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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절의 오늘의 의미 (출 23:16-17, 살전 0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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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절은 본래 수확제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서역사를 통하여 계 속 수확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출 23:16에 맥추절이라고 기록되 고 있는데 아마 이것이 칠칠절의 가장 오래된 명칭일 것이다. 칠칠절 이라는 용어는 밀수확의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던 특별한 축제일을 지칭하는 것이나 실제적으로는 처음 보리벧때부터 시작해서 첫수확을 끝마치는 약 7주가량의 전체 곡물 수확기간을 말한다. 실제로 칠칠절 은 첫수확물을 제물로 바치는 기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이러 한 기간은 초막절에서 끝났다. 이 절기는 희랍어 사용권의 유대인들에 게 오순절(제 50일)이라는 뜻이며 7주의 수확기간을 말한다.

 칠칠절은 7주전에 시작된 곡물수확기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보호아 래 지켜지고 성공적으로 끝맺어지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현 하는 엄숙한 의식이었다. 7주전에 드려진 곡식단은 새곡식을 음식으로 사용하도록 허락받고 제사했으며, 그 의식에 참가하는 모든 남자들은 할렐(Hallel, 시편 113-118)을 부르고 제무(Altar dance)를 추었다.

이 축제는 초대받은 가난한 자, 나그네, 레위인 등과 공동식사를 나눔 으로서 막을 내린다. 이와같이 근본적으로 영농적 성격을 지닌 의식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계약에 의해 맺어진 공 동체를 묶고 있는 형제들간의 책임유대를 인식한 것이었다. 다시말하 면 노예상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유업 으로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상기시켜주는 감동적이고 고백적인 감사로 또한 곡식을 주신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첫열매 를 드리는 의식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새 역사의 조명아래 추수의 의 미를 해석한다.

 일년에 한번씩 그 해의 수확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 절 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 부터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고, 삶의 자리를 들여다 보고 수확을 얻는 노동현장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과 노동자들의 나눔공동체의 신앙공백을 갖는 것은 맥추절을 지키는 의미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래 유목민이요 농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팔레 스타인에 들어와 비로서 농사를 배웠다. 가나안에 들어오기전에는 적 당한 농지를 만났을 때에나 농사를 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후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농사법을 배웠다. 그리고 농사와 그들의 종교행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을 뿐아니라 이스라엘의 율법도 농사를 배경으로 했다. 각지파들의 토지분배가 끝난 후 집집마다 농토를 얻어 그 근처에서 살며 돌로 경계를 표시했는데, 그 표석을 옮기는 자는 저 주를 받았다(호5:10, 신19:14,27:17). 땅은 소가 하루에 갈수 있는 면 적 곧 하루갈이로(삼상14:14) 혹은 파종하는 씨로 계산해서 마지기로 (왕상18:32) 이렇게 면적의 계수 단위를 삼았다. 추수는 4월의 보리베 기로 시작된다. 이어서 녹두도 거두며 2,3주일지나서 밀과 나맥을 벤 다. 물도 각지방의 기후를 따라 다소 다르다. 곡식추수는 약 7주간 유 월절에서 오순절까지에 끝난다. 추수에는 낫을 쓴다. 곡식을 베는 사 람이 베어놓고 가면 묶는 사람이 뒷따라오며 단으로 묶어놓고 뒷사람 이 한곳에 모은다. 레위기 19:9, 23:22에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이삭을 남겨 놓으라 했다.

 추수하는 사람들은 볶은 밀과 신포도주에 적신 빵을 점심으로 먹었 다. 맥추절(오순절)은 원래 가나안 사람들의 농사절기었던 것을 히브 리사람들이 여호와 종교화한 것이다. 이렇게 오순절은 유월절후 7주일 만에 지켰으므로 안식일과 관련시켜 일을 쉬고 성회로 모였다. 맥추절 을 지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맥추절의 의미를 오늘의 우리의 노동현 장에서 살펴보며 한국교회가 맥추절을 의미심장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60년대이후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정책이 시행되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은 점점 악화되어 왔다. 경제성장의 척도는 수출과 국민총생산(GNP) 에 의해 가늠될 뿐 민중의 복지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세 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경제성장율을 기록하면서도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하여온 노동자와 농민들은 저임금과 저곡가 정책으로 고통당해 온 것이다. 농민들은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추곡수매가로 인하여 빚더미에 짓눌려 있으며, 채소와 축산물은 수입개방정책과 유통구조의 불안등 농정의 미숙으로 인하여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기를 되풀이 하여왔 다. 현재 농가 1가구당 빚은 평균 400만원을 넘어섰고 갈수록 늘어가 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농촌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80년대초 전체 인구의 60%에 달했던 농촌인구는 지금에 와서 14%(600 만평)로 줄어 들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희망이 없는 농사일을 돌려 주 길 원치 않으며, 자식은 자식대로 힘만드는 농사일을 하려 하지 않는 다.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정책은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왔다. 1,000만 노동자라 하나 그 가족과 도시빈민충을 합하면 가히 3,000만을 넘을 것이다. 주어진 임금만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전 세보증금 그리고 자녀교육비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 았다. 공단주변의 하꼬방,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에서 저임금에 시달 리고 강제철거에 쫓기는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현실과 농민들의 현실 을 함께 보면서 한국교회가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들여다 보 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그들의 현실을 위하여 나눔의 삶을 고백 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역사참여의 과정에서 인권운동의 참여와 노동 자 농민들, 빈민들 가운데 선교하는 민중선교가 있다. 이러한 선교차 원은 사회적 역사적 물질적 현실적 신앙적 차원임을 강조하고 싶다.

 처음 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먹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의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화해사업을 위해 자기몸을 나누듯이 교회는 나눔의 정신이요 생명이다. 교회는 역사 속 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나눔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1,000만 노동자들의 고통은 어떠한가 600만 농촌인구의 고민은 무 엇인가 경제성장의 수확기를 앞에두고 고통의 분담이란 어떤것인가 수확제를 드려 맥추절을 지키던 신앙은 오늘의 이 역사 속에서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려야 하고 그리고 노동자 농민들에게 수확을 얻 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오늘의 맥추감사적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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