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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잠 04:1-9, 딤후 01:3-14, 요 1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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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4월 6일, 한 아이가 부드러운 봄볕을 받으면서 출생했습니다. 건강한 사내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안타깝게도 팔과 다리가 없어서, 보기에 흉측한 모습을 하고서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정상이었다면, 감동적인 모자 상봉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난 산모에게 큰 충격이 될 것이 틀림없기에, 병원 측에서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모자 상봉을 미뤘습니다.
그러나, 한 달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엄마에게 아이를 보여줘야 할 시간이 되자, 그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아연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자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흉측한 아기를 보자마자,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기절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엄마는 “어머! 귀여운 우리 아가야…”하고 탄성을 질렀던 것입니다. 뜻밖의 모자 상봉이었습니다.
엄마에게는, 비록 팔다리가 없는 아기일지라도, 자기 몸으로 낳은 소중한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귀여워할 줄 안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 엄마의 모성애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사람은 이처럼 자기 자식을 끔찍하게 여깁니다. 자기 자식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우리 나라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다 자식의 앞날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식이 부디 빗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소중한 자녀에게 과연 무엇을 물려주시렵니까 넓은 토지와 아름다운 집, 아니면, 재산을 물려주겠습니까
잠언서 기자는 “얘들아,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 듣도록 하라! 이 아비가 착하게 사는 길을 알려주겠다(잠4:1)”고 하면서, “지혜를 얻고자,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온 힘을 기울여라!(4:5)”하고 교훈 했습니다.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그 지혜는 “그 사람을 애지중지하고 영화롭게 한다(잠4:6-8)”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를 가까이할 때에, 그 인생이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가 진정 영화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사랑하는 그 자녀에게 지혜를 열심히 가르치면서, 그 지혜를 가까이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딤후 1:7에서 말하기를,『성령께

서는 우리가 지혜롭고 담대하며 절제와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저와 여러분도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욥기28:28을 보니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잠1:7에서도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말하기를 “지혜를 얻는 것이 은(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황금(黃金)보다 낫다(3:14)”고 했습니다.
지혜를 가리키는 원어 ‘호크마’에 대하여 주석자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심’이라 풀이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있는 분별력’이라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악을 멀리하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것’이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토록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공경심’을 잘 심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공경해야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되고,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으며, 지혜롭게 살아야 그 인생이 빛나며 영화롭게 된다는 것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지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의아하게 여기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가진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세상 학문은 무척 중요하게 인지시키면서

도, 하나님께 대한 공경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려서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었던 대도(大盜) 조세형 씨가 이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은 도둑질을 하고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도둑질로 연명해 온 그로서는,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부잣집에서 도둑질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예수를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지 않아도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조금 잘못된 줄은 알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 줄은 알지 못합니다. 예수를 잘 믿지 못하는 이들은, 부모 공경이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① 많은 사람들이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며 영화롭게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정말 복되게 살 수 있는 길인지, 그것을 잘 모르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깊이 따져볼 여유를 갖지 않고, 무작정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듯하다가 천박한 자리로 빠뜨립니다. 명예가 사람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치와 창피만 잔뜩 안겨다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 이치를 깨닫고자 힘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신앙인으로서 진리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②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실하게 살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슬쩍 모른 척하고, 때로는 가볍게 거짓말도 하면서 살아야,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는데, 그렇게 살자면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육신도 고달프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신경 안 쓰고 육신도 편한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바울은 말하기를『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딤후1:3)』이라고 했는데,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이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자신의 육신이 편하고 마음만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디 그 원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무책임하게 사는 사람은,
③그 결과가 아름답지 못합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주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지혜를 멀리하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아무런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게 마련입니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산 인생의 결과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대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그 지혜를 얻어 살고자 할 경우에는

2.하나님께서,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요15:9)』고 하시면서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사는 것(10)』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을 지켜 살도록 하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 우리에게도 충만케 하려는 것(11)』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딤후1:9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일을 맡기려고 우리를 선택했다』고 했는데, 그 거룩한 일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을 멀리하고 진리를 지켜 사는 자가 복되다’고 하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과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좀 힘들고 어려워도 피조물로서 지켜야 할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 된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영화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부름 받은 우리가 보여줘야 합니다.

3.우리는 거짓을 멀리하고 진리를 지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처음에 소개해드렸던,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그 아이는 일본 사람입니다. 지금은 성장해서 일본의 명문대학인 와세다 대학에 재학중입니다. 팔다리가 없는 비정상인이지만, 그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듬뿍 쏟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구김살 없이 자라게 했습니다. 그 결과, 정상인도 들어가기가 힘든 대학에 입학해서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참 사랑입니다. 식물이 햇볕을 받아야 잘 자라듯이,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바로 맑은 공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맑고 깨끗한 영적 기운입니다. 곧,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지혜롭고 담대하며, 절제와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할 경우, 우리 가까이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그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①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 무엇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분별력이라 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와 진리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신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 영광’이라는 것을 확고히 하고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몸부림치도록 해야 합니다.

②그리고, 거짓을 멀리하고, 진리를 지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무조건 배척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된 자는 타협하자고 유혹할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 완벽하게 살 수 있느냐’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올무를 놓습니다. 이때, 우리는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것은 얼마든지 양보하되, 하나님의 진리는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진리를 지켜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진리는 믿음으로 지키고,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되는 것이, 우리 믿음 자의 최고 목표입니다.
③진리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보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와 지혜’는 ‘나’가 아닌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거짓’은 항상 자기 자신과 자식을 앞세웁니다. 그 결과, 거짓은 멸망에 이르게 하고, 진리는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거짓된 자에게 속지 마십시오. 진실로 자식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자식에게 참된 사랑을 베푸십시오. 자식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고, 또한 그 지혜대로 살아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참 사랑입니다.
아무쪼록, 자신은 물론이요, 자식이 영화롭게 되는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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