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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신앙적인 결합의 비참함 (왕하 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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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생각해 왔읍니다.

오늘은 그 역사 속에 필히 알아야할 중요한 상황을 삽입했기에 이를 함께 묵상함으로서 우리들의 남은 생을 좀더 주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등장한 이들의 사생활이 잘못되었기에 결국 저들이 비참한 최후를 맏칠 수 밖엔 없었던 한 가정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부정하게 결합된 아합괴 에세벨의 결혼이 주는 교훈을 조사함으로 우리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결혼의 중요성 창1;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홀로 있음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한 개인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였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하와를 함께 지으셔서 그를 돕는 배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려면 이 둘의 원만한 결합이 즉 믿음 안에서의 결합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의 시작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가정을 통해 사화가 형성되고 나아가서는 나라가 있게 마련인 겄입니다.

 그래서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지간인 것입니다.

 결혼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국가의 시책도 아니고 교회의 제정도 아닙니다.

 결혼은 전적으로 조물주 하나님의 배려이며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인 것입니다.

 결혼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창2;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완성은 둘이 하나가 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남자의 강력함과 자립성이 한 여자의 부드러움과 따스한 애정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삶을 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둘째 ; 서로의 사랑입니다.

나와 너가 하나가 됨으로 형성되는 사랑을 배우게합니다.

 이 사랑을 통하여 이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선의 사랑을 경험하는 가정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 자녀의 양육입니다.

 자녀를 낳아서 잘 기르는 것은 민족과 인류를 영속시키고 빛나는 문화를 계승하여 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전달케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만이 자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읍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라야 자녀의 결혼 생활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읍니다.

 행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착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그 복이 수천대로 이어지는 것이 십계명의 원리인 것입니다.

 2,부모의 어리석은 승락 칠년의 심한 기근과 관계된 왕은 여호람입니다.

그 심한 기근의 원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의 사람을 잡아 죽이기로 작정했던 임금이 여호람입니다.

 이 여호람이 누구의 아들입니까 그의 장인이 누구입니까

그의 아버지는 유다의 가장 고상한 왕들 중에 한 사람인 여호사밧 이란 왕이었읍니다.

 여호사밧은 참신한 신앙의 소유자로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으며 또 조교개혁을 단행하여 우상의 단들을 헐어 버렸읍니다.

 그리고 막강한 힘의 군대를 만들어 국경을 튼튼히 다졌읍니다.

 이 웃나라들과 교역을 증대 시켰고 나라의 공무를 공평하게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왕이었읍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토록 선하던 왕이 며느리를 맞을 때 그런 실수를 하게 되는지 알다가고 모를 일입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그의 며느리를자기 나라 안에서 고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딸 즉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맞게 된 것입니다.

 대하21;6절에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나라의 이익을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았읍니다.

자기의 권좌를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아들의 장래는 생각지 않았읍니다.

 이세벨이 어떤 여자입니까 아합이 어떤 왕입니까

그런데 어쩌자고 그의 딸을 데리고 온단 말입니까

요지음에도 우리 주위에 이런 식의 결혼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사밧의 이런 실수로 자기의 권좌는 유지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자기의 체면은 유지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들의 장래는 망치고 말았읍니다.

 설사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아들이 이세벨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고 간청을 했더라도 아버지인 여호사밧은 강력하게 말려야 했읍니다.

 요지음 부모들의 입버릇 처럼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 있읍니다.

"효자 자식이 따로 있나 옛날엔 연애하는 자식이 부모의 속을 썩히던 자식이었으나 요즘은 연애 못하는 자식이 불효 자식이야" 라고 하는 말들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중매해서 짝을 짖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짝만 지으면 되는줄로 아는 부모들의 무책임한 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결혼은 어떻한 조건이 있더라도 말려야합니다.

믿음의 결과가 아닌 것은 어떤 것이든 말려야합니다.

 3,결혼의 사악한 결과

여호람은 그의 훌륭한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않았읍니다.

 대하21;4절 이하에 보면 그의 악한 행적이 나옵니다.

