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이 자라야 한다 (마 13:1-9)

첨부 1


교우 여러분 중에서 신앙생활을 5년, 10년 또는 그 이상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앙이 이토옥 자라지 아니하는가 염려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는 내가 10년 전에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그때보다도 더 퇴보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하고 느끼지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이렇게 오래 예수를 믿어 교호에 열심히 다녔는데 왜 신앙의 열매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은사도 없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한 교우들께서는 오늘 성경 말씀에 마음을 모아서 대답을 찾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천국의 진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무려 일곱 가지 비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은 오늘 비유를 더 실감있게 느끼실 줄 압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습니다. 또 어떤 씨는 옥토에,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잘자랍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교훈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땅이 굳어 있고 단단하기 때문에 씨가 새 움을 돋고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그냥 그대로 있다가 새들이 와서 주워 먹고 말았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바위 위에 얇은 흙이 덮여 있는 밭이기에 씨가 뿌려진 다음에 처음 뿌리를 내리는 듯했지만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뜨거운 햇빛이 비치니까 그냥 메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가시덤불이 자랄 만큼 좋은 땅이기에 처음에 잘 자라는 듯 싶었지만 결국 가시나무의 기운에 막히어서 더 이상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데 비해서 옥토에 떨어진 씨는 잘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서 천국 진리를 설명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씨앗은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씨앗이 뿌려진 밭은 우리 마음의 밭을 가리킵니다.
이 비유에 네 종류의 밭이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도 네 종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진리가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네 종류의 밭에 내 자신의 마음을 비교해 보면서 나의 상태는 어떠한가를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은 본래 부드러운 흙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고 마차가 왕래하다 보니까 단단해졌습니다.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원래는 부드럽고 좋은 마음씨였지만 세상에서 잘못된 생활, 습관, 즐길 거리를 찾다 보니까 어느 새 마음이 굳어지고 생활이 고착되어서 새로운 진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유교 전통의 가문에서 살아오신 분들, 전통적인 가정의례를 지켜 오신 분들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가 어렵습니다. 너무나 이질적인 생각과 생활에 젖어 있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못 받아 들입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진리가 잘 자라는 곳이 있는 반면에 마치 길가처럼 제대로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숨도 피우지 못하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은 한결같이 길가처럼 단단한 지역입니다. 오랜 종교와 사상, 이념으로 단단히 묶여진 그런 땅에는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중동의 아랍 지역은 이슬람 종교로 굳어져 있습니다. 인도는 힌두 사상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는 불교 사상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중국은 한때는 공산주의였고, 또는 그 이전에는 불교나 유교나 무속종교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진리가 잘 심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마음이 닫혀 있으면 복음이 외곡으로 돌다가 사탄에게 뺏기고 맙니다.

둘째, 흙이 얇은 돌밭 같은 마음입니다.

여기 돌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 나라 돌밭은 우리 나라와 다릅니다. 우리는 작은 돌들이 있는 돌밭을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돌밭은 오히려 바위밭이라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래는 바위로 되어 있고, 또 어떤 곳은 석회암층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얕은 먼지와 같은 흙이 깔려 있습니다. 아마 원래는 바위산이지만 바람에 먼지가 날려와서 쌓이고 쌓이고 해서 흙이 얇게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곳에 씨앗이 심겨지면 뿌리를 잠시 내리지만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결국 햇빛에 말라죽고 맙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 흙이 얕은 돌작밭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얼른 잘 받아들입니다. 또 자기 마음에 맞을 때는 열성도 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핍박이 있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신앙생활 때문에 겪는 곤란이 생기면 금방 또 신앙을 저버립니다. 퍽 감정적이고, 기분 따라 신앙생활이 들쭉날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쟁개비” 믿음이라 합니다.
시작은 있지만 끈기가 없기 때문에 마치지를 못합니다. 입학은 해도 제대로 공부를 못 하기 때문에 졸업을 못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마라톤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지만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부족해서 마지막 골인점까지 가지 못하는 선수와 같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신앙에 대한 확실한 깨우침과 확신 없이 그저 기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마치 돌밭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의 심령 속에는 결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셋째, 가시밭 같은 마음입니다.

