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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능자의 손 (창 4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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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은 축복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모아 놓고 장자인 르우벤으로 시작하여 막내아들 베냐민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사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축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위를 따라 축복했다는 것입 니다. 그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느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복을 빌거나 저주를 내렸습니다. 셋째는 아버지의 축복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요셉에게 준 축복의 내용입니다. 요셉 역시 행위에 따라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형들의 질투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자기관리로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가족 70여명을 애굽으로 초청해 잘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셉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나의 많은 아버지가 요셉에게 축복해 준 내용이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했습니다.
22절을 보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는 비가 적고 물이 적습니다. 그래서 물을 찾으려면 호숫가나 오아시스를 찾아가야 합니다. 애굽 역시 비가 내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나일강을 낀 주변 5%는 옥토여서 농사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95%는 사막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애굽도 물이 귀합니다. 그러한 척박한 땅에서 풀이나 과일이 자라려면 샘곁에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샘곁에 있기 때문에 그 가지가 무성하고 담을 넘어 뻗어 나가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샘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그 영혼이 말라 죽지 않고 가지가 무성하고 담 너머로 뻗어나게 됩니다.
저는 과일을 좋아합니다. 사과, 배, 딸기, 포도, 바나나 오렌지등... 맛있는 과일이 되는데는 몇가지 조건이 따라 줘야합니다.
첫째는 종자입니다. 같은 사과나 포도라도 그 종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시기도하고 달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계속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해야 합니다.
둘째는 토질입니다. 같은 품종의 사과라도 그리고 같은 밭에 심은 사과라도 그 땅의 토질을 따라 맛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땅이 산성화돼 버리면 과일도 맛이 없고 수확도 작아집니다.
사람의 경우도 유사합니다. 같은 예수를 믿고 한 성경을 읽고 같은 교회를 다니는데 어떤 사람은 신앙이 자라고 어떤 사람은 못 자랍니다. 종자와 토질을 따라 과일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신앙도 그 사람의 바탕과 인격을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닐수록, 직분을 맡을수록 그 질이 산성화되어 열매도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과 인격의 산성화를 막아야 합니다. 호세아서의 말씀대로 묶은 땅을 갈아엎어 알칼리성 토질로 바꿔야 합니다. 비닐 하우스에서 전기나 가스로 온도를 맞춰주고 수돗물을 뿌려서 키운 과일은 맛이 없습니다. 비바람 맞고 태양광선 쪼이며 키운 과일이 비타민도 많고 맛도 좋습니다. 누가 맛있는 인생입니까 누가 멋있는 인생입니까 눈비바람 환란의 풍파를 견디고 역경을 이겨낸 신앙이 맛있는 과일처럼 싱그럽고 의미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넷째는 제 맛이 나야 합니다.
딸기가 바나나 맛을 낸다든지 포도가 사과맛을 내면 그것은 돌연변이입니다. 사람도 자기 일이 있고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할 일은 안하고 남의 일이나 간섭한다든지 남의 말이나 곱씹고 있으면 그것은 제 맛 잃은 과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섯째는 모든 과일은 신선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달고 맛이 있어도 썩은과일은 가치도 없고 값도 쌉니다. 과일은 싱싱해야 합니다. 사람도 제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얼굴이 잘나고 돈이 많아도 그 정신과 삶이 썩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싱싱한 과일처럼 건전하고 정당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대구에 가면 「우방건설」이라는 큰 회사가 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주인이 누군지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전혀 아는바 없습니다. 대구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경상도지방에서는 가장 큰 회사였고 좋은 일을 많이 했고 아파트 한 채를 꾸려도 든든하게 내실있게 쓸모있게 꾸려서 입주자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회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IMF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다음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대구에 있는 언론, 시민단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우방을 살립시다"라는 플래카드를 도처에 내걸로 서명운동을 벌리는가 하면 요로에 진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몸이 허약해지고 하던 일에서 손을 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라도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별히 교회 내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총회법상 70이면 정년이 됩니다. 정년이 되어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라도 후배나 교인들로부터 "아깝다, 아쉽다, 더 있어야 될 사람인데"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됐다 시원하다, 이제야 숨통이 터진다"는 혹평을 받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지는 샘곁에 있었기에 무성했고 담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무성한 가지의 반대는 마른 가지, 시든 가지입니다. 메마르고 시든 가지는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산소도 제공하지 못합니다. 시편1:3을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울가에 있어야 무성하고 시냇가에 있어야 형통합니다. 여기서 우물가나 시냇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뿌리도 마르고 가지도 말라 버립니다. 생명시냇가에 뿌리를 내립시다. 은혜의 우물가에 뿌리를 내립시다.

2.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다고 했습니다.
23-24절보면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나"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 그를 팔이 넘기고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힘입었기에 그가 오히려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그가 네게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성공이나 그가 받은 축복은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눈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며 복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복의 원천도,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난 1월 10일에 국민일보 실린 기사가 있었습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에 구계교회가 있는데 교인은 30여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가 있는데 교인은 30여명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21년전에 세운 교회지만 자립도 어렵고 예산부족으로 교회건물이 낡고 헐어도 수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교회 김상태 안수집사(44세)는 고기를 잡는 어부입니다.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목사님 이번에 고기가 많이 잡혀야 성전 수리라도 할 수 있을텐데 기도해 주십시요"라고 말하자 목사님은 "집사님 믿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김상태 집사의 어장 양 옆에는 다른 사람들이 쳐 놓은 대형 정치망이 둘러쳐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24일 어장에 나간 김집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양쪽에 쳐 있는 다른 사람네 정치망은 텅 비어 있는데 김집사 정치망엔 방어떼가 몰려 있었습니다. 그는 24일 하룻 동안 2,300여 마리를 건져냈습니다. 폭풍주의보 때문에 나머지 3,000여 마리는 그 다음에 건져냈습니다. 겨울은 방어철이어서 한 마리당 16만 9천원을 받고 수산협동조합에 팔았습니다. 마리당 16만 9천원에 팔았으니까 5천마리면 8억 4천 500만원입니다. 그 동네 생긴 이후 한사람 그물에 이토록 엄청난 방어떼가 걸린 것도 처음있는 일이고 양쪽 그물은 텅 비어있고 가운데 있는 그물에만 5천여 마리가 걸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고기가 안 잡히면 동네 사람들은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냈지만 김상태 집사는 고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문은 이 사건을 한국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기적이라고 머릿기사를 적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복 받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함께 하셔야 복을 받는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잘먹고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은 내 노력이고 운수고 재수고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25절을 보면 "위로 하늘의 보고가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복은 아무나 조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나를 도와 줄 수는 없습니다.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사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함께 복의 근원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람을 항상 찬송합니다.
주의 귀한 은혜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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