"여호람이 그 부친의 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에 그 모든 아우와 이스라 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그 몇 사람이란 중에 그의 형제가 여섯명이나 있었읍니다.

 그리고 나라의 일등 공신인 고위 관리들을 무수히 처형했읍니다.

 여호람왕은 그 훌륭한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아니한 이유가 대하 21;6절에 있음을 보았읍니다.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아들 여호람이 이세벨의 딸과 결혼 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읍니다.

 여호람은 불과 8년의 짧은 기간에 왕위에 있었으나 그는 그 동안 병치레를 하는 왕이었고 또 칠년의 심한 기근 동안의 왕이었읍니다.

 비참하게 병중에 그의 최후를 마치는 왕이되었읍니다.

 구룩하지 못한 불신앙으로 맺어진 결혼의 종국이 참으로 비참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4,민족을 타락 시킴

20-22절까지 입니다.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고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시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 갔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 났더니 오늘말까지 그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도다"

첫째 ; 에돔이 배반을 했읍니다.

이때 배반한 에서의 후예인 에돔이 영원한 이스라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원래부터 한 형제의 나라였읍니다.

야곱과 에서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불신앙의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있읍니다.

 둘째 ; 립니가 배반을 했읍니다.

립나는 여호수아에 의하여 하병된 이스라엘이었읍니다.

 그러나 여호람 왕 때 립나가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말았읍니다.

 세째 ; 백성들이 여호람을 등지고 돌아섰읍니다.

22절에 백성들이 도망하여 각각 자기의 장막으로 갔더라고 했읍니다.

 한 사람의 불신의 결과가 온 백성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읍니다.

 백성들은 나라에 관심이 없읍니다.

왕에 대하여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읍니다.

 무었을 말합니까

자기 개인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백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되었읍니까 유다에 촤초로 바알을 가져 온 왕이 여호람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결혼 때문입니다./

5,그 후손에게까지 여호람의 장인이었던 아합 왕이 왜 망했읍니까

아합이 자식도 없이 망하게 되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이방 여인과의 비 신앙적인 결혼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방 여인 이세벨은 바알신을 숭배하는 불신자 중 불신바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합의 나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죽음으로 그의 잘못이 완전히 제거되고 살아 졌는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문제의 장본인인 아합은 죽고 없어졌지만 그의 불순한 씨았은 후 대에 까지 전해지고 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람 왕은 그의 아버지를 닮았더라면 참으로 훌륭한 왕이 되고도 남았을텐데 이상하게도 여호람은 아빌 닮지 아니하고 그의 악한 장인을 닮았던 것입니다.

 세계는 남자가 정복하고 남자는 여자가 정복한다더니 바로 여호람의 가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호람은 이세벨의 딸이 시집오면서 가지고 온 그녀의 바알을 숭상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27절입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라"

아하시야도 아합왕의 사위였읍니다.

 사위가 된 덕에 아합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통치 기간은 불과 2년 동안이었읍니다.

 그 짧은 기간에도 선한 왕이 되지 못하고 악한 왕이란 칭호와 함께 짧은 기간의 단명한 통치자가 되었던 이유를 무었이라고 합니까

27절을 다시 봅시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함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니라"-오늘 말씀의 중요한 사실을 요약하면 이렀읍니다.

 아합이 장가를 잘못 갔기 때문에 망한 사람이었읍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도 장가를 잘 목 들었기 때문에 망했읍니다.

아하시야도 장가를 잘 못들었기에 망한 사람이란 것이었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죽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찾아 옵니다.

 히11;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 번 왔다가 잠시 살다가 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들의 권좌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의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결혼의 잘 못이 그 인생의 패망과 관계가 있음을 보았읍니다.

 자녀를 두신 부모된 자는 신실한 믿음의 본이 되어 살아야 하겠고 지금 혼기를 앞에둔 젊은이들은 평생의 반려자를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잘 선택해야 하겠읍니다.

 믿음의 좋은 사위 며느리 보시고 믿음의 좋은 남편 아내 만나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 내시는 행복한 가정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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