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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 성의 두 소경 (마 2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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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신앙의 문제

오늘날 신자들 중에는 믿음의 생활을 하나의 지적인 습득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 인간의 구주가 되심을 압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나는 저 세계에 하늘 나라와 지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으로 들어갈 줄도 압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이런 믿음의 지식을 하나의 신앙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히브리서에 언급된 것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 성경이 강조하는 믿음만 가지면 우리 자신의 현실적인 소원도 성취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영원한 내세의 천국을 바라보며 그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길을 밟는 것이 믿음이지만, 이 믿음을 가지면 이 세상의 역경과 시련과 질병과 고통도 부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의 믿음에는 확실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동시에 참 믿음은 내 생활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을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내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고, 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교회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 인정함을 받는 가운데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로 올라갔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아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삭까지도 내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든 기적적 역사는 믿음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난관을 파괴하고, 믿음으로 기적을 창출하고, 믿음으로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소년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간질병을 고쳐주셨을 때 제자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만 소유하면, 믿어지는 그 내용은 그대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는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 또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과 기사는 모두 믿음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고 고침을 받은 것도 믿음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살아난 것도 마르다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나서 이루신 주님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축복입니다. 믿음은 은사를 수반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 속에 생명의 씨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처럼 믿음 속에 다양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으로 귀결을 맺고 있습니다.

2. 두 소경의 체험

본문에서는 여리고 성에서 예수님이 나오실 때 두 사람의 소경이 예수님을 향해 고쳐달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안수하고 고쳐주신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치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천 년 전에 이루신 역사를 지금도 우리의 생활에 그대로 이루십니다.

이천 년 전 여리고 도성의 두 소경이 체험은 확실한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이 기적인 이유는 현대과학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소경의 병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의 눈을 만져 주셨습니다. 그러자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두 소경이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몇 시간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민망히 여겼다.” 는 말은 “간절히 열망했다.” “긍휼히 여기며 동정심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두 소경의 믿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아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빛과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능력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만 움직일 수 있으면 내 모든 문제는 그대로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34에 보면 “ 저희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들의 눈을 만져 주셨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디로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창조적인 손길로 친히 두 소경의 눈을 어루만져 보게 해주셨습니다. 만진다는 말의 원어는 “불을 피운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의 손으로 만졌을 때 불이 피어나듯이 뜨거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들의 눈에 손을 대자마자 단번에 신적인 능력이 치료의 불길로 역사하여 그들의 눈이 떠졌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보통 신자들은 뜨겁다는 말을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고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육신적으로도 뜨겁든지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여리고 성에서 나오시면서 두 소경의 눈을 만지셨을 때 예수님의 손바닥이 불덩어리같이 되어서 그들이 뜨거워졌다는 말입니다.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만진다’는 단어 자체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수하면 병도 불도 받습니다. 안수하면 방언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암울한 현실 때문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사업의 실패로 인해 절망하지 마십시오. 육신적인 질병과 현실적인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만 소유하면 그 문제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해결해 줍니다. 믿음이 진정으로 내 마음 속에 있고, 그 믿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역사가 일어나면 기적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두 소경의 눈에 손을 얹어 안수했을 때 곧 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수한 후 일주일이 지나자 눈에서 딱지가 떨어지면서 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안수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치유의 체험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병마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지신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면, 예수님의 마음에 충격을 주기만 하면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것처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다가 감동을 받고, 마음에 변화가 생길 때 자신도 모르게 오랜 시간 동안 가지고 있었던 병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망하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안고 있는 인생의 문제는 모두 나의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소경이 가지고 있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두 소경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실 정도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기적적인 역사로 고침 받았습니다. 도대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 본문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 열정적인 믿음

