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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에 이르는 길 (엡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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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길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생의 길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부자 청년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말을 한 것을 보면 그도 영생의 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야만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것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몇 십년하신 분들에게도 “구원에 확신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면 “내가 뭐 한 일이 있어야 구원을 받지요!” 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길, 영생의 길을 잘못된 방법으로 찾고 있고 엉뚱한 곳에서 영생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인 모든 성도는 엉뚱한 곳에서 영생을 찾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잘못된 방법으로 영생을 얻으려는 분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영원히 떠나 사는 길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해 왔습니다. 이 죽음 때문에 인생의 철학이 나오고 많은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무슨 두려움이 있고 무슨 고민이 있었습니까 지금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권세 앞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렇게 죽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인생은 덧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덧없는 인생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아기가 되어 울고 웃고 있을 때는 시간이 기어갔다.
내가 소년이 되어 꿈속에서 좋아할 때에는 시간은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자 시간은 달음박질하였고
내가 이제 백발이 되자 시간은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가고 인생의 허무함은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년이 될 수록 인생이 아쉽고 아쉬워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이생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이며, 인생을 다 살고 뒤를 돌아보면서 그 때 내가 젊었을 때 좀더 노력을 했더라면, 그 때 내가 이렇게 선택을 했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늘 후회하며 사는 것이고 뒤돌아보면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알게 되다면 이제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면 우리는 인생의 뒤를 돌아다보면서 우리 인생이 이렇게 짧고 허무하다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들의 앞날에 더 길고 더 위대한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 사탄의 종이 되어 사탄과 함께 영원히 멸망을 당해야 할 진노의 자식들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었노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우리들의 노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영생의 확신이 있으신 분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고 영생의 확신이 없으신 분은 이 말씀을 통하여 영생의 확신이 샘물처럼 솟아나서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영생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이란 말은 끝이 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영원을 설명하기를 참새 한 마리가 나뭇잎을 입에 물고 태평양 바닷물을 그 나뭇잎에 퍼 담아 가지고 대서양으로 다 옮기는 시간보다도 긴 시간이 영원한 시간이다. 라고 하였고 또 한 철학자는 지구 만한 커다란 쇠공을 독수리가 백년에 한번씩 날아와서 보리로 쪼아서 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영원한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끝이 없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이란 끝이 없는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1.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과 화목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로 태어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를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인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였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원수 사이가 가족이 되었고 아버지와 자녀사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무너트릴 수 없었던 죄의 담이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영생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옴으로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 영생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므로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죽음에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어 억눌려 살고 죽음에 매여서 자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늘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잠을 자도 동서남북 가려서 자야 했습니다. 구정 때나 대보름 때에는 떡을 해서 집 모퉁이마다 귀신들이 와서 먹으라고 차려 놓아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음식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내야 했고, 이사를 해도 날짜를 잡아야 했고 결혼식도 날짜를 잡고, 궁합을 보고 사주팔자를 봐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기 전에 마귀에게 억눌려 살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패배한 인생 마귀의 종이 된 인생의 삶이 이러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억눌림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두려움이 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주팔자 궁합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사가는 날 결혼식 날짜도 우리가 편한 날로 잡으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이제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에게 눌리고 구속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작은 일에도 마귀들이 우리를 간섭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마귀들이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고 간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시작이고 영생의 시작이며 구원받은 삶입니다.

3.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고 지금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는 하였지만 육신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늘 불완전하고 죄를 범할 수도 있고, 마귀의 공격을 받아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믿음이 식어져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영원한 생명은 완전하게 이루어져 우리에게서 생명을 빼앗을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서 말을 하면 천국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천국을 제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천국이 내 마음 안에 있어서 내가 죽으면 천사들에게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으로 들어갈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저는 이 일을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사람의 죽음을 많이 본 의사나 죽은 시체의 염을 많이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과 불신자의 죽음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죽을 때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죽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시커먼 사람들이 와서 아주 캄캄한 터널 같은 곳으로 자신을 끌고 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고 영생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을 때 평온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죽음 후의 시신도 깨끗하고 고 모습이 살아서 잠을 자는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냉동실에 넣어둔 시신도 손과 발이 부드럽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가 죽을 때 하늘의 밝은 빛이 비춰지고 찬송소리가 들리고 천사들이 자신을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기쁜 모습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남겨 두고 간 육신인 시체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행 7장을 보면 스테반 집사님의 죽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테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데 스테반은 죽어가면서 “천국을 보고 천국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어린양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두마디 기도를 하였는데 첫 번째 기도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직접 기도하신 것입니다.

스테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천국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천국을 보고 하나님의 보좌와 그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죽어가면서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국을 본 자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환난이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을 바라보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님께서 게신 천국이 있습니다. 나는 천국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믿음의 확신 속에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영생은 어떤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행16:31에서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셨습니다. 믿음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릴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분들은 성령께서 오셔서 나에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믿음이 생겨나고 장성한 믿음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은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강대상에서 복음을 외쳐야 성도들이 듣고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자들이 복음을 들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복음을 전해주어야 그들이 듣고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제주도 수련회를 다녀오면서도 저희 집사람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는데 두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여행사 사장으로 우리와 동행하였는데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우리 집사람과 옆자리에 앉게 되어 다시 복음을 전했고 이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영접기도를 하였습니다.
또 한사람은 한라산을 올라가는 길에 부산에서 사신다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한라산을 올라가며 할아버지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30분 이상을 따라며 복음을 전했는 데도 별 반응이 없습니다. 가만히 산을 올라가기도 힘든데 말을 하면서 따라가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만 하라고 하였고 잠시 쉬는 틈에 할아버지를 놓쳐 버렸습니다. 한라산 정상을 올라가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으세요 하며 손을 한번씩 잡으며 전도를 하면서 올라가는데 힘든지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까 전도를 받았던 할아버지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올라가는데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정상에 올라가서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한참동안 찾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람이 사진을 찍기 전에 영접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할아버지는 영접기도를 하고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직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건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우리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시는데 그것은 저를 믿고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길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의 마음 전부를 드려서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믿음은 고백에서부터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는 애인이 생기면 그 사랑을 고백하기를 열심히 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편지로도 말하고 전화로도 하고 만나서도 다정스럽고 고백을 합니다. 그래도 모자란 것 같으니까 선물을 사서 주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믿음에도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믿습니다 믿습니다 외치는 것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습니다.

4. 믿음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술집 주인이 빌리 그래함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돌아와 술집 문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술집 문을 닫습니다.” 믿음이란 죄악의 길로 달려가던 사람이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5. 순종할 때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하나 순종하며 살 때 우리들의 믿음도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크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서로 미워하고 싸우다가 인생을 다 마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은 참으로 허무했다고 말을 하며 슬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며 보호하실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굳건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삶이 아니라 값지고 귀한 삶입니다.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는 믿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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