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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바브로디도처럼 (빌 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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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이 땅에서 예수님 외에 가장 존경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디모데는 목사로써 가추어야할 자격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지만 디모데처 럼 목사가 아닌 평신도 중에서 바울이 대단한 존경심으로 바라 보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오늘 헌신을 하는 남전도회 회원 모두가 이 사람처럼 하나님에게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도 존경과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

 1,좋은 이름들을 가진 사람 25절에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하면서 시작을 한다.

 바로 이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 이 이름의 뜻이 너무도 아름답다.

[사랑스러운] 또는 [매력 있는] 의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들이 다 같은 사실이다.

이름의 예들

채필근 목사님의 일화 한 번은 세례 문답을 하는데 처녀의 이름이 흉육(흉육)이었다.

하도 이름이 흉칙해서 그 처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인데 사연이 많았다.

 그녀의 부모들이 첫 자식을 낳았는데 그게 딸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지일 즉 딸을 하나로 족하니 그만 낳겠다는 뜻이엇다.

그런데 둘째도 딸이었다.

그 이름을 정이 라고 했다.

또 세번째 딸을 낳았다.

그 이름을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부끄러울 수( )에 삼이라 했다.

또 .... 이는 괴상한 일이라 하여 괴사라 했다.

또 .... 이는 어이가 없는 일이라 하여 오 소( )라고 했다.

그랬는데 여섯번째도 이는 흉칙한 일이라하여 흉육이라 했단다.

 그러나 이름 값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세상에는 부지기 수다.

 바울이 그렇게 종경했던 사람 에바브로디도는 그의 이름의 뜻도 좋왔지만 그의 평판은 이름보다 몃갑절이나 더 좋왔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다음과 같이 불렀다.

 첫째 = 나의 형제요(25)-여기에 형제라는 말은 일반적인 그런 형제가 아니라 한 태줄에서 난 형 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그마만큼 서로가 격의가 없이 지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또 서로가 자기처럼 상대를 알고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남 전도회원 여러분 ! 여러분들은 한 기관의 회원으로 서로 서로 어떤 관계에 있다고 생각 하시는가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런 형제같은 느김을 가지는가

둘째 = 함께 수고한 자 (25)

사도 바울은 형제라는 말과 동시에 "함께 수고한 자"라고 에바브로디도 를 호칭했다.

 우리는 에바브로디도는 어던 사람인지를 잘 모르나 사도 바울에 대하여는 많이 아는 편이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함께 수고한 자라고 했다.

빌립보 교회 담임목사였던 바울의 목회에 숨은 봉사자가 누구였으며 또 얼마나 많은 배경이 되어 주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울이 그토록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에 바브로디도의 협력하는 수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셋째 = 함께 군사된 자 (25)

군사라면 당시에 세계를 주름잡던 로마의 군사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로마의 군사 !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한 군사인가

로마가 세계를 제패했던 것과 같이 복음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의욕으로 넘쳐 있었던 바울은 자신의 일을 가끔 군사에 비교를 했었다.

 여기에 에바브로디도가 함께 편대를 이루어 영적인 투쟁을 했던 것이다.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 여러분들은 정말 복음의 군사라 스스로 장담할 수 있는가

네째 = 너희 사자로 (25)

여기의 사자라는 말은 "대사" (Messenger or ambassador)는 말이다.

 이는 빌립보 교회가 교회의 모든 일을 전권해서 바울에게 사람을 보낼 때 바로 이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했던 것을 말함이다.

 다시 말해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 전체의 신임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었다.

 어떤 한 기관에서가 아니라 전 교회안에서 신임을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어디서 얼마나 신임을 받고 있는지 정말 나는 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처럼 신임의 대상인지

2,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바울 생전에 한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칭찬한 사람은 없었다.

 에바브로디도가 이렇게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것은 평소 그만한 삶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겻기 때문이다.

 26-27절에 (다 같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 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 게 하셨느니라"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 + ,  earnestly + strive , desire = 진정으로 + 그리워하다)

이는 연인들까리의 용어이다.

이 말 속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왜 에바브로디도를 그렇게 신임을 했겠나를 알게해 주는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을 본다.

 또 우리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빌립보 교회가 병든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거이다.

 그러면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일한 것들로 인 하여 생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로마의 감옥에 같여 있는 바울을 수발하다가 얻은 병일 수도 있다.

어쩜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사는 사모의 정이 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병에 걸려 있었고 이 병든 사실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알게 되었다.

 26절에 보니 에바브로디도는 자기의 병든 사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알려진 사실에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왜냐하면 에바브로디도의 삶은 남의 도움이 되는게 소원이었지 남의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그의 생활 신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의 신앙 신조는 어떤 것들인가 이해도 한달이면 다 가고마는데 내년을 위해서라도 나의 분명한 신앙의 신조는 지금 정해져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사 죽게되었던 지경에서 고쳐 주 셨다.

 결코 무심한 하나님이 아니심을 보여 주신다.

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돕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아멘 !

3,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는 사람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저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했다는 이야기!

이 구절을 언제 한 번 들어본것 같지 않은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20절에서 했던 말이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라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라고 했었다.

 허지만 세상에 자기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세상에서 무었을 주고 목숨을 사겠는가

사도 바울이나 에바브로디도의 목숨도 다 우리들과 같이 소중하기는 매 일반이다.

 그러나 그가 그 귀중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것은 자기를 위한 것 때문 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 때문이었다.

 <<< 그리스도의 일 >>> ''''''''''''''''''''' 주께서 마끼신 일 때문이었다.

 남전도회 여러분들이여

주님의 일에 핑계되지 말자 ! 주어진 일에 앞장서 헌신하자 !

형제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되고 또 온 교회 성도가 존경하는 즉 그리스도의 일 때문에 목숨을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 다 되시길 진심으로 축워한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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