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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는 날과 웃는 날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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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편 126편의 말씀은, 속박과 고난으로부터,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기쁨과 감격을 노래한, 기쁨의 노래입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암담한 포로생활을 겪었고, 가슴벅착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슬픔을 겪기도 했고,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우리가 우리의 사는 날을 생각하여 볼 때에 우리 인생에도 우 는 날과 웃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날들이 있었으면, 또한 기쁨과 환희의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만 있으면 우는 날보다 웃 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90편에서 시인은 말하기를 '우리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모든 날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 니다. 그리고 이 시인은 '주께서 우리에게, [고난 당하게 하실 날 수만 큼] 또, [우리가 슬픔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시요.'(시 90:15)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날동안 우는 날이 많으냐 웃는 날이 많으냐'라고 묻 는다면, 그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자기가 고난을 당한 날수만큼, 또 자기가 슬픔을 당한 햇수만큼 기쁨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 사람에게는 기쁨보다 고난과 슬픔의 날 이 더 많았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어구사전에도 보니까 울었다는 말이 35번이나 나오는데 비하여, 웃었다는 것은 겨우 6번뿐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성경도, 우리의 우는 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같습니 다. 물론 우리의 신앙이 지향하는 길은, 슬픔보다는 기쁨과 희락의 길 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많은 눈물과, 슬픔의 기나 긴 과정을 통해서 얻게되는 길인 것입니다. 그냥 얻게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울면서 씨를 가지고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기쁨으로 거두워들이는 추수 의 곡식단은, 울면서 씨를 뿌린 고생의 과정들이 있어서 얻어집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그가 참으로 웃기위하여, 우는 날이 있었어야 하며, 그러한 고생과 슬픔과 시련의 날들은, 나중에 기쁨과 환희의 날을 위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 하는 것은, 환난은 인냐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 문이다.'(롬 5:3)고 하였고,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요,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을 바라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인내로서 기다린다.'(롬 8:2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는 날이 있으면 반드시 웃을 날이 오는 것이며, 마 침내 구원과 승리와, '영싱'의 날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결말은 '욥의 결말'과 같이 될 것입니 다. 의는 최후의 승리를 거두며, 하나님의 모든 일은 다 선하신 그 뜻 대로 되고야 맙니다. 그것은...

첫째로, '그 고난'이 의로왔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 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희것이라.'고 하셨습니 다. 또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 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 5:11)고 하였 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 땅위에서 바르게 사록, 정직하게 살며, 또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뜻을 리루려고 애쓸 때에 여러가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의로운 고난임으로 반드시 나중에는 좋은 결말을 이루게 됩니다. 반드시 빛을 보고 그가 환희 웃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욥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그는 한탄하고 좌절하며 혹은 분노와 원망을 마음에 품으면서 지내 다가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호ㅜ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난은, '유익한' 고난이였 으먀. 그가 많은 날을, 슬픔과 눈물로 지새웠지만, '하나님이 욥의 모년 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욥 42:12)라고 하였는데, 그 는 나중에. '크게 웃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 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지 않느냐. 그러므 로,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분이시리라.'(약 5:11)고 하였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슬픈 날들과 눈물흘리는 날들이 있어도, 하나님 을 생각함으로, 그 슬픔을 참으면 그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것입니다.(벧 전 2:19) 그리고 그 받는 고난이, 의로운 것이였다면, 그것은 오히려 나중에 큰 상을 받을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점점 악이 득세하는 것같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 고 권력과 금력과 간교한 술수를 쓰는 자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 것은 결국은 멸망의 길이요, '기필코 의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 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계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되여지는 일들을 볼 때에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평 범한 서민대중들은, 슬프고, 괴롭고, 곤혼스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 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이래저래 손해를 보고, 피해를 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무 말을 아니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여러분이 당하시는 고난과 억울함이 의로운 것이였다면, 그 보상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우는 날이 많았던 것만 큼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의로운 고난에는 반드시 그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괴롭고 외로와도 그 길이 의의 길이면 여러분은 중 지하지 마시고, 계속 그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길을 인정하십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입니다.'(시 1:6) 여러분이 항상 가시는 그 모든 길이 여 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운 길이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모든 일에 반드시 승리를 거두게 되십니다.

