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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담과 피 (창 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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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의 70% 이상은 수분입니다. 수분은 곧 피를 말합니다. 몸에 상처를 입으면 어디든지 빨간 피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들추면 어디를 펼칠지라도 피가 묻어 나옵니다. 요즘은 노란 금색칠을합니다만 성경책에 과거에는 빨간색을 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짜보면 네가지 피가 나옵니다. 양.염소.비들기.송아지 피가 그것입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피를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본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성경은 피가 흐르는 책입니다. 성경은 생명이 흐르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피를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성경에 흐르고 있는 피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는 그 피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어야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만 씻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간은 피에 관한 설교만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피의 복음이요, 피를 통한 복음입니다. 피 설교를 통해서 영적인 바른 교훈을 얻으시고 구원의 확신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벗기시고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가죽옷이 어떤 옷이고 우리가 왜 이옷을 입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옷은 완전한 옷입니다.
어느 곳이 과거 에덴동산이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설사 정확하게 그 자리를 찾아 낸다 하여도 그땅은 더 이상 에덴동산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지금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일 것이라고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이커라고 하는 성서학자가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의 주석을 쓰기 위하여 그 지역에서 지내며 직접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옷을 벗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한시간이 지나자 말라 부스러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무화과 나뭇잎으로 엮은 옷은 한시간용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화과 나뭇잎 옷은 조심하지 않으면 긁히고 찢어져 버렸습니다. 베이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새벽 6시에서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활동한다 치고 아무리 조심해도 무화과 나뭇잎으로 엮은 옷을 입고 하루를 지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10벌은 있어야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저녁이면 아담과 하와는 내일 입을 옷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일 입을 옷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침이면 준비해 놓은 모든 옷들이 말라 부서져 버렸다. 무화과 나뭇잎 옷은 만들어 두었다가 입는 옷이 아니라 즉석에서 만들어 입는 옷이었다.”.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가죽옷 한벌이면 평생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가죽옷은 헤어져 입지 못하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한 옷밖에 만들어 입지 못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은 완전한 옷을 만들어 인간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마귀는 완전을 불완전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셨습니다.
어느 믿음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의 아들이 좋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불러서 조용하게 나쁜 친구들을 만나지 말도록 타일렀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 친구들을 변화시키면 되잖아요.” 아버지는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은 친구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들에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집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느날 덜익은 사과 6개와 썩은 사과 1개를 아들의 방에 갖다 놓았습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덜익은 사과도 익고 6개의 사과 때문에 1개의 썩은 사과도 온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1개의 썩은 사과가 6개의 덜익은 사과를 썩혀 버렸습니다. 그때에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불량한 친구들을 끊게 되었습니다. 불완전은 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완전한 하나님만이 완전한 옷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은 신본주의 옷이었습니다.
밤죄한 인간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간들에게서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벗기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든 것은 인간의 아이디어요,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생각은 신본주의입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서 숨었지만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죽옷을 입어야 합니다. 신앙은 인본주의를 포기하고 신본주의를 따르는 것입니다. 무엇이 인본주의입니까1)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솔로몬은 성막을 성전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을 지으면서 물질적 부요를 자랑하기 위하여 물두멍, 번제단, 금촛대 등 모든 성막의 기구들을 열개씩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가 하면 못 하나하나도 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전 900년 경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졌는데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인본주의 성전은 가루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을 지을 당시 동쪽벽은 귀족들이 지었습니다. 남쪽벽은 부자들이 지었습니다. 북쪽벽은 정치가들이 지었습니다. 서쪽벽은 서민들이 지었습니다. 바벨론이 솔로몬 성전을 함락시킨 후 금을 가져가기에 혈안이 되어 성전을 완벽하게 무너뜨렸고 모든 금을 가루로 빻아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귀족과 부자와 정치가들이 만든 성전의 벽은 초토화가 되었지만 서민들이 눈물 흘리며 믿음으로 지은 성전의 벽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든든히 서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인본주의는 무너지고 신본주의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인본주의의 극치인 공산주의가 무너졌습니다. 이 세상도 언제가는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과 지옥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서 주신 유일한 이름,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뜻인줄 알면서도 순종치 않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요나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니느웨로 가지않고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할 일임을 알면서도 하지않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내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가 멸망합니다. 인본주의를 쫓는 사람들이 멸망합니다. 신앙은 내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좇는 것입니다.
3)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는 것이 또 인본주의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소유 전답을 다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욕심도 있었기에 절반을 숨겼습니다. 그들은 한날에 부부가 죽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성에서 구원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부요도 잃어 버리기 싫었습니다. 뒤를 돌아다 본 연고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인본주의를 버리고 신본주의를 좇아야 합니다.

3.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은 보호의 옷이었습니다.
범죄한 후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의 수고가 주어졌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컹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날에는 가시와 엉컹퀴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범죄 이후에 저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생각으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그것은 금방 부서지고 없어질 옷이었습니다. 가시와 엉컹퀴가 많은 세상에서 무화과 나뭇잎 옷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긁히고 부서지고 찢기고 피를 흘리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태어나면 보통 10여세까지는 부모와 함께 잠을 잡니다. 미국은 낳자마자 아이를 떼어 놓습니다. 아이가 울어도 젖먹을 시간이 아니면 주지 않습니다. 아주 독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날 그 가정에 도둑 둘이 들어왔습니다. 도둑들은 아기가 울면 도둑질에 방해가 될까봐 아기를 집밖에다 내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안심하고는 도둑질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밖에 내놓은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부모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아기의 울음소리가 밖에서 들려옵니다. 황급히 부부가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려는 순간 우직끈 하더니 집이 밥새 내리는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그집을 들어내는데 보니 도둑 둘이 깔려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시고자 도둑을 보내시고 도둑들에게 그런 생각을 주사 성도의 가정을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와같은 보호가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합니다. 어리석게 무화과 나뭇잎을 자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4.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은 피묻은 옷이었습니다.
가죽옷은 한쪽은 피로 얼룩진 옷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 이름 때문에 골치를 많이 썩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해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맹한솔, 맹요한 등). 그런데 아담은 모든 동물의 이름을 다 지어주었습니다. 정말로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엄청난 일을 다 하고는 한가지 쉬운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것입니다.
미국의 아비 리치(Abi richi)라는 사람은 모험을 좋아해서 온갖 위험한 일을 다 시도해 봅니다.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통속에 들어가서 횡단하고 아래로 떨어지기까지 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비 리치는 후에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인간은 큰 것은 잘하고 작은 것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아담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영이 죽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습니다.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 저주에서 인간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입고 나가지만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죽옷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가죽옷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잡아 지어주신 가죽옷의 한면에는 피가 얼룩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죄의 사함을 얻고 부끄러움을 가리울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스스로 자기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인이 죄인처럼 죽어 의인이 죄인처럼 살 수 있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벗고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가죽옷을 입어야 합니다. 십자가 밑에 모이고 십자가 밑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 비로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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