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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다림 (눅 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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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 무서운 일이 임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살다보면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고 가족을 잃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특별히 나빠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인가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그들 자신 속에 원인이 있다고 말해버린다. 그러한 저주를 당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유대 총독이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 하나님께 제사하러 와서 무슨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횡액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은 더럽힘을 본다. 사람들은 이 일을 주께 물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그들이 무슨 악한 일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일까요 아니면 무슨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습니까"
주는 다른 경우 즉 우연히 망대가 무너져 지나던 사람 열 여덟 사람이 치어 죽은 사건을 비유하면서 대답하셨다. "이렇게 당한 사람들이 아직 안 당한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고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줄 아느냐"이렇게 물은 이유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곤란한 일을 당한 이들은 그 당한 일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무서운 일에 무방비의 상태이다. 그것은 그들이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이러한 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아무런 원망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파리처럼 죽고 망해가는 것이 인간이다.이러한 저주는 언제든지 임할 수 있다.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결국은 조만간에 그 일이 일어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직 안 당한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상태인가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동안 인내하신다. 악한 죄인들이 당장이라도 멸망을 당하고 더 무서운 일들을 당하도록 버려두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도록 계속 참고 계신다. 참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이 아주 적게 일어나도록 붙들고 계신다.그래서 이 세상이 아비규한이 되지 않도록 막고 계신다.
얼마간의 아픈 일들은 허용하셔서 사람들이 돌아오독 경성시키신다. 참으로 고통은 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각성제가 된다. 고통을 안 당한 사람은 내가 언제든지 당할 고통을 다른 사람이 당한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고통이 이렇게 무서우면 장차 당할 영원한 저주는 얼마나 큰 것일까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두려워하며 옷깃을 여민다.그리고 나를 참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기에 모든 다 빨리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하여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들은 우리를 교육시키는 도구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형벌들을 그림자고 삼아서 영원한 고통의 심도를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이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있게 만드는 감사한 요인이 된다. 그런 일들이 전혀 경함되지도 보이지도 않으면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이러한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는가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하지만 종종 신자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아픔을 당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경건한 신자도 이런 일을 보고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하기 때문에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보호아래 있기에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비유로 이것을 설명하신다. 포도원의 주인이 무화과 나무를 심었다. 물론 열매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해 동안 아무 것도 없었다.주인은 이 나무들을 찍어 불에 던지려고 하였다. 그때 과수원지기가 나서서 간청을 한다. "제가 한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거름을 주고 잘 돌보겠습니다. 그때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 그래서 무화과는 겨우 풀려났다.
이 무화과 열매 없는 신자들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기의 포도원에 우리를 심어주셨다. 그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서다. 그러나 신자가 된지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 마음이 없다. 하나님은 이런 경우 신자로 치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더 이상 교회에 있게 하지 않으신다. 그런 이는 결국 믿음을 떠난다.

우리는 이제 종말적인 시간에 살고 있다.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맺는 힘은 거름을 주고 힘을 공급하는 그리스도에서 온다. 그와 함께 세상에서 움직인다. 그러면서 예수의 영이 내 삶을 주관하도록 한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그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이다. 하나님은 당장 무가치한 무화과를 찍지 않으셨다. 삼년 이상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가님의 사람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시간이 지나면 찍어 버릴 것이다.
우리도 이 사랑을 이해했다면 다른 삶을 향해서 인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나와 친구가 되도록 기다린다. 다른 사람이 교회 일이나 대인 관계에 대단히 서툴고 약점이 많아도 기다릴 수 있다. 특별히 신앙이나 인격에 많은 발전을 본 사람들은 더욱 어리고 약한 믿음의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하나님처럼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향해서는 오래 기다리지 않으신다. 안식일의 율례가 깨어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즉각적인 응답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 일을 하실 것이다. 십팔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면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여자를 주께서는 고치셨다.그렇게 오랜 동안 죄에 빠졌으니 상당 기간 동안 참회하라 하지 않으셨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시며 동시에 급히 도움을 주시는 감사하신 신이시다.안식일이 지난 뒤에 보자거나 내일까지 기다리라 하지 않으신다. 요구하는 즉시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주신다. 우리를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심에 즉각적인 움직임이 보이신다. 이 분이 우리 아버지시다. 이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감사하고 찬양하라.그리고 그 은혜를 명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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