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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설「뎡각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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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의 옥쇄(玉碎)와 탄금대의 배수진(背水陣) 이후로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온 국토를 유린당했었다. 신하들은 거의 도망치고 허기진 임금은 등에 업혀 임진강을 건너고 있다. 병자호란에는 삼전도에 차린 수강단에서 오랑캐 앞에 임금이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당한 백성들은 울화를 가눌 길 없었고 더욱이 울 안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부녀자들에게 국민이라는 의식이 모락모락 타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쟁에 지새우는 사나이들에게 나라 맡긴 것이 처절한 임금의 두 몰골로 보상받았다는 부푼 의분이 숨구멍을 차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이에 소설 속에서나마 여인이 전쟁에 나가 사나이들이 하지 못했던―적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데 의기가 투합된 것이다.
유몽인(柳夢寅)의 「홍도전」도 그것이다. 주인공 홍도는 남원전투에서 남장여인으로 전투에 참가, 무력하고 용기를 상실한 사나이들에 대한 민중의 반감을 승화시켰었다.
병자호란을 주제로 한 여걸(女傑)소설 「박씨전」의 주인공 박씨는 한 끼에 한 말씩 하루 서 말을 먹는 여장군으로, 호란 당시 백성의 증오가 총집결됐던 오랑캐 장수 용골대를 잡아 머리를 톱질하여 남한산성에 걸어놓게 한다.
오랑캐 장수 하나가 묶인 채 박씨 앞에 엎드려 천하를 횡행하면서 무릎 꿇은 적이란 이번이 처음이라 고하고 용골대의 목을 돌려주길 간청하자 백성들 한의 만 분의 일도 못 풀었다 하며 거절하는 위풍당당한 박씨―그녀를 통해 남한산성에서 품은 민중의 원한을 승화시키고 있다.
일상에서는 억눌리며 죽어살아온 한국여성들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 억눌림에 반동, 활달하게 억누른 자에게 보복하는 페미니즘이 한국 고전소설의 소설 외적 기능이었다. 「배비장전」에서 정랑이가, 「가루지기타령」에서 옹녀가, 「옥단춘」에서 옥단춘이, 「신유복전」에서 일일이가, 「이진사전」에서 경패가, 「정수경전」에서 소저 등 여주인공들이 남성들을 납작하게 만들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반란군을 진압, 사직을 바로잡는다는 18세기 후반의 전쟁소설 「뎡각녹」이 발굴되어 한국 소설 페미니즘에 무게를 실어주게 됐으며 근간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의 활동 유전자를 그에서 보는 것만 같다.
/이규태/ 조선일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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