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열까지 세고 삭이는 분통

첨부 1


미국의 심리학자 윌라드 게일린은 그의 저서 ‘내면의 분노’에서 “죽고 살 일이 아니면 열까지 세고 분통을 삭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게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좋다는 것이다. ‘오늘의 대도시 생활양식이 바로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게 게일린의 분석인데 다시 말하면 도시의 도처에서 분통을 터트릴만한 존재는 얼마든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풀이는 사생결단의 마당에서나 필요한 것이며 사소한 일에 사용할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게일린은 분노를 맹장 같은 존재라고 본다. 지금은 퇴화되어 골칫거리 밖에 안 되는 생물학적 흔적과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분노의 의미는 지대하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미흡했던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프로이드’조차 이에 대해 언급한 게 없다 60년대 ‘콘트라  로렌츠’의 “지역적 지상명령”은 음산한 결정론을 보였다. 그들은 인간을 진화에 의해 본능적 공격충동을 갖게 된 동물로 규정했다. 70년대에는 분노를 “분출구가 막힌 에너지”로 보고, 화가 나면 이를 툭 터놓고 완전히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었다. ‘디어도 루빈’, ‘아더 재노브’가 그 주도자였다. 그러나 80년대의 심리학자들은 극기적이고 예의심이 깊다. 선정 속처럼 화를 죽인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카타르시스의 작용을 하지만 그건 다음 단계의 분노 폭발을 예비하는 연습일 뿐이다. 화풀이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걸 자제하지 못하고 키우기만 하면 이 사회는 결국 고함으로 가득 찬 추악한 공동체가 되고 만다. “추악한 사회를 피하려면 개인의 권리 주장 대신 사회의 권리와 예절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게일린’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