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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두 길 (신 3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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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어려운 중에서 한 사람은 정직한 길을, 한 사람 은 악의 길을 선택하였다. 오랜 세월 후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한 사람은 사형수가 되었다.

2)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이지만 이들의 운명은 전혀 달랐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길을 주셨다.

 I. 생명의 길이 있다(15-16).

A.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가는 길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종의 길은 아니었다.

 2. 그들은 10가지의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체험했 다.

 3. 무엇보다도 홍해도강의 기적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4. 그럼에도 이들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5. 그러나 선민의 신앙자세는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6. 순종이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창 15:6에 아브라함은 믿음으 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였다.

 7.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더 풍성한 복을 주신다.

B. 성도의 삶은 마땅히 순종의 삶이어야 한다.

 1.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이 오랫동안 세계제일의 국력을 떨쳤 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겼었다.

 2. 그러나 그들이 학교에서 성경시간을 삭제한 결과, 미국의 국력은 쇠 퇴하고 말았다.

 3. 순종이란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II. 우리 앞에는 사망의 길도 있다(17-18).

A.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길이다.

 1. 광야에서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었다(민 21:6).

 2. 이 길은 아담이 선택했던 길이다.

 3. 우상숭배자들이 걷는 길이다.

 4.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는 많은 유혹의 요소들이 내재되 있었 다.

B. 우리 주위에도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많다.

 1. 우리는 막상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자신 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전문가들이다.

 2. 우상이라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모두들 말하지만 막상 자신에 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빠져든다.

 3. 가나안을 들어가는 이스라엘 앞에 숱한 유혹의 손길이 숨어 있던 것 처럼 오늘 우리 중에도 그런 요소들이 많이 있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는 행위도 우상 숭배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배워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딤후 3:7).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경우도 분명 한 우상숭배 행위다.

 III. 모든 사람은 반드시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19-20).

A. 이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1. 행복과 불행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2. 진정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생명의 길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길 은 좁은 길이요 때로는 고난도 따른다.

 3. 사망의 길도 있다. 이 길은 당장은 쉬운 길이다. 부모의 간섭을 귀찮 아 하며 제멋대로 성장한 자식의 결과와 같은 길이다.

B. 우리는 이미 생명의 길을 선택한 자들이다.

 1. 지금 모세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생명의 길에 들어선 자들 이었다.

 2. 그럼에도 모세가 간곡한 다짐과 당부를 하는 까닭은 계속적인 결단 이 있어야지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3.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생 명의 길이다.

 4.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의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결 론 자가용의 편리함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자가용을 계 속 타려한다. 좋기 때문이다. 참으로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 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리많지 않 은 것 같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불필요한 근심과 염려의 짐을 지고 있 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일단 주님을 영접했다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인 아무 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제는 주님의 문제인 데 주님에게는 원칙적으로 문제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무 것도 염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혈기를 자제하지 못함도 이율배 반 행위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겸손해 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떤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지금 당신 앞에는 두 길이 있다. 만일 예수를 택한다면 당신에게는 생명 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거부한다면 사망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 를 선택한 당신은 또 한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 삶의 주도권을 예수에게 드릴 것 인가 주님께 맡길 것인가 만일 당신이 계속 주도한다면 당신은 예수를 선택했 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좌절과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 맡기면 당 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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