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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밝게 빛나는 얼굴 (출 34:29-35, 고후 03:12-4:2, 눅 0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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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 감독을 지낸 분으로서 김종필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평양에서 목회를 할 때, 다른 친구 목사 두분과 함께 공중 목욕탕에 갔다고 합니다. 세분이 옷을 벗고 탕안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그 당시 유명한 관상장 이 김아무개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분 목사님이 탕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한번 쭉 둘러보더니, "내가 지금 당신들의 관상을 봐 줄테니 가만히들 계시오"하고서는, 제일 먼저 김목사님의 얼굴부터 보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만에 그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아무리 보아도 당신은 도둑놈의 상이오. 그런데 도둑도 좀도둑이 아니고 괴 수의 상이오"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김목사님은 벌컥 화를 내면서"여보시오. 사람 잘못 보셨소. 내가 도 둑놈의 괴수라니,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오. 이래뵈도 나는 교회 목사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점쟁이는 또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목사 중에서도 괴수가 될거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점쟁이의 말처럼, 김종필 목사님은 훗날 감리교회 제8대 감독이 되 었던 것입니다.

비록 김종필 목사님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얼굴은 도둑놈의 괴수처럼 험상궂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인격이 변화됨으로써 목사가 되고 감독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나이 40세가 될 때까지는, 어느모로 보나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 입니다. 그래서 40세가 넘으면, 흔들리지 않는 균형 감각과 신념을 가지고, 치 우침이 없는 인생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직간접의 많은 경험은 물론이요 사상 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얼굴에도 분명한 모습이 나 타나게 될 것입니다.

김종필 목사님처럼, 타고나기를 원래 도둑놈의 모습을 지녔다 할지라도, 항상 좋은 말씀으로 교육받고 늘 새롭게 되기를 힘쓴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덕 을 끼치는 밝은 얼굴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아무 리 좋은 얼굴 모습을 지녔다 할지라도, 악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쁜 생각을 하며 불평과 원망하기를 일삼는다면, 그 얼굴은 이웃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 는 마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9절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모세도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안에 그 얼굴에 광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출애굽기 34장 29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하 나님을 만나뵙게 됨으로써, 주님의 그 얼굴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주님의 모습을 온전 히 닮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대 총장을 지내셨던 김활란 박사가 생전에 기도 생활을 할 때에, '예수님 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하루에 딱 한번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루에 기도를 한번만 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전체가 기도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도 하루 한번 하는 것으로 족했 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김박사님은 하루 종일 내내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후서 3장 12절 이후의 말씀에서, 어떻게 해야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①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의 참 뜻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14) 왜냐하면,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서 「주님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시며,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 니다」라고, 바울 선생님은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의 참뜻을 깨달아야, 그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어 나의 삶을 변화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를 참 자유한 자가 되게 하여, 진정으로 인간다운 모습을 갖게 해주 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되면, 그 말씀이 내게 은혜가 되 어 나의 인격과 생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 입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면, 나의 잘못된 생각이나 생활 태도를 깨닫게 되고 또한 고쳐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될 때에 나를 참 자유한 자가 되게 한다는 말 은, 자칫 성경 말씀이 내 생활을 부자유하게 하고 구속하는 계율이 되기 쉬 우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게 된다면 오히려 말씀은 우리의 생활을 질서 있 게 해주고 효율적인 삶이 되도록 해준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가치가 있는 생활, 곧 빛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 무 쓸모가 없고 세월만 보내는, 그런 무가치하고 부질없는 삶이 아니라, 뭔가 남는 게 있는, 유익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려면,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②말씀의 참 뜻을 깨닫게 되면, 주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일하신다고 했습 니다(고후3:18).

물론 말씀의 참뜻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 없이 교회만 다니게 되면, 악령이 내 속에서 역사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 사모하 고 그 참된 이치를 깨우치기 위하여 힘쓰게 되면, 그 동안에 주님의 영은 우리 속에서 열심히 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게 해주 는 것입니다. 말씀의 참 뜻을 깨달을수록 희미하게 바라보이던 하늘나라를 확 실하게 볼 수가 있게 되고, 이웃의 믿지 않는 이에게 자신감을 갖고 자랑스럽 게 주님을 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여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후서 3장 12절 이하에서 「유대인 의 마음이 두꺼운 수건으로 가리워져 있어서, 성경을 읽어도 그 참 뜻을 알 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가리운 그 두꺼운 수건이란, 고정관념과 아집을 말합니다.

 1.이 고정관념과 아집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생활의 변화도 없거니와, 빛나는 얼굴이 아닌 어두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고후 3:14). 이 고정관념을 꺾지 않은 까닭에, 그들은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 했습니다.

관상쟁이가 김종필 목사님을 보고 도둑놈같다고 한 것은 사실일지도 모릅니 다. 그러나 목사님이 스스로 「나는 도둑이 아니라 목사입니다」라고 밝힌 것 도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겉모양은 쉽게 변할 수 없었지만, 그의 속사람은 주 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누가, 그의 속사람이 변한 것 은 생각지 않고, 그의 겉모습만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우긴다면, 그처럼 어리 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의 본질은 깨닫지 못한 채, 그 외형적인 계율만 열심히 지키면서 '나 는 구원받은 사람이오'라고 주장하게 되면, 생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정죄하는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교회의 참 뜻을 잘 모르고, 겉에 나타난 구조나 행태만 아는 사람이 '나는 교회를 다 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해독만 끼치는 암적인 존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 다.

