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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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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그 열 가지 계명을 말씀해 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십계명 외에 613가지의 또 다른 계명을 준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613가지의 계명 가운데는 248가지의 적극적인 계명이 있고, 365가지의 소극적인 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랍비들은 613가지의 계명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가 하는 토론을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논란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마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어느 계명이 제일 크냐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이 질문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시는 계명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말씀이 어떠한 말씀인지를 알고 그대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한 나라에 살려면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형별이 따르게 되고 어려움과 환난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면 이 나라를 떠나면 됩니다. 그러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동안에는 이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사는 길이 있다면 하나님의 법을 안 지켜도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다스리심에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릴 때 하나님은 어떠한 나라도 개인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계명을 범하고, 당신의 능력에 도전하는 자를 하나님은 한 번도 용서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첫째 되는 계명이 있습니다. 큰 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크다고 하는 것은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가치있는 계명, 가장 중요한 계명,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정서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으로 섬기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음만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목숨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몸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뜻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부터 나오는 우리의 지성, 우리의 지식, 우리의 지혜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쓰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첫째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방황하는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이 언제나 첫째가 될 때에, 하나님이 가장 중요할 때에 우리는 그 안에서 귀한 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하나님을 제일로 알며 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 때도 하나님이 제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살아가는 아이의 인격은 건강하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청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노인들도 역시 하나님이 제일이어야 합니다.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노인이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면 독수리같이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이렇게 방황하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고민하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우리가 욕심과 불의와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귀중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첫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혼을 할 때도 하나님이 첫째입니다. 이사를 가서도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음식을 가져다 놓고도 첫째가 하나님입니다. 먹는 것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사업을 해도 하나님이 앞서야 합니다.
오늘 왜 사업하는 분들이 흔들립니까 물질을 제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흔들리면 기업이 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이 머리가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고 살아가면 절대로 방황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과 생각이 모두 하나님 앞에 건강하고 힘있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월급을 타도 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 십일조를 먼저 해야지 다 쓰고 난 다음에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하나님 이외에 두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이 강한 자요, 힘있는 자요, 복된 자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사업을 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좋은 집에서 잘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학, 아무리 좋은 직장, 아무리 좋은 집,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로 돌보아주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원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을 비추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 아니하시면 나와 너와의 관계는 건강하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살아갈 때,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살아갈 대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의 삶은 천국의 삶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이후를 보면 요셉은 부모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제일이라는 것을 잘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된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본이 참 중요합니다. 이것만 잘 가르치면 어디에 내놓아도 그 자녀는 염려 없습니다. 그 마음을 채워 보내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 몸을 건강하게 균형을 잡아 보내기 때문에 어디에 가도 복되게 살아갈 것입니다.
요사이 지방 대학으로 내려간 서울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방에서 서울 대학으로 올라온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간 학생들도 얼마나 유혹을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한 3년까지는 겨우 견디는데, 3년 지나면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살아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두려운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내일 오겠다고 하시면 벌써 내 마음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불러다가 화투를 치고, 음식을 해먹고, 일을 저지릅니다. 집에 아버지만 안 계시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분, 내가 무서워하는 분, 내가 경외하는 분이 없을 때에 내 육체와 내 마음과 내 머리는 흔들리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 될 때에 나쁜 생각이 들어올 수 없고,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내 몸을 넘어뜨릴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요셉이 삶에 환난, 시험, 역경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애굽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종노릇합니다. 숱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가 얼마나 유혹합니까 그래서 요셉은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서 감옥에까지 들어가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래도 요셉은 부모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스로 설 수 있는 신앙은 굳건한 신앙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 잘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믿음은 확실한 믿음입니다. 어디에 가도 스스로 믿음을 지킬 줄 알면 그 믿음은 이미 서 있는 믿음입니다. 건강한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요셉은 어려움이 그를 흔들었지만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몸이 흔들리지 않고 머리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승리한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낙심될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첫째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첫째만 잘되어 있으면 으뜸이 됩니다. 귀한 분이 누구인줄 알면 존귀한 자가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넘어지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모든 일에 승리하는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믿으면 거기가 바로 천국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절에 가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면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내 마음이 두 주인을 사랑하는 것이고, 몸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죄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앞서가는 나라도 업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이 세계에서 앞어가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우상숭배를 미신이라고 우습게 여겼는데 40-5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민족문화라도 되는 것처럼 미화시킨 내용이 텔레비전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정신차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상숭배하면 하나님 앞에 심판받습니다. 우상 앞에 두손을 모아서도 안됩니다. 우상 앞에 고개를 숙여서도 안됩니다. 하나님 이와의 것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떠나서 바람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하나님 이외의 것에게 고개를 숙이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36년 동안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곳은 교회입니다. 얼마나 순교자를 냈는지 국립 묘지에 가보십시오. 3,1운동에 참여하신 분들이 거의 교인들입니다.