흙은 부드럽고 좋습니다. 가시나 잡초들이 자랄 정도로 좋은 땅입니다. 이런 곳에 씨앗을 심고 보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랍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가시 기운에 억눌려서 더 이상 자라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심어져 마음속에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너무 분주한 나머지 세상의 가시에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서 때로는 명예를 찾고, 직장일에 바쁘고, 사업에 바쁘고, 이러저런 염려와 근심, 자기 생활에 바쁘게 쫓기다 보니까 신앙생활을 소홀히 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가시덤불 속에 갇혀 있는 복음의 줄기와 같습니다.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
사실 세상엘에 바쁜 사람이 무능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 자기 분야에서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욕망에 더 사로잡힙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 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사도 야고보가 지적하기를 “두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꺼번에 두 말을 타고 달리려고 합니다. 한꺼번에 하나님과 재물, 명예를 같이 섬기려고 합니다. 둘 사이에 오락가락합니다. 둘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머뭇거림이 있습니다.
한 발은 들여다 놓고 한 발은 세상에 들여놓고 있습니다. 한때는 세상일에 바빠서 교회에 들여놓았던 발을 살며시 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지.” 하고 교회에 발을 힘껏 들여 놓는 것 같지만 역시 세상에 끌리고 맙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작품에 나오는 한 인생살이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10년, 20년 예수를 믿어도 내내 제자리 걸음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믿음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넷째, 좋은 밭,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 열린 마음,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깨닫고, 그리고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진리와 더불어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에는 힘이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중심이 있고, 내일이 있고, 신념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
즉 옥토와 같다는 것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결실해 가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 옥토가 되어 있지를 못 합니다. 때로는 감정에 치우칠 때도 있고, 때로는 고집을 부릴 때도 있습니다. 우쭐될 때도 있고, 때로는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삶과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 가야 합니다.
중동의 이스라엘 땅에 농사지을 수 있는 곳은 북부 갈릴리 지역의 극히 제한된 부분밖에 없습니다. 전 국토의 80% 이상은 경작할 수 없는 불모지입니다. 더구나 국토의 절반 가량이 사막이나 광야입니다.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땅입니다. 그리고 산지가 30% 되는데, 산지도 숲이 우거진 산지가 아니고, 그야말로 돌밭입니다. 돌산들입니다. 메마른 땅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황막한 땅, 박토에다가 자기가 선택한 선민들을 불러서 살게 했을까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라고 하셨는데 복을 주신다고 주신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풍요로운 땅이 아니고 왜 이렇게 전 국토의 8할 정도가 불모지처럼 되어 있는 그런 땅에 와서 살게 하셨을까 의심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광야나 사막에 새 관개시설을해서 파이프로 물을 끌어다가 스프링 쿨러로 물을 뿌려서 각종 채소와 과일 나무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등성이에는 그 메마른 땅, 돌들이 많은 그런 땅을 또 경작해서 포도나무를 심고 감자를 심고 있습니다. 심지어 산 정상까지 개간하고 있습니다. 산 정상까지 요단 강물을 끌어올려서 농경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낮은 곳에는 채소나 과일나무가 많이 있는데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먹고도 남아서 절반 가량을 유럽에 수출한다고 합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 정말 쓸모없는 박토일지라도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가와 같이 완강하고 고집 세고,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돌밭처럼 험하고 악한 사람일지라도, 가시밭처럼 세상 재미, 세상 욕망 추구에 급급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몸을 주님 앞에 맡기면 주님께서 농부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옥토로 개간해 주십니다.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입니다. 기경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쟁기를 가지고 땅을 뒤집어 엎고, 부드럽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간할 때 씨앗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땅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옥토로 개간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심어져서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줄기를 내릴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만큼 좋은 땅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 갈 수 있습니까 한사람의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원래 베드로는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급하고, 어떻게 보면 완강한 사람이고 강직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뒤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겸손이란 도저히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성품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만나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 앞에 무릎 꿇을 줄 알았고, 예수님 앞에 온유할 줄 알았습니다. 순종할 줄 알았고, 나중에는 자기 목숨을 예수님을 위해 던질 수 있을만큼 희생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완강한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우쭐대는 사람이 남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 변화의 과정 속에 믿음의 성장이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믿음이 자랐겠습니까 세가지 단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 1단계, 회개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 순간부터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베드로를 자기 제자로 삼았습니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을 때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단순히 죄를 뉘우치고 깨닫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깨닫고 난 뒤에 삶의 중심을 자기 중심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벼노하시켜가야 합니다.
내 이익, 내 생각, 내 욕망, 내 사상, 내 신념, 이러한 것들이 나를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 중심으로 나의 삶이 전환되어가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회개가 있습니까 예배드리는 한 시간 동안은 지금까지 한 주간 동안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를 돌려놓은, 돌려세우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이 자랍니다.

제 2단계, 믿음의 확신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니까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울 것이라. 천국 열쇠를 네게 주겠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자신의 메시아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이런 믿음을 확인한 다음에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단순히 머리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내가 주님을 체험하고, 내가 주님을 소유하고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고, 주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로 확실히 믿는 이 믿음이 있을 때, 믿음이 자랍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자라납니다.

제 3단계,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가지실 때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경고를 하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 희생,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베드로도 한때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을 깨우치고 일어나서 일생 동안 주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켜 갑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꼭 베드로처럼 십가가에 메달려 죽는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스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라고 했습니다. 즉 내가 처한 환경, 내가 처한 위치, 내가 처한 가정, 내가 처한 직장, 내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처지나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나의 십자가다.”라고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이 일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켜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의 성숙한 열매가 맺혀집니다.
십자가의 삶은 골고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원형극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어떤 처지, 어떤 환경, 어떤 일을 하든지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 주셔서 나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그 현장에 믿음이 자라고 믿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마음의 밭은 어떠합니까 굳은 길가와 같습니까 아니면 엷은 돌밭과 같습니까 가시덤불에 얽혀 있는 밭과 같습니까 옥토로 바꾸셔야 합니다. 옥토로 개간하셔야 합니다.
진실한 회개만이, 믿음의 확신만이, 십자가의 삶이 나의 심령을 옥토화되게 해서 믿음이 자라게 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갖게 하고, 믿음의 은사를 나눌 수 있게 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게 합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