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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가르치라 (신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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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주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 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직접 보내 바로 왕을 혼낼 수 없어서 모세를 사용하셨 겠습니까 하나님게서 말씀으로 홍해를 갈라놓지 못해서 모세를, 모세의 지 팡이를 사용하셨겠습니까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그냥 못 넘어뜨리셔서 당 신의 백성을 들어 사용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신데도 꼭 종들을 통해서 그 일을 명령하고 성취하십 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고자 , 하나 님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불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내 뜻이 아 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좋은 도구가 되고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기 원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우 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지금까지 우리들이 자라온 과정과 우리 교회의 자라온 지난 날을 살펴보면, 저절로 큰 자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도 처음에는 모세 밑에서 세숫물도 떠다 드리고 발도 씻겨 드리는 등 온갖 시중을 다 들다 스승 모세에게 먼저 인정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의 시종으로 수년을 섬기면서 엘리야의 인정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엘리사를 인정해서 주 의 종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인 정받기 전에 몸된 교회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하고 피차 존경받는 그런 사람 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사람에게나 하나님께나 인정받으려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가르치 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 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6-9).

 이스라엘 가서 공항에 내리면 국제 인종 전시장에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생김새가 모두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 들입니다. A.D.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100만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뒤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 여러곳으로 흩어져 도망을 갔 습니다. 그때 소련으로 간 사람은 거기에서 2000년을 살면서 그 쪽 사람들 과 결혼을 해서 소련 사람이 되었고 인도로 간 사람은 인도 사람이 되었고 이처럼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져 그 생김새가 각양 각색이 되었습니 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생김새는 2000년 동안 다른 나라 사람이 다 되었는 데도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2000년이 넘도록 유랑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으로 서의 민족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 말씀을 2000년 동안 그대로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지 누구하고 결혼해 살든지 간에 자기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요즘은 영어 공부하는 게 참 편해졌습니다. 비디오 테이프도 있고 카세트 테이프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영어를 공부할 수가 있습 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런게 없었거든요. 영어 단어를 외기 위해서 벽이 란 벽은 여기저기 영어 단어를 써붙여놓고 외고, 종이쪽에다 써 가지고 다 니면서 길에서도 외웠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계여러 곳에 흩어져 살면 서, 우리가 영어 공부했듯이 꼭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저기 써붙여 놓고 가르친 겁니다. 그들의 이러한 수고와 노력 때문에 피는 다른 나라 사 람피가 섞였지만 신앙은 이스라엘 사람 그대로의 여호와 신앙을 지켜 나왔 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씀' 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이 말씀은 교회에서만 듣고 교회에서만 아멘 하는 것이고, 생활 속에서는 이 말씀대로 전혀 실천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 남들과 교제하는 데 문제가 있어 이 말씀대로 살면 돈도 못 벌고 출세하는 데도 지장이 많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서 말씀을 교회에다 모셔 놓고 갔다 가, 다음 주에 교회 와서는 다시 꺼내고...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10년 믿고 20년 믿어도 이 말씀이 내 삶속에서 역사하지 않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삶 속으로 끌어 들여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단 한 달을 예수 믿어도 그사람에게서는 예수 믿는 냄새가 물씬물씬 나더란 말입니다. 이제 진정 우리는 신명기 6장 4절 에서 9절 말씀을 나의 생활 속에 그대로 받아들여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은 어떤 능력과 권위가 있기에 2000년 동안 유리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지켰으며,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환 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믿음과 몸된 교회를 지켜 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런던의 어느 유명한 신문의 편집자가 사회의 각계 유력 인사들에게 설문 편지를 보냈습니다. 설문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3년 동안 감옥에 가게 되어 그 감옥에 가져 갈 수 있는 책이 단 3권이라고 가정 한다면, 당신으니 무슨 책을 가져 가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책을 가져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응답자들의 98%가 첫번째의 책으로 성경을 꼽았 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몇 사람만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고 거의 대부분 이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심지어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도 어려운 일이나 고난을 당할 때 성경 이외에는 그 어 떤 책도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해 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이 절대적인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 땅에 는 수천만 권의 책이 있습니다만 성경은 그 수처만 권의 책중의 한 권이 아 니라, 그 수천만 권의 책과는 다른 한 권의 책입니다. 다른 수천만권의 책 은 모두가 인간의 말을 기록한 것인데, 단 한권, 성경만은 인간의 말이 아 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힘입니 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이처럼 성경은 하나 님의 영감을 받아서 쓰여진 거룩한 책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책 보다 힘있는 책인 것입니다.

