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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삶의 가치평가 (에 녹의 삶과 그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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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부류의 삶으로, 여러 시대를 걸쳐서, 나그네로 왔다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환경이나, 역할, 수명(壽命)을 누리다 가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육신의 삶은 영원한 나라의 삶을 위하여 모두에게 한번씩만 주어지는 기회인 것이다. 성도는 윤회설(輪回說)을 거부한다.
오늘의 본문에 이르면 인간의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한 세대에서 의인으로 인정함을 받은 노아에 이르기까지 셋의 계보 10대(代)의 삶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주목할 사실은 에녹의 삶에 대한 특이한 기록이다. 그가 살다간 삶에 흔적에 대한 기록은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목적의식, 본업의식)”라는 인생 삶에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과 연결된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시대마다 세상에 사람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가치평가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뜻(목적.계획.소원)을 발견케 한다. 우리가 살다간 자리를 사람들은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기록하심을 성경은 계시하고 있다(계20:12).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시시때때로 자신의 삶을 성찰(省察)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갔어도 가치 있는 삶의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에녹의 삶에서 남다른 가치는 무엇인가

1. 하나님과 동행한 삶 이였다.
. 본문에 이르면 아담에서 노아까지 인생들의 삶의 이력(履歷)은 아주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몇세부터 자식을 낳고, 몇 년을 살다가, 몇세로 죽었다”는 것뿐이다. 즉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와서 누렸던 권세나, 학벌이나, 소유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모든 인생들의 공통사항인 것이다. 다만 에녹의 경우 일반적인 삶의 형식은 다른 사람과 같았으나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는 기록이 첨가 되였다. 이것이 에녹의 삶에 기록을 통한 인생의 가치성을 더하고 있다.
. “하나님과 동행” 했다는 것은 “현실에서 그의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뜻과 언제나 일치(혹은 통일)를 이루기를 힘쓰며 살았다”는 뜻이다. 즉 마음의 생각으로 하나되며, 생의 목적의식이 하나되며, 말씀을 따라 언행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일치를 이루는 것으로, 이것이 곧 성경에서 말하는 “의(義)”이다(마3:15, 6:33).
. 또한 “하나님의 뜻”이란 각 사람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현실(사건, 사물, 사람)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목적, 혹은 계획, 혹은 소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바로 알고 순종해야 한다.
. 히11:5에 에녹을 삶을 두고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이력에 육신적으로는 아무리 많은 이력을 덧붙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억하시는 이력은 “그가 세상에서 나
와 동행하였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가” 밖에 없는 것이다.
『송구영신 02』2-2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인생들의 재물과 인생의 명예와 소유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을 성공이란 말에 치중하지 말고, 동행이란 말에 치중하라

2.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삶을 살다간 모본(模本)이였다.
에녹이 이 세상에 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들림 받았던 때는 시대적인 역사를 볼 때에 머지않아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이 이루어지는 비슷한 때였다. 에녹은 노아의 증조부로서 조부(祖父)였던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는 노아의 아비 라멕을 낳은 것이다.
그 시대가 어찌나 악하였든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두가 불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창6:5절) 소행 뿐만아니라(창6:12절) 영성(靈性)이(창6:2절) 모두 변질, 타락, 혼돈 되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의인의 삶이란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전쟁이요, 고통인 것이다. 유다서의 기록을 보면 에녹의 삶의 사람들에게 심판이요, 정죄(定罪)였다고 하였다(유1:14-15). 그런고로 더욱 철저한 냉대를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이 세상에는 불량 상품이 참으로 많다. 가짜도 많다. 사람의 실수이거나, 의도적인 장사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도 불량품이 많다. 양심을 굳어지고, 더러워져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해하고도 조금도 가책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眞理)로 손질하지 않은 인간의 책임이다. 성도도 게으로고 안일하면 굳어지는 것이다.
에녹은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손질함으로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삶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보기 좋게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참고적으로 에녹 이전에 죽은 사람은 성경의 기록상으로 아담과 아벨 뿐이다. 세 종류의 죽음 중에 에녹은 가장 귀한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우리도 그와같은 영생의 영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에녹은 결코 좋은 환경 속에서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현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 언제나 진리안에서 자유할 뿐이다(요8:32)

3. 뒤늦게 깨달았으나 끝까지 완주한 삶이였다.
성경이 이를 증명하듯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동해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어떠한 계기로 을 하나님을 진실되게 영접하였는지 확실히 아는바 없으나 별로 우리들의 경우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그는 하나님을 영접한 후 앞만 보고, 위만 보고 살아간 인생이요, 날마다 자신의 점진적 성숙을 이루어 간 사람, 세상살이를 마칠 때까지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오늘날의 성도들이 주의깊게 성찰할 사항이다. 특히나 우리의 주변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사회가 급속히 인성의 변질이 온다하여 영적 생활이 나태하여지고, 점점 냉각되어 감은 심각한 변질현상인 것이다.

資料提供:基督敎 韓國浸禮會 釜山聖山敎會(335-7030) 牧師 安耶高 (천리안ID 東園)
성도의 삶은 경주자와 같다고 하였다. 그것도 단거리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처럼 기나긴 여정인 것이다. 여기에는 믿음의 확신과 더불어 인내와 소망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여 이 변질 되어가는 시대의 늪을 지나 천성에 다다르는 에녹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인생의 많은 이력중에 가장 귀한 이력은 하나님을 섬긴 삶기다 간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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