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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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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를 세운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은 여성들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부가 함께 사역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당시 전통적인 교단에서는 부인들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양선교회는 부부가 한마음으로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권장했다. 이것을 위해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대)에서는 남녀공학을 실시했다. 부부를 받아들여 미래에 함께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많은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한국 신학교육에 귀한 선례가 됐다.

1911년에 시작된 경성성서학원의 남녀 공학은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된 것이다. 필자는 이 최초의 남녀 공학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진에 따르면 남자들은 책상을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여자들은 그 옆에 의자 없이 책상 앞바닥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다. 아마도 여자들이 의자에 앉아서 공부한다는 것을 당시의 관습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부부 기숙사는 없었고 남자와 여자들은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남녀기숙사에서 떨어져 살아야 했다. 물론 서로 왕래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당시 관습으로 볼 때 매우 독특한 제도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런 남녀 공학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동양선교회는 일본에 고쿄성서학원을 세우고 이미 남녀공학을 실시했다. 이곳에 한국인 정빈이 유학했다. 정빈은 이곳에서 남녀가 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정빈이 다닌 한국 교회에서는 가운데 휘장을 쳤기 때문에 오래 다녀도 남녀가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남녀가 같은 방에서 서로 바라보며 같이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정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성소의 휘장을 찢어 놓으셨는데 아직도 한국 교회에는 휘장이 가로놓여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장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오히려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유교식으로 이해했고 여성들의 활동은 더욱 제한되었다. 그러나 한번 들어온 여성해방의 복음은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계속되었고 오늘의 한국 여성들을 만들었다.
/박명수<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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