둘째로, 그 고난에는 소망이 약속되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본 문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돕고 계십니다. 하나 님은 왜 이스라엘을 도와 주십니까 그것은 그분의 하신 약속 때문입니 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들의 생명과 자유와 승리를 보장합니다. 그러 니까 하나님이 돕고 책임을 지십니다.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사 41:8)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 속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하나니미 나를 굳세게 하여 주시고, 참으로 나를 도 와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의로우신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 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놀랄 것이 없으며, 무슨 일이 생겨 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아무 것 도 두려울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 다. 이 약속을 확실히 믿고, 또 그 약속을 진실히 따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는 힘이요, 소망입니다. 이 약속 을 굳게 붙잡은 사람은,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다 참고 이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장장 70년이나 억류되여 있을 때 그들은 그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다 잊어 버리고, 또 약속의 땅에 돌아 갈 소망도 거의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셨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시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들 을 돌리실 때에, 그들은 [꿈을 꾸는 것]같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꿈같은 일들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 웃음이 가득하게 하시 며,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넘치게 하십니다. 또 열방들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고 놀라고 감탄하였습니 다. 우리가 약속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인간이 그 고난과 시련중에 찌 들릴 때로 찌들려 망각속에 살고 있을 때...하나님은, 당신이 예정하신 '그 때'에,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십니다. 그것은 기적과 같고, 꿈만 같은 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랫동안 믿고 기다린 우리의 소망입 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꿈같은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임으로 사람들 은 믿지 않는 것이요, 꿈같은 일임으로 비웃을찌 모릅니다. 그러나 우 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는 다는 것,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 의가 승리를 거둔다는 것,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영생과, 천국이 있다는 것, 우리는 이걸 믿습니다. 불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겠 습니까 그런데 그 꿈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다 했고, 그 때에 오래 울어, 눈이 퉁퉁부릇튼 사람드리, 그 입에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넘치게 되였습니다. 아마, 그들이 바 벨론에서 해방되여,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의 하나님이 이 일을 그의 약속대로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에 의심이나 회의를 갖지 마십시요. 여러분이 믿는 것은 그 믿는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는 자들이 되 야하고, 하나님안에서 소망을 가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굳게 지닌 사람은, 지 금은 눈물을 흘려도, 반드시 나중에 기쁨으로 거둬들일 때가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믿기 때문입니 다. 좋으신 하나님은, '이제 우는 자를, 나중에 웃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우는 이가 있습니까 그는 나중에 웃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안위의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이다.'(눅 6:2)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이제' 혹은 '지금'이라 는 시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 비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는 자들, 지금 주린 자들, 지금 고난중에 있는 이들, 지금 매 우 억울한 이들, 지금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하는 사람들...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나는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이 나중에 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목적을 당 설하지 못하면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실패자'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웃을 것입니다. 나중이 있고 다음이 있고, 또 다른 기회와 시간이 있습 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자기의 긴 삶의 시간을, '지금만 가지고' 평가할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웃는 자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도 웃는 자가 되야하고, 지금 운다고 낙심할 것도 아닙니다. 그는 나중에 웃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다시금 알고 깨닫게 됩니다.

선하신 우리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울게만' 하시지 않으 십니다. 우리는 계속 울고만 있을 사람은 아닙니다. 반드시 활짝 웃 고, 크게 웃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는 자들 은, 긍휼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환히 웃을 수 있게 하시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바라며 감사하십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정말 웃는 날'은 언제이겠습니까 사말은 사는 동안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나 '웃는 사람은'하나도 없고, 또 언제나 '우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나 울 때와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참으로 웃는 사람이지는, 그 사람의 관뚜껑을 덮을 때까지는 모른다는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 여 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영원히' 웃기만 하고 절대로 울 일이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은 구원의 날이요, 그날은 영생의 날 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보장받은, '성도들이야' 참으로 웃는 자들입 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여기서 울지만, 나중에 참으로 웃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웃고, 다시는 울지 아니할 날은, '구원의 날'입니다. 이 구원을 알게 된 사도바울은, 그가 감옥에 있으면서도 '주안에서 항상 기 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과 영생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이 소망과 이 큰 약속때 문에, 고난중에도 기뻐하며, 아픈 때도 기뻐하며, 감옥에 갇혔어도 기뻐 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해도 기뻐합니다. 또 죽어도 영광이 되노라고 말합니다. 이 큰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영원한 기쁨입 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샹에 사는 동안에는 구원받은 성도 라고, 우는 날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난과 슬픔과 좌절감은, '구원의 그 큰 기쁨'에 비하면, 일시적인 것이요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로 서,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로다!'(빌 1:18)라고 외쳤습니다. 하 나님이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가지고 계신 좋은 계획들, 그 귀중하신 일들과 목적들을 생각하면 우리 는 기쁠뿐입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기뻐서' 웃고 즐거운 노래를 불렀 으며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저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구나!' 그 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계획을 굳 게 믿고 감사하시며, 항상 웃을 수 있고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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