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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령한 성도 (대하 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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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신령한 의미에 있어서 놀라운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복음이 들어온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교회는 피땀흘려 씨를 뿌린 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이제는 전국 방방곡곡에 거의 교회가 세워질 만큼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뿌드는 "장차 올 20세기가 맞이할 가장 큰 위험은 종교는 있으나 성령이 없고 속죄는 전파되나 중생의 사실은 무시되며 도덕은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천국을 말하나 지옥은 말하지 않는 시대적 흐름일 것이다."고 예언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이러한 예언을 거부하기라도 한듯 신령한 교회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복받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실 때 크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집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육의 사람이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헬라어의 의미를 풀어보면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되어 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쏘마라 하여 생리적인 육체를 말하고 둘째는 사르크스인데 이는 타락하여 죄악이 가득한 육체를 가리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전2:14-)

이 육에 속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자연인 그대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고 그대로 살게 되면 멸망하여 심판에 들어갈 그런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이에 비하여 영의 사람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 영의 사람은 그 신앙의 성숙정도에 따라 둘로 분류됨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먼저 육신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은 났으나 그 신앙의 성숙도가 어린아이 같아서 철이 없고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이에 반하여 거듭났을 뿐만아니라 그 신앙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른 성도를 가리킬 때는 신령한 성도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2:15)

이러한 성도는 이미 그 신앙이 성장하여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온전한 보증을 받아 승리와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의 소유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성도가 되되 육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모두 다 신앙의 성장하여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교회는 신령한 성도, 신령한 집사, 신령한 권사, 신령한 목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신령한 성도입니까 떠 어떻게 하여야 신령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1.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이 신령한 성도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있으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

하나님이 진정하시고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성도는 무엇보다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치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전이 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하신 곳 이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대하6:18-20)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하매 불이 하늘에서부타 내려와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전에 가득하니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선하시도다 하면서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배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려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니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16)

성전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베하는 곳이요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는 눈과 마음을 두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백성이었기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계시하심을 따라 산느 백성이였기에 그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물러 계신 성전중심의 생활을 영위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유대인들은 성전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고 교제하며 제사하였던 것입니다. 이 제사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된 것이 오늘날의 예배요 이 에배는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으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이사야1:12)

참으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만나주시는데 그 예배에 참석하는 자세는 진정한 정성을 가지고 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저 형식으로 마당만 밟는 예배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신령한 성도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거룩해진 상태로 드리는 예배요 시간을 지킴에 있어서 시작에서 끝까지 온전히 드리는 예배여야 하며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고 기도하며 찬양이 있는 예배입니다. 이처럼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신령한 성도가 바로 이런 예배를 드리는 성도입니다.

 2.신령한 성도는 신령한 양식을 먹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려 함이니라"(벧전2:1-2)

신령한 젖을 먹어야 살이 찌고 신령한 능력이 생기고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이처럼 신령한 성도가 되려면 신령한 꼴을 먹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6-17)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축사하여 장정만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긴 오병이어의 의적 후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았을 때 예수님이 저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른 많은 무리들의 목적은 그저 굶주리지 않고 배불리 먹고자 하여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육신의 양식을 썩는 양식일 뿐이요 따로 썩지 않는 양식이 있으니 이는 영생하는 양식이니 이를 취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영생하는 양식이 바로 신령한 양식입니다.

 사람이 살고져 양식을 먹지만 이 육신을 위하여 먹는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을 먹어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않는 양식이란 무었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생의 진리가 들어 있는 성경 말씀이 바로 신령한 양식이요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신령한 성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영생의 양식으로 먹고 사는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신령한 성도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생의 양식으로 먹고 사는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신령한 성도는 영의 양식을 먹지 않고는 영적 영양실조에 걸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성도는 매일매일 육신의 양식을 먹음과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성도의 한 사람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나는 아침에 성경을 읽기전에는 결코 육신을 위해 빵을 먹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런 영적상태의 고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와싱턴은 "성경이 없이는 정치를 바로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만류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뉴튼은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 위에 있는 가장 고상한 철학이다."고 했으며 로마의 황제 헨리는 "성경은 지금까지 인쇄된 모든 책을 합친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그 어떤 서적이나 과학, 물질보다도 우선하는 권세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신령한 성도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야 먹고 사는 백성들입니다.

 3.신령한 성도는 신령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성도입입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전2:13-14)

이 말씀은 신령한 성도만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관한 신령한 성도에게는 은사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

신령한 성도는 이처럼 신령한 것을 분별할 뿐만아니라 그 신령한 이을 이루며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신령한 것을 분별하여 신령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영적 능력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치 말라"(골3:1)

신령한 성도의 소망은 오직 천국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단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육신의 성도입니까 영의 성도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단지 예배만 참석하는 성도입니까 세상의 육신의 양식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읽고 묵상하며 먹고 사는 성도입니까 아닙니까 신령한 것을 분별하여 하늘의 것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땅의 것들에 취하여 사는 육신의 성도에 불과합니까

이제 우리 모두는 조용히 겸허하게 자기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회개하므로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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