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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육의 조정기관 (시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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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이 세상의 역사를 이어 가는 모체입니다. 선대와 후대를 연결해 주는 지점이 바로 가정입니다. 앞서 가는 세대와 뒤에 가는 세대가 함께 머무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앞선 대가 다음 세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기관이 가정입니다.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그 미치는 영향 또한 큰 것입니다.
선대(先代)가 후대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대에게 그 책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대의 부모가 후대의 자녀들을 잘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임시로 잠시 맡겨주신 하나님이 소유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잘 양육하라”고 부모 된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자녀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강조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부모가 자녀들을 잘 양육하는 것과 자녀들이 부모를 받들어 모시며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자녀들을 잘 양육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말씀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할 것을 최 우선적으로 강조하신 말씀의 이면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며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몰라보는 자식들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4절과 5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이 화살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자녀들이 화

살로 비유되었습니다. 장사의 손에 있는 화살은 어떠한 강한 적도 무찌를 수도 있으며 자기를 방어하는 힘입니다. 부모가 늙어서 힘이 없을 때 자녀들은 부모를 보호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장사의 손에 있는 화살처럼 자식들이 부모의 큰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약할 때 자식은 부모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노년이 되면 많은 적들이 찾아 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 사회가 노동력을 평가해 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수입이 없어지는 관계로 경제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둘째, 허무함입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이렇게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셋째, 외로움입니다. 자식들에 대한 미련과 서운함도 그 한 몫을 합니다. 넷째, 두려움입니다.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는 만큼 두려움을 애써 이겨 보려고 애를 씁니다. 다섯째, 질병입니다. 모든 기관이 낡았기 때문입니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관들이 자주 말썽을 피웁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육체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신 말씀의 촛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호자입니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힘 있는 자식들이 힘 없는 부모들을 마땅히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매월 몇 푼의 용돈을 드린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돈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주 약하고 힘이 없을 때 부모님은 우리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이 나고 아파할 때 부모님은 애간장을 태우시며 간절하게 회복을 빌었습니다. 부모님은 밤을 지새우며 지켜보셨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병들기 마련입니다. 병환으로 시름시름 앓으시는 부모님의 아픔을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병 뿐만이 아닙니다. 노년에 찾아 오는 여러 가지의 적들로부터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자식들에게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님께 실로 많은 빚을 졌습니다.

