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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아 일어나라 (눅 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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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신축 뒤뜰에 보면 목련나무에 이제라도 곧 터질듯이 주렁주렁 생명의 꽃방울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동안 죽은 듯하던 나무들 가운데 파란 싹들이 돋기 시작하면서 봄은 왔음을 알립니다. 생명의 활발한 지지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생명의 봄이 왔건만 이런 봄을 못 느끼는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나무에는 봄이 와도 어떤 싹이 나거나 꽃이 피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인생의 봄과 같은 청년의 때에 관에 누어있는 죽은 청년이 나옵니다. 청년은 청년이되 죽은 청년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들을 관에 넣어 무덤에 파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죽은 청년에게 생명을 주시고 청년이 청년된 삶을 살게 도와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나 여러분 모두 이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의 생명을 공급받아 청년의 기백과 믿음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기백과 믿음으로 일년의 시작인 봄학기를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울지마라 하신 예수님(11-13)
예수님 일행이 나인이란 성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때 성에서는 죽은 자를 멘 장사 행렬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제가면 언제 오라 어이어... 죽은 자는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찍히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만 잘 되길 소망하면서 어렵게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유일한 인생의 낙이요, 소망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외아들을 볼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니는 어머니께 효도해야 된다, 너희 어머니가 너 하나만 보고 사는 거 니도 알지. 그는 이런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나인의 최고의 대학인 나인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합격자 발표날에는 어머니와 함께 사진도 찍고,맛있는 불고기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외아들이 대학생활을 잘 하도록 노트북 컴퓨터도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신입생 사발식을 한다고 도통 안 먹던 술을 선배들이 강제로 먹였습니다. 술을 먹인 것이 잘못되어 외아들은 의식을 잃더니 얼마안가 죽어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과부는 까무러쳤습니다. 천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며칠 밤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입이 있었지만 이런 그녀에게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울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도 무력합니다. 어느 누가 외아들을 잃은 이 과부를 위로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과부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13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바쁘셨지만 한 과부를 눈여겨서 유심히 보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눈은 이 불쌍한 여인에 대해 깊이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의 슬픔과 눈물을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수님도 외아들이라서 더 잘 이해했는지 모릅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같이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이 과부에게 울지 말라 하고 위로하십니다. 울지 말라는 말 뒤에는 예수님께서 이 과부의 울음의 근원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울지 말라 말씀하신 예수님 만이 우리 인생의 슬픔의 근원인 죽음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박살내신 권세자이십니다. 모든 인류가 죽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계의 반을 정복했던 징기스칸도 이 죽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모짜르트로 죽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모든 인류는 절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 몸부림을 칩니다. 최근에는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양을 복제했습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인간 복제를 하고자 합니다.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든 후 자신이 아플때 복제인간에게서 그 필요한 장기를 떼어 자신의 아픈 장기를 갈아끼우면서 영원토록 살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죽지않습니까 그래도 사람은 죽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생명에 대해 놀라는 것이 몸이 멀쩡한데도 생명이 다해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허무, 슬픔은 과학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죽음 권세를 파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만이 이 죽음 문제의 해결자요, 위로자가 되십니다.
저는 국민학교 3학년때에 2달 동안 편도선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죽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죽음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공부를 하고자 해도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 인생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저는 죽음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많고 눈물이 많은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조그만 일에도 울었습니다. 김소월의 슬픈 시를 읽고 울고, TV드라마를 보고도 울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때 저는 더 이상 죽음 앞에서 허무를 느끼며 눈물을 값없이 흘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이 예수님을 만나는 누구나 죽음이 주는 허무와 슬픔의 눈물 샘이 마르게 됩니다. 울지 말라 하시며 참된 위로와 능력자 되신 부활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2. 청년을 살리신 예수님(14-17)
14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예수님은 가까이 오사 청년이 죽어 담긴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가던 장사행렬이 이 예수님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혀 가던 인류의 장사행렬을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님은 관속에 누워있는 죽은 자를 죽은 자야! 하고 부르지 않고 청년아 !하고 부르십니다. 청년아! 하고 부르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죽은 자를 청년되게 하는 생명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청년은 나이가 젊다고 청년이 아닙니다. 나이가 젊어도 관속에 있으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패배감의 관에 누워있으면 그는 패배감의 죽은 자입니다. 안일의 관 속에 누워있으면 그는 안일의 죽은 자입니다. 쾌락의 관 속에 누워있으면 그는 쾌락으로 죽은 자입니다. 청년은 원대한 비젼과 당찬 기백 그리고 사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원대한 비젼과 기백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해외여행을 하고 오면 됩니까 아니면 태권도를 배우면 생깁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 내가 네게 말하노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죽은 자를 청년이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어떤 관에 누워있을 지라도 다시 일어라 걷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봄학기 우리 모두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여 청년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을 말합니다.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 가운데 충만할 때 우리는 참된 비젼을 가진 청년이 됩니다. 우리가 청년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을 채우는 일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꼭꼭 찝어서 먹고, 또 자투리 시간에는 부활장을 암송하고, 매주 한 편의 소감을 깊이 있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틈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읽어서 내면에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비젼과 스피릿을 줍니다. 우리 모두 이번 봄학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구까지 꼭꼭 눌러서 채우는 학기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이가 60이 넘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의 실수나 잘한 것에 매이지 않고 죽는 그 순간까지 청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편협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열심을 가지고 있되 자신의 민족만을 위해 쓰고, 또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교만과 이기심,탐심에 죽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쫓아 사는 원대한 비젼과 죽음도 불사하는 기백을 소유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는 대통령 재선에서 레이건에게 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자신의 패배와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패배감과 상실감의 관 속에 누운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미국대통령이 되게 하시고 또 떨구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때 그는 세계 평화라는 원대한 비젼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청년 지미 카터가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열등감과 미움으로 죽은 자였습니다. 고등학교때 저를 순진하다고 놀리는 친구들에 대해 극도의 미움을 소유했습니다. 고등학생때 매일 밤 저는 이런 친구들에 대해 살인하는 계획을 공상했습니다. 또 저는 머리가 나쁜 것, 노래를 못 부르는 것, 외모에서 개구리처럼 입이 크고, 귀가 작은 것 등에 대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열등감으로 자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럴때 저의 내면은 늘 어두웠습니다. 나이는 젊었어도 애늙은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했을때 저의 내면은 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았던 별을 저도 보게되었습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같은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원대한 비젼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고 죽은 자에게 말씀하시자 죽은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죽은 자도 일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우리 모두가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죽음의 관을 박살내고 일어나 청년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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