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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당위성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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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이후 전통적으로 안식후 첫날에 교회가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였는데, 이는 곧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요,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주일 하루만 기념하고 찬양할 일이 아니라 교회가 모일때마다,또한 성도들의 삶가운데 날마다 기념되고 기억되어야 할 소중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이 부활의 메세지를 선포해야만 한다. 설교는 인간의 말재주로서 인간의 귀를 즐겁게하는 말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선포하고 그 십자가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찿아 나왔다.이 사두개인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인 신학을 가진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세도 영혼의 존재도 부활도 믿지 않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활의 허구성을 지적하기 위하여 이렇게 질문을 했다.

막12: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인은 묻고 있다. “율법의 시형제 결혼법을 따라 일곱 사람이 다 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이 있다면 그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이런 난감한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이와 유사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예를 들어 사람이 죽어 화장을 하면 부활때에 어떻게 부활하겠는가)

그때 주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나 (막12:24)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7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사두개인의 태도,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는 오늘날 세상의 시각이 아니겠는가 “부활은 비과학적인 것이다” “그렇게 불합리한 것이 어디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과학이 입증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부활을 믿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또다른 측면에서 부활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부활의 당위성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헛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전파하는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요, 소망도 헛된 것이며,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리라”말씀하고 있다.

 그는 어떤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예수의 피묻은 수의를 내놓은 것이 아니다. 빈무덤을 보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왜 부활이 진리일 수 밖에 없는가를 입증하는 증거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전파하는 것, 곧 그들이 가진 믿음과 소망을 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인격과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걸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을 보라! 우리가 왜 이복음을 위하여 생명 바치며,왜 이땅에서 고난 당하는 삶을 사는지 아느냐 우리에게 부활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이다. 감기 바이러스를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기침이 나고 콧물이 흐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실패자가 아니다,그분은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무엇인가 내게 부활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부활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나의 삶 가운데 그 부활의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바울은 이것을 말씀하는 것)

여러분! 여러분에게 그부활의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느끼고 있는가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사건이 가지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그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부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이었다.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부활이 없었다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며,우리가 믿는 믿음도 거짓이라 비난 받았을 것이요, 그것을 전파하고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모두 거짓증인, 사기꾼으로 비난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아가서는 부활이 없었더라면 우리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거짓 그리스도로 멸시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못박은 유대 지도자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까 예수를 그냥 죽여 없애 버리는것 이겠는가 (이미 그들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하여 배운바가 있었다./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예수를 의로운 순교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는 거짓 그리스도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 증거중에 하나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는 것이다.

 (행5:30)에 보면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받던 베드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그래서 임금과 구주(즉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죽인 예수”라고 말하고 있다.

 왜 나무에 달아죽인 것을 강조하고 있는가 나무에 달렸다는 것의 의미 어떤 의미가 있길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고, 또 제자들은 그 사실을 들추어 새삼 강조하고 있는가 신21:22-23에 그 해답이 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다. 유대 율법에 가장 무서운 사형법은 돌로 쳐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로 쳐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예수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 “보라! 예수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는 사람의 미움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니라(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은 의로운 순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도들의 당당한 외침은 /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온 인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하나님이 입증하였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는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라고 낙인 찍었고 조롱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다는 것.

 그러므로 그분은 넉넉히 우리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짐승의 피가 다 씻어내지 못한 우리의 죄악과, 많은 의로운 사람들의 희생,그들의 죽음이 해결하지 못한 인류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부활은 바로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 대속의 확증이며 보증이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이말씀은 부활이 우리 죄사함의 보증이라는 말씀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죄가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는냐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이 입증하고 있다는 말씀/ 그래서 “부활이 없었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함

이러한 사실은 구약의 제사제도에 잘나타 있다. 구약의 제사법중에 속죄제가 있다. 속죄제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속하기 위하여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때 대제사장의 복장중에 특이한 것은 그가 입은 치마 끝에 방울이 달려있다는 것. 방울을 다는 이유 그 방울 소리를 듣고 대제사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왜 굳이 확인을 해야 하는가 종종 소리가 나지않는 경우-제사장이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 왜냐하면 지성소는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가지고 간 제물이 하나님 앞에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잘못되었을 경우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밖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조하게 확인하고자 하는것/ 제사장이 살아나오느냐 그렇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가 살아나오지 못하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제사장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죄가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살아 나왔다는 것은 그들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는 뜻이다.곧 그들의 죄가 사함을 얻었다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어떤 분이신가 그리스도는 자신이 제물인 동시에 제사장이다. 자기 자신을 제물로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된 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그가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이는 곧 그분의 영광일 뿐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뻐해야 할 위대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가지고 들어간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는 확증이요 보증이기 때문이다. 그보증은 누구의 보증인가 하나님의 보증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주님의 빈무덤 앞에서 그분 십자가가 헛된 것이 아님을 발견하라.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는 말씀이 헛된 위로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분은 넉넉히 우리를 구속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것을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확증시키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다. 부활은 이제 십자가 고난은 끝났다. 필요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십자가라는 고난 뒤에 부활과 같은 영광의 때가 찿아오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확대,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씀하고 있다.

(고전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고전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불변하는 보증이 되기에 오늘 우리들의 싸움이 헛되지 않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날마다 죽은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 영광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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