을 중지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리오왕 2년에 다시 강권 발동을 시켜 스룹바벨에게 권세를 주어서 성전을 마치도록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9월 24일에 학개에게 임하여 지체하지 않고 세계적인 심판이 올 것을 말씀하셨다(학2:18-23).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부패되어 바벨화 될 적에 새로운 스룹바벨에게 순의 역사인 촛대 교회가 이루어지므로써 심판기가 온다는 것을 가르킨 것이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 있더라도 합심이 안 될 때는 하나님은 역사를 중지시켜 이루시고야 심판을 나리신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보다도 동역자가 합심을 하느냐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끝까지 합심이 못되는 경우는 한 사람에게 권세를 주어서 강권으로라도 이루고야 만다는 것이다.

무력 준비와 심판
(욜 3:9-12)

서론

하나님은 심판에 대하여 무력을 준비시켜서 행하는 심판도 있고 하나님이 직접 하늘의 불로 행하는 심판도 있는 것이다. 무력 준비로서 오는 심판은 인종이 전멸되고 남은 백성으로서 지상 왕국을 이루는 것이요 하나님의 불이 내려서 천지를 살라버린 후에는 무궁세계가 오는 것이다. 이제 무력준비와 심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성경을 들어 말한다.

1. 무력 준비와 중동 전쟁 (계9:13-17)

우리 앞에 무력 준비와 인류 전멸이 될 일이 불가피 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성서를 통하여 볼 적에 중동 유브라데 강을 중심해서 잠간동안 일어나는 전쟁은 결박한 네 천사가 놓이는데 이것은 년월일시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천사가 예비했다는 것은 아니다. 천사들이 계시를 요한에게 보일 적에 유브라데 강을 중심하여 전쟁할 준비를 가진 세력은 넷이라고 말한 것은 사대강국이라 보게 된다. 이것은 평화시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계9:20을 보면 삼분의 일이 죽는 전쟁에서 남은 자들은 회개치 아니하고 우상 숭배 살인 복술 음행 도둑질을 하면서 악화된 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전쟁은 아니다. 사대세력이 세계에서 중심지가 되는 중동의 요새지를 탐하는데서 잠간 일어나는 전쟁이다. 이때는 서로 승부를 결하는 것 보다도 큰 무서운 재앙, 인심 악화, 경제 혼란, 종교 흑암 이러한 시대를 잠간 동안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는 하늘의 천사가 동원해서 택한 백성을 보호해 주는 역사가 있을 것 뿐이다. 단11:40-12:1까지 해당된 말이다. 이것은 북방과 남방 구스 리비아(아프리카) 사람이 북방을 시종드는 일이 생겨서 서로 의합되므로 중동 전쟁은 북방의 손에서 열국이 큰 진멸을 당할 위기가 올 때 동방에서 북방을 번민케 만드는 소문이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그때 대군 미가엘이 하나님의 백성을 호위하기 위하여 일어나니 이 환란에서 살 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고 말했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환란이라고 했다. 계시록은 이와같은 일이 있을 때 11장3절에 마지막 증인이 큰 권세를 받아 재앙으로 땅을 치면서 짐승과 전쟁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동북의 소문이라는 말과 계시록에 증인이 권세를 받아서 재앙으로 땅을 친다는 말은 동일한 역사가 될 것이다. 이때는 권세의 역사를 행하는 종이 아니고는 옳은 진리를 증거할 수 없는 때이니 종된자의 심판이 온다고 볼 수 있다. 이때에 증거하던 종은 공중 재림하는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2. 무력 준비와 아마겟돈 전쟁 (계16:16-21)

이때는 주님이 지상 강림하는 때이다. 이 전쟁이 있으므로 세계는 진노의 심판이 불에 사름을 당하니 이것은 세계를 불태우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계17:16-19). 이때에 중동 전쟁이 일어날 때 권세를 행하여 증거하던 종들은 공중 재림하는 주님을 영접하여 휴거를 받게 된다. 이것이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다(계7:2-3). 권세로 환란중에서 역사할 때에는 거짓선지와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것이다. 이때에 거짓선지를 따르지 않고 권세로 역사하는 증인을 따라오던 무리는 삼년반 동안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고 피난을 하게 된다. 이때에 악화된 사회가 오니 이것은 중동 전쟁이 잠간 일어났다가 협상주의로 들어가는 후삼년반이다. 이 협상이라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도록 하는 거짓선지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피난처에 보호를 받는자 외에는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없는 박해가 온다. 누구든지 표를 안받으면 매매도 못하고 심지어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전부 죽이는 박해 때문이다. 이것을 후삼년반이라 한다. 이때 들림 받은 종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보좌 앞에 올라가 왕국 부서가 일한데 따라서 조직이 된다. 후삼년반이 지난 후에 세상을 통치하러 도둑같이 시온산으로 올 때 세계를 사상으로 통치한 짐승과 거짓선지는 멸망을 받게 되는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아마겟돈이라는 뜻은 선과 악의 큰 싸움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정치는 갑자기 망하게 되니 최후 발악으로 세계를 무력으로 불살라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보호를 받은 백성들은 절대 무력적인 불에 살음을 당하지 않고 해변이나 혹은 밀실에서 생명을 보전한다(습2:6-11). 그때 세계가 불타고도 남은 자가 있으니 붉은 군대와 백말 탄 군대이다. 그때 백말탄 성도의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쳐 없이 하는 결전을 내린다(계19:11-21).
이렇게 되므로 남은자가 승전을 한 백말탄 군대와 종족이 남게 되고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은자가 전멸에 들어가고 마는 것을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는 묵시를 볼 적에 전쟁을 위하여 무력을 준비한 다음에 심판이 온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 론

금일에 극도로 사람이 무력 준비에 최고 발전을 가져온 것도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다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인류의 인종을 없이 하기 위한 무력이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도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했던 것이다(욜3:14). 지금 인종이 팽창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하는 공포도 가지고 있지만 남은 자는 심히 적다는 것을 말할 때 이사야 선지는 오벨의 금보다도 적다고 말했다(사13:12). 우리는 금일에 무력이 완비된 현실을 볼 때 불가피한 심판은 불원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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