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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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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밤새 원고를 섰습니다. 새벽녘이 되어서 산책을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아끼고 사랑하는 애완견이 촛불을 넘어뜨려 그 원고를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그를 향하여 꼬리를 치며 달려 옵니다. 그 강아지를 보고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너는 지금 너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지” 하더랍니다. 모르는 사람, 동물에게 화를 내고 다구쳐 보았자 본인만 더욱 답답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단한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외 이러한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요
Ⅰ. 우리 행동의 잘못된 원인은1) 모르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왜 십자가에 못박았을까 그의 죄명은 정치적인 이유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의 죄명은 “참람죄” 이다. 즉 신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해서 십자가에 달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무지 하였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면서도 그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일이 큰 죄악인데도 그것을 최고선으로 알고 행했다는데 엄청난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알고서 일을 바로 처리한다면 잘못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분명히 모르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선을 행하는 것도 그러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악을 행할 때는 정말 그 악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모르고 마냥 범죄 하는 일들을 많이 본다. 엄청난 결과가 주어지지만 그 결과에 대하여 전혀 관심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은 무턱대고 찬성하든지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든지 둘중 하나입니다.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의견이 없고, 그래서 기분이 내키는 대로, 느낌이 가는대로, 그저 무조건 행동하는 것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한 번 결정하면 끝까지 무조건 밀고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고집은 항우 고집입니다. 많이 배워 잠된 지식을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입니다. 깊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고 하는 것은 이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하고 이 교제에서 오는 앎이 참 앎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에 대하여 이름을 알뿐만 아니라 깊은 교제를 통하여 그를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것은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잘 알고 많이 아는 사람은 잘못하는 일이 없는가 아니다 많이 아는 그 사람 더 많은 잘못을 범할 때 많더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무지하였다고 말하면 잘못이다. 당대의 지식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큰 잘못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바울, 예수를 박해하는데 일등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무식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그토록 많이 아는데 왜 잘못을 범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 잘못된 지식이 그를 잘못된 열심으로 끌고가서 예수를 박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히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열심히 특심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6) 이 잘못 알게된 열심이 교회를 피박하게되고, 바로알게되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 처럼, 분토 처럼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랜 신앙생활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오랜 인생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들, 앎이 우리를 잘못된 곳으로 이끌어 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합시다. 알되 바로 알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동곡교회를 거쳐간 많은 교역자들을 통하여 많이 배웠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지식은 부족함을 늘 깨닳으시고 나의 지식은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런 잘못에서 벗어나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하므로 이 죄의 넋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수치로 알고, 고집을 내 세울 것이 아닙니다. 모르면 겸손히 모른다고 털어놓을 때 가장 아름다운 사람,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겸손히 행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까
Ⅱ. 용서의 본을 보여 주심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바로 용서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범하는지 알지못하는 것입니다.
알고 의도적으로 한 것은 참 나쁜 악입니다. 그러나 모르고 한 것, 그것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곧 용서뿐입니다. 알지도 못한 사람을 책망하고 그 책임을 전가 시키기는 무리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본문 말씀이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은 그들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서기관과 대제사장들로 인하여 죽어 가면서도 그들의 잘못까지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생명을 빼앗는 그 사람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용서 못할 사람이 누구며, 덮어 주지 못할 잘못이 무엇이겠습니까 동곡의 성도 여러분 진정한 용서를 폭넒은 사랑을 베풀면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즉 제대로 알면 그러한 악과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처럼 진정한 용서를 베푸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하루 생활에서 어떤 일이든지 한 번은 용서의 생활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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