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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소망 (요 05: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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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가지에 푸르른 나뭇잎이 앞다투어 솟아나오고 가지각색의 꽃들이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계절에 부활절이 있다는 것이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살아 있는 세상 사람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진리이며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진실로 진실로”를 덧붙인 말씀에 더 무게가 실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도 24절과 25절 서두에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미래에 있을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때” 즉 예수님께서 그 옛날 성육신하신 몸으로 지상을 거니실 때, 이 말씀을 하시던 그 때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즉시 나사로는 살아났습니다. 죽은 회당장의 딸의 손을 잡으시고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자 역시 살아났습니다. 상여에 운구되어 가던 과부 아들의 시신을 보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자 그도 살아났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자는 이처럼 살아났습니다.

주님께서 듣는 자는 살아니라라는 말씀을 하실 때 이와 같은 문자적인 의미도 의도하셨으리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분의 마음에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분께서 25절에서 말씀하신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24절에서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믿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사망에 처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있는 세상 사람들을 죽은 자로 언급하신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사람은 그렇게 할 의향을 드러내었지만 먼저 부친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 있다가 죽으면 장사를 치르고 좇겠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9:60)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러줄 수 있겠습니까 앞의 “죽은 자들”은 살았으나 영적으로 죽은 세상사람들을 뜻하고 뒤의 “죽은 자들”은 문자 그대로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선언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그렇다면 왜 이런 표현을 쓰는지 예화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꽃꽂이 꽃은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인위적인 배열을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 있는 꽃보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꽃꽂이 꽃은 원 줄기에서 꺽여질 때 사실상 생명이 죽은 것입니다. 남아 있는 생기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일정기한이 지나면 완전히 시들어 버립니다.

생명의 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상태가 바로 줄기에서 꺾여진 꽃과 같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의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라는 말이 이들에게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내용이지만 이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영적인 죽음 상태에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은 이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자가 영적인 죽음 상태에서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이 단순히 듣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어야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이라는 말에는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죄로 인한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뜻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하신 이 요한복음 5장 24-29절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앞서 꽃꽂이 꽃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생명이 끊어진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꽃꽂이 한 꽃을 말 그대로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을 빨리 생명 있는 나무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꽃을 피우며 생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들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

생기가 다 사라지고 나면 접 붙여도 희망이 없습니다. 생기가 남아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도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닙니다. 늦기 전에 빨리 해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로서는 마냥 지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떠맡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은 그분의 부활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에게 부활이 있음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15:13)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15절)

부활은 정말 희망의 멧세지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부활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이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다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만 할 때가 올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는 계속 거부할 수 있지만 그 때에는 원치 않더라도 그분의 음성에 따르게 될 것이며 그분께서 심판하시는 대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선한 일을 행하면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상관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인 선행으로 구원받고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자는 한 명도 없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뜻하며 25절에서 언급한 바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선한 일이 믿음을 가지는 것을 뜻하고 악한 일이 믿지 않는 것을 뜻하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주장에 쉽게 수긍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곧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분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생명의 주 되신 그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부정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독생자를 보내어 죽기까지 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짓밟는 것입니다.

불신에 대해서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향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2:3)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5장 40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40)

당신이 이런 상태에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분을 영접하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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