왜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그렇게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일본 신사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안 그럴지라도 고개만 숙여도 봐준다고 구슬렸지만 끝까지 거부해서 순교를 당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우상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붉은 줄이 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까지 한국 교회를 지켜 왔는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장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잘살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믿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길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첫째입니다.
주일이 어떤 날입니까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정한 순서입니다. 우리는 일월화수목금토라고 해야 합니다.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Sunday가 먼저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되듯이 첫날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한 주간을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형통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토요일이 되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첫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휴일에 놀러갈 생각을 하니 금요일부터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신경질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첫날, 주의 날, 거룩한 날, 복받는 날로 여기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연약한 심령을 굳게 세워 주시고 우둔한 마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주의 뜻 받들어 참되게 살아가며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주 앞에 나올 때 우리맘이 기쁘고 그 말씀 힘 되어 희망 솟아오른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자랑과 기쁨 구원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찬53장)” 할렐루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첫날은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최고의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보좌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첫째로 여길 때 우리도 최고가 되고 첫째가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꼭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립니다. 카터 전대통령은 임기 동안에도 예배 참석만 한 것이 아니라 교회학교 교사활동을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백화점왕 미국의 워너메이커는 대통령이 체신부 장관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교회학교 교사가 주일을 안 지키고 어떻게 장관을 합니까”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교회학교 교사는 내년에도 해도 되고, 또 집사람이 제 대신 해도 됩니다. 안해도 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첫째로 아시기 바랍니다. 워너메이커는 체신부 장관을 하면서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까지 4년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첫째를 귀히 여길 때 우리는 첫째가 될 줄 믿습니다.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웃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웃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합니까 그러나 성경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이웃을 볼 때에 자신을 바라보듯이 보라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내가 아픈 것같이 돌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 사랑은 100점이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므로 너도 사랑을 받고 나도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사랑은 차원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이웃을 즐겁게 하면서, 이웃을 도우면서 얻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왜 이웃을 사랑합니까 성경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 아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이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큰 사랑을 받아 내 적은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순서법칙에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이웃 사랑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웃 사랑에 힘이 있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은 잘 믿는다고 하면서 이웃은 모르고 살아갑니다. “주여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이웃을 외면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없는 인간 관계를 맺습니다. 첫째 없이 둘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 다음에 둘째가 따라와야 합니다. 첫째, 둘째를 다 지킬 때 축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비밀입니다. 사랑 속에 하나님의 보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게 되고,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축복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친구와 함께 히말라야 산을 올라가는데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가슴을 만져 보니 아직 살았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번갈아가며 업고 갑시다.” 그러나 친구는 “이렇게 추운데 그 사람 업고 가다가 죽으려고 그러시오” 하면서 혼자가버립니다.
선다싱은 할 수 없이 혼자서 그 사람을 업고 갔습니다. 그 사람을 업고 가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차갑던 던사싱의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벌벌 떨리던 몸이 열이 나서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등에 업힌 사람도 그 뜨거운 기운에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정상에 올라가니까 어떤 사람이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누구인가 보니 어제 먼저 올라간 자기 친구였습니다.
저는 산기도 가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산에서 기도할 때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 텐트에서 담요만 덮고 자는데 너무나도 추웠습니다. 그때 사는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돌맹이를 불에 구워서 친구와 함께 꼭 끌어안고 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두 사람의 몸에서 열이 납니다. 발 밑에 돌이 따뜻합니다. 혼자 있으면 열이 안 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열이 안 납니다. 둘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딪치면 열이 납니다. 사람이 손을 잡으면 손이 뜨거워지고, 마음을 잡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몸을 안으면 몸에서 열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추위를 모르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여러분의 사랑은 만족한 사랑에 이를 줄 믿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십시오. 친구를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병든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버림받은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할 때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네 자신같이 생각하라 네 자녀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금년에도 교회에 열심히 나오셔서 하나님 앞에 만가지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아서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손을 펴야 할 줄 믿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잘먹고, 좋은 환경을 누리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받은 축복이 많습니다. 이제는 이웃을 향하여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줄 믿습니다.
제일 큰 계명,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귀한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 되는 계명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과 은혜가 주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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