여리고 도성의 두 소경의 믿음에는 열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30절에 보면 “소리질러 가로되” , 31절에는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소리지르다’는 말은 원래 격정적으로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모기 소리와 같지 않았습니다. 격정에 넘쳐 울부짖는 뜨거운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었고,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은 것은 그들 마음 가운데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정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열정을 가지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매달리고, 아우성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는 열정, 신앙의 불, 신앙의 열정, 신앙의 뜨거움을 맛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신앙의 문제점은 신앙은 있으나 열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은 부르짖지 않습니다. 외치지 않습니다. 얌전하고 조용하게 눈만 감고 속으로 오물오물 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주석가인 박윤선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 있는 신앙은 박해 속에서 더욱 운동력을 내는 것이다.” 신앙은 운동력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믿음 속에는 불이 있어서 열정이 움직여야 합니다. 열정이 식은 신앙은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기도도 뜨거워야 합니다. 봉사도 뜨거워야 합니다. 헌신도 뜨거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뜨거운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열정 없는 신자들을 라오디게아 교회를 비유하면서 뜨뜨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차지도 않은 자는 토하여 내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신자를 좋아하십니다. “(왕하19: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축복, 여러분의 앞날의 모든 일을 이루려는 열심을 가지고 지금도 움직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59:17)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라고 했습니다. 열심을 매일 입으시기 바랍니다. 열심을 하나님께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선지자로 선택하셨을까 왜 바울을 사도로 선택하셨을까요 빌립보서 3장 6절이하에서 바울은 과거의 자신을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엘리야는 열왕기상 19장 14절에서 열심히 특심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니까 모두 미적지근한데 사울이라는 청년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를 핍박하는 일에 보통 열심히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니까 ‘저 사람, 바꾸어 놓기만 하면 그 열심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그 열심 가지고 성경 읽는 것과, 그 열심 가지고 구원하고, 그 열심히 대단한 주의 일을 할 것 같다’ 싶으셔서 다메섹 도상에서 뒤집어 놓으시고 소명하신 것입니다.

“(벧전3:13)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열심히 세상을 살라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살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돈 버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열심히 예수 믿으십시오. 열심히 뛰십시오.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아서 움직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시려면 열정적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열정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깁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불입니다. 그래서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하면서 말씀을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불입니다. 불 옆에 가도 뜨겁지 않은 사람은 피부가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같은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전혀 없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불 받으십시오.

2). 참된 영적인 지식

영적인 지식이 믿음 안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두 소경은 주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알았습니다. 또한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씀의 뜻은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기에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를 알고 나를 아는 것,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거룩하신 자 예수님께 성령의 기름을 부음받고 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학교를 못 다닌 할머니들도 예수 믿고 은혜 받고 믿음이 생기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늘나라를 압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성령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생기면 믿음 속에 있는 수직적인 지식, 하나님이 주신 지식, 신령한 지혜를 통하여 알게 됩니다. 예수가 구주이심을 알게 됩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하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천국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 지식이 마음 속에 생기면 그 지식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고, 죄와 불의를 분별하게 되고, 사망과 생명을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세계를 분별하여 하나님 편에만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리고 도성의 두 소경이 예수가 구주이심을 알지 못했다면 그들은 예수를 찾아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3). 분명한 소원

주님은 소경들을 향해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은 보기 원한다는 말이 아니라 눈뜨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아들 낳기를 원합니까 장사가 잘되기를 원합니까 병 고치기를 원합니까 믿음이 생기기를 원합니까 소원이 분명하면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두 소경에게는 눈 뜨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그 소원을 들어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민망히 여기셔서 직접 창조적인 손을 얹어서 그들의 눈으 뜨게 해 주셨습니다. 소원이 있는 곳에는 응답이 있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일 위태로운 신자는 세상 말로 팔자가 편해서 별로 구할 것도 없고, 집에 돈도 적당히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남편도 잘 만나고, 아이들도 쑥쑥 커서 대학도 잘 가고, 유학도 가서 편안하고 한가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환경이 좋아서 원하는 것이 다 있으니까 구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할 것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 저것을 구하다 보면 믿음이 독수리 날개 치는 것처럼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소원을 세상 사람은 외면해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소원이 크고 작은 것은 믿음의 분량입니다. 큰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기도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기도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소원을 예수님 앞에 한 번 펴놓으십시오.

본문 32절을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라고 했습니다. 머물러 서 있다는 말은 강세형입니다. 불쌍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머물러 서서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투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시간에도 머물러 서서라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고야 지나가는 분이십니다. 그냥 모른척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뒤돌아 보시고, 머물러 서서 반드시 해결하시고 지나가십니다. 오늘도 우리 평강교회를 돌아보시고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을 돌아보시며 기억하시고 머무시어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열정을 가지십시오. 영적 지식을 가지십시오. 온전한 믿음으로 응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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