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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적-분노 (마 0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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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보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을 가장 많이 해치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현대인들이 건강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습니다. 사람이 염려와 걱정을 떨쳐버리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면 자연적으로 건강해질 것인데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그 결과 사람이 소심해지고 주저하게 되고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이 지차친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불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많이 먹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식하는 것이 좋다는데 많이 먹어서 문제입니다. 사람이 많이 먹으면 온갖 병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이 먹어서 얻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못 먹어서 발생한 질병은 먹으면 낫습니다. 탈불자들을 보면 모두 굶어서 병든 사람들처럼 해서 옵니다. 보면 몹시 마르고 허기져서 마치 병자들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기자회견할 때 보면 딴 사람처럼 살이 쪄서 나옵니다. 그 동안 잘 먹어서 그렇습니다. 굶어서 병난 사람은 잘 먹으면 낫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많이 먹어서 발생한 병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성인병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많이 먹어서 생긴 병들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이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또 세 번째는 과로라고 합니다. 오늘은 중년들이 수난을 많이 당하는 시대입니다. 중년의 사람들이 어느 날 가바기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면 대부분은 과로사입니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참 무서운 질병입니다.
여러분, 명퇴라는 것 아십니까 명예퇴직을 명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이 명퇴라는 것이 중년의 남자들을 사정없이 망가트려 놓습니다. 직장에서 명퇴당하지 않으려고 밤낮 없이 뛰다가 병을 얻는 사람들이 많고 명퇴당하고 나서 충격으로 병을 얻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과로가 사람들을 병들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 현대인들을 해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분노하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감정의 자기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속에서 분노가 한번 일어나면 말릴 길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감당을 못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한번 폭발하면 무서운 결과를 남깁니다. 특히 오늘 젊은이들의 분노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분노가 무섭습니다.
한때 두 얼굴의 사나이라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좀 만화 같기는 했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마음이 착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위험에 직면하게 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혈압이 높아지면서 온 몸이 분노로 가득 차 오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딴 사람으로 변합니다. 몸도 커지고 통제할 수 없는 인간으로 변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집어 던지고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악당들을 한손에 해치웁니다. 보면 참 통쾌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조그만 말 한마디에 분노합니다. 감정만 조금 상해도 참지를 못합니다. 조금 손해만 보아도 참지를 못하고 싸우고 파괴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을 다치게도 하고 마침내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모두 분을 참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 분노, 화, 혈기 등이 가장 통제하기 힘든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분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상대방을 노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을 보면 말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말 한마디에 분노하고 말 한마디에 흥분을 합니다. 그래서 말은 한다고 다 말이 아닙니다. 말을 할 때는 한번 더 생각하고 뱉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내 기분에 따라서 하지 말고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의 기붕이 어떨까를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언어 순화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도 나쁘지만 죄를 짓게 환경을 만드는 사람도 나쁜 사람입니다. 화를 낸 사람도 나쁘지만 화를 내게 만든 사람도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분들을 보면 생각없이 말을 내뱉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상하게 만들고 기분을 언잖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깨고 공동체를 깨고 불화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사람이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좋은 관계를 깨버리기는 쉽습니다. 관계를 깨는 것은 순식간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깨진 부분을 복원시키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세월이 가도 한 번 깨진 관계는 처음처럼 복원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릇을 한번 깨 보십시오. 깨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깨진 부분을 복원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또 복원시켜도 흔적은 남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금을 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친구나 부부 사이나 교우간이나 부모 자식 사이나 할 수 있으면 금갈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가능하면 분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책입니다. 사람이 분을 내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말이 거칠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분을 참는 것이 좋습니다. 분을 참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그 순간 1,2분만 기다려 보는 방법입니다. 그 순간만 참고 넘기면 참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을 참고 인내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이렇게 참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생활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집 구조가 부엌이 있고 문지방이 있고 안방과 윗방 사이에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흥분했다가도 문지방을 건너는 동안 삭였습니다. 윗방으로 건너간즌 동안 삭였습니다. 그리고 방에서 부엌으로 가는 동안 삭였습니다. 이것이 옛날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것들이 없습니다. 여과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갈곳이 없습니다. 넘어갈 곳이 없습니다. 오늘 아파트 생활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 번 분이 나면 참지를 못하고 한 번 발작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그냥 던져 버립니다. 그래서 부부가 쉽게 갈라서고 오랜 친구가 순간 적이 되고 오래 믿었던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분이 나거든 1,2분만 참아 보세요. 그러면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이 다 풀린 다음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흥분한 것입니다.

