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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래교회의 과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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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교회에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 앞에서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은 시골교회에서 여자들이 대중기도를 하였다. 맨 처음에 대중기도를 한 것은 과부였다. 그녀는 조용하게 낭랑한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적어도 서울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매켄지는 이 과부의 기도에 대하여 “과부가 드린 기도는 훌륭하고 겸손했다. 그녀의 기도는 성령께서 그녀의 심령을 감동시킴으로써 나온 것임에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 여성은 서경조 장로와 더불어 소래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자 신도였던 과부 할머니인 것 같다. 매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여기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 청년 마구례가 한국 선교사로 건너왔다. 그는 1900년 어느날 언더우드와 함께 소래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서는 세례문답이 실시되고 있었으며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백발이었고 얼굴에는 세상의 많은 시련을 겪은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 반짝였고 티 없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이것을 본 마구례는 언더우드에게 물었다. “목사님,교회의 회의에 여자들도 참여하나요? 이 할머니는 누구십니까?”
언더우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안나를 모르세요? 이 할머니는 가난한 과부인데 교회 부지를 헌납했고 전도사의 사택 건축을 위해서 많은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어요. 이 할머니는 지난해 쌀 아홉 가마를 수확했는데 그 중 아홉말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며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외에도 적은 수입을 쪼개어 전도사업에 바칩니다.” 마구례는 다시금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그어진 굵은 주름살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조선의 풍속에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세례문답을 할 때는 나이 많은 이 할머니가 항상 서 장로를 비롯해 남자 집사들과 함께 문답에 참여한다고 설명하였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 여성들은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명수<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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