나무 잎들은 새롭게 피어나면서 윤기를 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늘 새롭게 변화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야 빛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 이나 이론만 가지고 고집을 부리게 되면, 그 얼굴에서 빛이 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변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변화되어 빛나는 얼굴을 갖게 되고, 예수님 의 그 모습이 변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 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생활 없이 교회 만 다니게 되면, 나쁜 쪽으로 변질될 염려가 많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아뭏든 고정관념에 묶이게 되면, 주님의 성령이 그 속에서 일을 하지 못합 니다. 늘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말씀을 배우려고 힘쓸 때에 주의 성령이 역사 하게 되고, 그래야 그 인격과 생활이 변화되어 밝은 얼굴을 갖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는 흔히 그 누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벌레 씹은 얼굴'이라든지,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그 마음에 기쁜 일이 있으면, 밝은 표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생 각,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 표정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좋은 생각이 나 기쁜 마음을 갖게 되면 그 얼굴이 밝아지고, 나쁜 생각이나 미워하는 마음 을 갖고 있으면 그 얼굴은 어두어지게 마련입니다.

 2.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빛의 근원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분만을 바 라보게 된다면, 어두움이 우리를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욕심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까닭에, 가끔 어두움의 세력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산다면, 우리의 생활은 날로 새로와지고 빛이 날 것입니다. 모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던 것처럼, 우리의 얼굴 또한 밝고 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잠언 28장 25절에 「욕심 많은 자는 말썽만 일으키지만, 여호와를 바라보고 사는 자는 그 얼굴에 화기가 돈다」고 했습니다. 꼭 돈이 부족하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다고 해서 얼굴에 생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돈이 넉넉하고 모두 건강하다고 해서 생기가 도는 것만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굳건 히 믿고 사는 사람만이 그 얼굴에 늘 생기가 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런고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다는 말 은, 성경 말씀따라 바르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부정직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 경우, 그의 마음은 이미 사탄이 지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물 론이요 교회와 이웃까지도 불행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하나 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께 서는 그에게 말씀의 참 뜻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리라 믿습니 다.

모세와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하신 일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 니다.

①모세는 증거판 두개를 들고 내려와, 그동안 산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을 다 이야기 해주고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모두 지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얼굴은 광채가 나고 있었습니다. 은혜받은 얼굴입니다. 말씀의 참 뜻을 깨달아서 기쁨이 넘치는 얼굴이요,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하나님과 하 나가 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르게 깨우친 그 말씀, 옳다고 여겨진 그 말씀, 참 생명이 되고 기쁨이 된다고 확신하게 된 그 말씀, 이제 남은 것은 그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서 모세는 확신을 가지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했 던 것입니다.

②예수님은 변화된 그 순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의론하고 있었습니다.

그 할 일이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는 일」이었다고 누가복음 9장 31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죽는 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비참한 일 이요 지극히 불행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들에 게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죄 없으신 예수님으로서는, 그 길 이 당연히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음성은 「이는 내 아들 이요, 내가 택한 자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눅9:35)」는 말씀이었습니 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려면, 예수님을 따라 죽어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죽어지는 삶이란, 여러분도 알다싶이 자기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지금 내 가 옳다고 여기는 것까지도 일단 접어두고, 새로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 니다. 더욱이 말씀의 참 뜻을 잘 모르면서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고정관념 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 은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요지는,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변화되어 밝은 모습으로 살 라는 것입니다. 집회서라고 하는 외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주를 두려 워하는 사람들은 빈부를 막론하고 마음이 기쁘며 얼굴은 항상 명랑하다(집 회서 26:3-4)」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세상 것이 있고 없음에 따라 그 얼굴 표정이 바뀌는 삶이 아니 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어떤 형편이든지간에 밝은 얼굴을 하고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3.거룩하신 주님을 늘 뵙고 변화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존 러스킨〉이라는 분이 자기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지키는 신조 중에 「재 물이 없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 일곱가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남에게 평온한 느낌을 주는 눈으로 도울 수 있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 을 가지고 도울 수 있다」는 말이 있으며, 「온화한 얼굴 표정을 남에게 줄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귀절입니까 무슨 거창한 이름으로 남을 돕는 것 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따뜻한 얼굴 표정을 하여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 수 있 다면, 이것처럼 소중하고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더 라도 그렇지, 밥 먹다가 돌 씹은 얼굴로 오만상을 찌프리고 다닌다면 많은 사람에게 괴로움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차라리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역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천국에 갈 하나 님 나라 백성으로서 자연스레 밝고 환한 얼굴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런 모습을 하려면, ①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깨닫는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뢸 수도 있겠으나, 더욱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없이 살다보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악한 거짓말 과 더러운 행실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구하게 되면 밝은 표정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형제를 용서하고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쁨이 넘친 표정이 될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좋은 일이로되, 내가 원 하는 기도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②주의 영이 내 속에서 역사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은 고정관념이나 아집을 버려야 내 속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 자세로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데!」 하는 순간, 악령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죽을 계획을 세우면 주님의 성령은 우리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악하고 더러운, 그래서 우거지상인 우리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거룩한 주님의 모습으 로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③확신을 갖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살려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면, 영화롭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고 높이려 하면 찬란한 챙피를 당하지만, 주의 주장보다 헌신 과 봉사로 주의 일에 힘쓰게 되면,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지 말고, 성 령을 모신 사람답게 밝게 빛나는 얼굴을 하고 살아갑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는 영광을 돌리고, 많은 이웃들에게는 기쁨의 얼굴로 사랑을 베푸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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