3. 혹 분을 냈어도 해가 지기 전에 풀라고 했습니다. (엡 4:25)

이 말은 그 분을 가지고 밤을 새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좋지 않은 결과들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닭이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병아리를 까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음란한 생각을 오래 품고 있으면 그 음란이 어느 날 현실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분노를 오래 품고 살면 그것이 마침내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을 보면 모두 그런 마음을 오래 품고 있어서 발생한 사건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을 낼 수는 있으나 해를 넘기지 말고 풀라고 했습니다.

4. 네 번째는 마음에 노를 품고 하나님 앞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려거든 먼저 화해를 하고 노를 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막히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막힌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악화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오려거든 먼저 가서 맺힌 것을 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화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말씀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노를 품고 살면 몇 가지 나타나는 불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노를 품게 되면 심적으로 냉각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노를 품으면 먼저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온기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원한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냉정합니다. 그 마음에 온기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한이 많은 사람, 불만이 많은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보면 모두 마음이 차갑습니다. 눈빛이 차갑고 생각이 차갑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누구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화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렇게 되면 그 마음에서 기쁨이 상실됩니다. 그런 마음에느 기쁨이나 감사나 감격 같은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온전하고 평온해야 그 마음에 기쁨이 자리잡고 감사가 자리잡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분을 품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분을 풀어야 비로소 그 마음에 웃음이 돌아오고 평안이 돌아오고 화목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냈어도 해가 지기전에 풀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그런 중요한 뜻이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무서운 죄를 범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분을 품으면 살인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살인 사건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원인이 대부분 마음에 이 분을 품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분을 내는 일이 비교적 적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실수하는 일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하는 오늘 현대인들은 분낼 일이 많고 한 번 분을 내면 참지를 못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는 살인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겠습니까만 사람을 반드시 죽어야만 살인입니까 살인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간접 살인이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사람으로 하여금 화나게 해서 죽게 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행하는 투서나 이간 그리고 사람을 매장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남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일들도 모두 알고 보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들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화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살인입니다.
또 갈등도 무서운 살인입니다. 오늘은 고부간의 갈등이 많은 시대입니다. 이 갈등이 심하면 서로 살인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증오합니다. 싫어하는 마음속에 그냥 싫은 마음만 있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는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도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살인이지 무엇입니까 또 시어머니들은 보기 싫은 며느리를 얼마나 속마음으로 미워하겠습니까 얼마나 싫으면 며느리들이 “시”자 들어간 시금치를 먹지 않고 시어머니들은 “며”자 들어간 며르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살인입니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인 살인”도 있습니다.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게 되면 그 미운 마음이 눈으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심전심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독한 마음을 보내게 되면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차가운 눈빛을 가지고 있고 차갑고 독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모르겠습니까
어머니가 독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그 독이 모유 속에 흘러 들어가서 아이가 설사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분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신장이 나쁜 분들은 인공신장을 달고 다니는데 그 속에는 배터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 배터리는 5년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라이 이렇게 분을 내고 마음에 증오를 품고 있으면 이 배터리를 2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께서 노를 품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마음의 살인은 숨겨진 살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살인은 나타난 살인입니다. 둘 다 살인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살인입니다. 마음에 이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시기를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언어적 살인”도 있습니다. 요즘 언어 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폭력은 반드시 주먹을 써야만 폭력이 아닙니다. 말로써도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가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한 아이에게 창피를 주면 그것이 언어 폭력입니다. 그 말 한마디로 그 아이가 모욕을 당해 자살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아이들이 사고를 칠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하는 설교 한마디가 성도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가 상철르 입고 신앙의 길에서 떠나 세상으로 돌아갔다면 그것도 강단 폭력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라가(laka)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무가치한 놈”이라는 뜻입니다. 형제에게 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언어 폭력입니다. 영어로 “gat dam"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망할 놈“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하늘로부터 천벌을 받을 놈“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증오의 극치입니다. 이런 말은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상처를 주고 그래서 홧김에 죄를 짓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끔 보면 무지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지하게 욕을 퍼붓는 것을 볼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언어적 폭력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90%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다 한다”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일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간다 간다”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떠납니다. 또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안 된다 안 된다”하는 사람은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가장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게로 오려거든 먼저 그 맺힌 것을 풀고 오라.” 오늘 현대인드은 맺히는 일이 많습니다. 형제간에도 서로 마음이 막히고 맺히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담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웃간에 친구간에도 이 맺히는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장벽이 생기고 대화가 단절되고 마음이 원망과 갈등으로 맺히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 맺힘은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나와의 맺힘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막히고 불화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고 나서 기쁨을 상실하고 마음이 불화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관계가 막히고 마음이 맺히면 우선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남의 문제 이전에 내가 먼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풀려야만 기쁨이나 감사나 행복이나 감격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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