보호자의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줄 때 비로소 진정한 효도가 있습니다.
가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가정은 선대의 부모가 후대의 자식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입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늘 약한 자를 보호합니다. 부모가 보호자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되면 보호자이던 부모가 오히려 보호를 받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보호자의 위치가 서로 뒤 바뀜과 동시에 보호자로서의 역할도 반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후대가 선대를 보호해야 하는 그 시기가 찾아 옵니다. 뒤 바뀌는 그 시기가 되면 미련없이 보호자의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합니다. 뒤 바뀐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옛날처럼 그대로 보호자의 행세를 계속하는 것은 실수입니다. 죽는 그 날까지 보호자로서의 삶만을 고집한다면 그 가문에는 절대로 효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보호자의 자리를 후대에게 물려 줄 때 비로소 효도가 제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요즘에 들어 와서 부모에게 효도가 어려운 것은 나이가 든 후에도 여전히 보호자의 힘과 그 위치에 서 있으려 합니다. 돈 몇푼 가진 것으로 스스로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지요. 교우 여러분, 그 시기가 되면 속히 보호자로서의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효도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대가 부모로서의 그 책임을 다한 후 보호자의 자리를 후대에 물려 주었을 때 비로소 후대가 자식들의 도리를 하게 되는 것, 이것이 순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 역할을 잘 못한 사람은 전혀 자식들에게 효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보호자이십니까 보호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동일합니다.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어린 아이들, 나이 든 어른들, 보호의 대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자녀들, 그리고 나이 드신 부모님께 얼마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보호자는 보호자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부모의 책임을 다 할 때 더욱 자식들의 효도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인생의 항해를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바다로 향할 때는 많은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아무 준비없이 항해를 하면 어려움을 당합니다. 망망 대해를 항해 하는데 돛단배를 타고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큰 파도가 일거나 비 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면 돛단배는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없이 인생을 살려 합니다. 마치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은 의외로 강한 바람이 많습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바람이나 물결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쉽게 휩쓸립니다. 잘못된 가르침의 바람이 불때 마다 쉽게 휩쓸리는 이유는 가정에서 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인생의 항해를 준비하는 특수한 장소입니다. 결혼이 그 출발지점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인생의 항해를 스스로 시작하는 그 시간까지 착실히 준비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까지 부모가 도와 주어야 합니다.
요즘 이 세상을 분석해 보면,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대부분 학교에 위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치원,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교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학교의 선생님들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학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학교 교육이 문제입니다.
내용은 철저히 인본주의입니다. 휴머니즘에 입각한 교육입니다. 학교 교육은 학과목 중심의 교육입니다. 역사, 문화, 예술 등등.. 과목별 이해와 분석이 대부분입니다. 더 나아가 공부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정보를 얻을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터득해 나갑니다.
책을 통해 얻어지는 공감대가 많습니다. 가끔씩 던지는 선생님들의 교훈도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어떤 사상과 철학들이 여과 장치없이 마구잡이로 주입되어 지고 있습니다. 방법은 철저히 성적 위주입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지식 전달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승을 따르고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한 이수해야 할 과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전한 학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학교 교육을 최선의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는 것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정은 조정 기관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무수한 생각들과 사고들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바르고 어떤 것이 그른지 분별할 수 없는 무수한 정보와 사고들이 전달되어져 옵니다. 가정은 조정 기관입니다. 각 가지의 이론과 지식이 만연한 이 세대에 철저한 조정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부모가 그 조정자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가장 바른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바르게 인식되어 지는 그러한 생각과 기준들을 자식들에게 알려 줄어야 합니다. 가정은 참되고(true) 바른 것(righteousness)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조정 기관입니다. 조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조정기를 잡고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조정 기관입니다. 어느 정도 성숙한 사고를 갖춘 수준에 도달하기 이전까지는 자녀들이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가정이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조정하겠습니까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자녀들을 조정해 주겠습니까 부모의 의지나 바램, 생각입니까 그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버린”(사 53:6)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입니다. 이기심과 자기 욕망 위주의 삶입니다. 우리가 쉽게 피부로 느끼고 접할 수 있는 대중 문화는 각기 제 길로 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그 쪽으로 방향이 잡혀져 있습니다. 이제는 부모의 권위로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그 생각이 과연 바른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학교, 이웃, 사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가정이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이 큽니다. 그래서 부모의 힘이 대단한 것입니다. 부모가 지닌 영향력은 자식에 크게 전달됩니다. 조정(control)한다는 말은 관리, 통제, 감독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조정해야 합니다. 조장 장치를 아십니까 부모의 위치를 아십니까 책임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학교가, 사회가, 그리고 교회가 잘 가르쳐 주겠지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우리들의 예를 비추어 문제아가 되지 않고 잘 자랐는데... 우리 아이들도 잘 자라 주겠지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지금의 사회가 옛날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사고와 생각들이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 팽배해 있는 사고는 의외의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알아서 잘 커겠지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정보화 사회입니다. 수 많은 사고들이 여과 장치없이 그대로 주입되어지고 있습니다. 조정해야 합니다. 조정할 책임이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이 조정기관입니다. 부모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지금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있습니까 복잡한 사고로 혼돈속으로 빠져드는 아이들을 바르게 조정해 주고 있습니까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책임을 지라고 말입니다. 조정해 주는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아이가 행할 길을 마땅히 가르치라”하셨습니다. 부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가르치고 있습니까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가르침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많습니다. 산수를 가르친다. 영어를 가르친다. 기능을 가르친다... 피아노, 미술, 그토록 가르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가장 귀한 것을 빼놓고 있습니다. 학문은 잘 가르칩니다. 기능은 잘 기르칩니다. 그러나 바른 생각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학문이 그리도 중요합니까 기능이 그리도 중요합니까 바른 생각, 바른 사고... 바른 인간이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시편 111:10)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언 1:7).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시간이 되기 전 까지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바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인격이 성숙하고 판단력이 설 때까지는 우선 하나님의 생각과 사고를 가능한 한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최선의 생각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가르침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회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가면 모든 것을 교회의 교사들이 다 알아서 가르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산입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사가 없습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교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학교에도 교회에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잘못 가르침이 참으로 많습니다.
완전한 학교는 없습니다. 교회도 아닙니다. 학교도 아닙니다. 가정 만큼 훌륭한 교육 장소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은 교육의 조정 장소입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부모는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이 가장 훌륭한 가르침의 장소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서 9절까지를 읽어 봅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한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바른 길을 가르쳐야 하며 순종하도록 강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여러 가지의 다양한 교훈들을 듣고 행동하는 아이들을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없습니까 자녀들을 잘 조정할 지혜가 없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아이가 다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그 자체가 대단히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가능성이 대단합니다. 가능성이 때단한 만큼 부모의 역할이 큰 것입니다. 좋은 부모의 역할은 좋은 자식이 만듭니다. 좋지 못한 부모의 역할은 아주 형편 없는 자식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최고의 수준에 올려 놓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짐만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어린이는 나약하지만 그러나 부모를 돕습니다. 힘과 생기를 줍니다. 이 세상을 바로 살게 하는 용기를 줍니다. 아울러 어린이는 부모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합니다. 부모로 하여금 근면케 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덕을

흠과 티가 없는 어린 아이...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봅니다. 아이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창구입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어린이는 축복입니다. 저주가 되는 인격체는 아닙니다. 행복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입니다. 그 아이들이 커서는 어는 날 부모를 보호해 주는 큰 힘이 됩니다. 장사의 손에 있는 화살입니다. 나이든 부모를 보호하고 모시는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커서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녀를 잘 양육하는 일입니다. 특히 조정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둘째,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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