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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국의 첫번째 여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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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동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였다. 그녀는 원래 선교사들이 세운 동대문진료소(현 이화여대 부속병원)의 간호보조원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여인들처럼 이름이 없었던 그녀가 세례를 받으면서 에스더라는 이름을 얻었다. 감리교 여자 의료선교사였던 홀 부인은 에스더를 의사로 키우고 싶었다. 에스더는 처음에는 수술이 두려워서 의사가 되는 것을 싫어했지만 홀 부인이 언청이 수술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우선 에스더에게 급한 것은 결혼이었다. 선교사들은 신앙을 가진 남자들 가운데서 에스더의 남편감을 찾았다. 그래서 선발된 사람이 박유산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박유산의 신분이 에스더보다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홀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지체가 높거나 낮거나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신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결국 이들은 1893년 5월24일 결혼하였다.

1894년 12월 홀 부인은 에스더와 그의 남편 박유산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에스더에게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다음해 2월 에스더는 공립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남편 박유산은 농장에서 일하며 아내의 학비를 마련했다. 2년 후 에스더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 의대)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동안 남편은 볼티모어의 식당에서 일하며 아내를 돕다가 결핵에 걸렸다. 결국 그녀의 졸업을 앞두고 박유산은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그는 아내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일하다가 죽은 최초의 한국 남성일지 모른다.

1900년 에스더는 한국 최초로 서양의학을 공부한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돌보아준 홀 부인과 함께 평양의 여성전용병원인 광혜여원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어려운 환자를 치료했다. 에스더 역시 남편과 같이 결핵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1910년 4월13일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한국의 첫번째 여의사 에스더(김점동)는 믿음으로 살다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박명수<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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