 우리가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데, 맞춤법이 조금만 틀려도 틀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은 하나님의 신인 성 령이 인간인 성경 기자로 하여금 불러 받아쓰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 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을 때부터 "자유"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자유를 가진 성경 기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 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 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계 1:1). 그러기에 성 경은 전부가 인간의 작품인 동시에 전부가 인간의 작품인 거룩한 책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참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인간의 말이므로 인간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영원하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처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 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명이요" 하기만 하면 무릎을 꿇고 사약을 내려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우리는 사극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말도 그렇게 무조건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는데 만왕의 왕이신 한 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라허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바로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 원의 길로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을 직접 뵙듯이 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응답하는 자세 로 나의 생활안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인도되어 영원한 생명과 축복 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수염이 석자라라 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네 인생은 밥 세끼 먹으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이야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들 하지만, 옛날에는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참 어렵게들 살았습니다. 보릿고개 하면 지금도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그 쓰디 쓴 아픔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배고플 때 보리밥 한 술의 그 맛을 요즘 젊 은이들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몸뚱이 하나를 지탱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전심 전력으로 매달리는데, 우리는 우리 영의 양식을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물론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부족한 영의 양식을 채우기 위함이요 주일 밤 예배 삼일밤 예배에 열심히 참예하는 것 또한 영 의 양식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처럼 모이기에만 힘쓰고 나서 나의 영은 배부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학교에 365일 결석하지 않는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을 주의깊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 면 공부를 잘 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벼락치기 공부가 아니라 날마다 조금 씩 꾸준히 하는 것이 공부하지 않으면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벼 락치기 공부가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 행 17:11) 하여 그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여 그 말씀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 난 아이가 울며 보채다가 어머니가 젖을 물리면 허겁지겁 빠른 것을 본 사 람들은 이 말씀을 실감하실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갓난아이처럼 하나님 이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이처럼 성경을 영의 양식으로 아멘하는 사람 은 "주의 말씀이 맛이 내게 어찌 그리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시 119:103)는 찬송이 절로 나오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만 보면 잠이 온다 고 하니 그런 사람은 믿음의 선한 경주에서 일등할 리가 만무합니다.

 빌립보서 2장 16절을 보니,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나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 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길 어야 백년을 사는게 우리 인생살이 아닙니까 죽으면 썩어질 육신을 위해 수고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 이야말로 그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신 8:3) 을 우리가 진정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슴이 가득 담겨 있는 영혼의 보물 창고인 성 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3. 성경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1000만 명이 넘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데 왜 이렇게 이 사회가 어두워지겠습니까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그 중에 제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옛날에는 믿음 좋은 사람은 전부 신학교를 보냈기 때문입 니다. 믿음 좋은 목사님은 우리는 사회 각 분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른 인재를 내 보내야만 우리 나라를 다시 되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 나라를 변 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엡 6:17) 이라고 했습니다. 이 험한 세 상을 싸워 나갈 힘은 오로지 이 말씀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있어도 믿음 좋은 과장도 없고 믿음 좋은 국장도 없고 믿음 좋은 판사도 없 고 믿음 좋은 정치가도 없더란 말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목사니만 될게 아니라 믿음 좋은 사람이 이 나라의 곳곳에서 선하게 일을 했다면 우리 나 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의 지장과 삶 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다면 우리 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됐을 것입니 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우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 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 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롬 1:16) 한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 님의 능력"(롬 1:16)입니다.

 어디 이쁜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민족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 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젊은 제사장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시기 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렘 5:14). 돌이킬 수 없는 조국 유다의 파멸을 보며 예 레미야가 회개를 촉구했을 때,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바람' 이라고 반박하시면서 선지자의 말에 대적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나무'라 고 하셨습니다. 곧, 선지자의 말에 대적하는 것은 마치 마른 나무가 불에 대적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느 13:1) 려줌으로써 이스라엘에 섞여 사는 이방인들인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 을 쫓아 내어 그들을 하나님의 걸구한 백성으로 구별하였듯이, 우리도 하나 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일꾼들이 우리나라의 요소요소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 선한 모범을 보임으로써 이 나라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개개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의 말씀일 뿐만 아 니라, 이 나라를 구원하는 능력의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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