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소로 행진하시는 하나님2 (시 68:7-10)

첨부 1


7-10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앞서 광야를 행진하실 때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특별히 7-8절은 삿5:4-5과 매우 흡사하다.

< 7절 >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 개역성경의 `앞에서 앞서 나가사'는 분명 [리프네]의 이중번역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행진하는 모습은 거룩한 전쟁 the divine war 에서 신적 전사 the divine warrior 가 그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는 모습이다 (삿4:14 ; 삼하5:24 ; 대상14:5 ; 슥14:3 ; 시44:10 ; 60:12).

셀라의 위치는 특별하다. 5절에 이미 [사랄](`높이다,' `예비하다')이라는 같은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낭송하다'의 의미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바로 여기서 저자는 출애굽, 홍해를 건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광야를 지나 시내산으로 인도하심 등의 사건을 회상하고 그것을 이 시를 듣고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야기하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Tate, 177).

< 8절 >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개역성경의 이 번역은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진다는 말이나 '진동하다'는 말도 중복 번역되어 있다. 표준새번역도 '하늘이 무너져내렸습니다'라는 불필요한 구절을 첨가하였다.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비를) 퍼부었다.
하나님, 곧 시내산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라고 번역함이 옳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노트푸]는 `내리다, 뿌리다'는 뜻이나, 하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은 비는 정녕 이보다 더 세차게 퍼붓는 폭우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역에서 `저'라고 번역하고 있는 지시대명사 [제]는 아랍어 대명사 du 나 우가릿 불변사 d 와 같아서 영어의 `of'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엘로힘 제 시나이]는 `시내산의 하나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Pope, 139, Tate, 163).

< 9절 >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주의 산업'의 문자적인 번역은 `당신의 유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아들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산으로 주셨다. 그래서 가나안을 기업의 땅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을 주의 기업의 백성[암 나할라]이라고 칭한다 (신9:29 ; 렘3:19, Seock-Tae Sohn, The Divine Election of Israel, pp. 67-7

3. 손석태, 이스라엘의 선민사상, pp.104-11

1. Delitzsch, p.25

1.). [나할라테카 베니르아] 를 개역성경대로 '주의 백성이 곤핍할 때에'라고 번역하는 것은 어순이 맞지 않아 어색한 점이 없지 않지마나, 표준새번역의 임의적인 번역이나 다른 주석가들(Dahood, Tate, Kraus 등)보다는 낫다. 히브리어 [코난타]의 원형은 [쿤]이고 그 사전적 의미는 `세우다, 견고히하다'이다. 여기서는 `회복하다', `소생하다'가 더 적절하다.

< 10절 >

주의 회중. [하아테카]는 `주의 살아있는 자' 즉 `주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가리킨다. `주의 은택'에서 `은택'의 문자적인 번역은 `선한 것, 좋은 것' [톱]이다. 다후드 Dahood 는 우가릿 동계어로부터 [톱]을 `비'로 번역하고 있지만(p.140)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무 제한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비뿐만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무 제한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비뿐만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 백성들을 향한 변함없는 관심과 양육이다. 특별히 가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세상에서 짓눌려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신 모든 종류의 포괄적인 관심과 사랑이 곧 하나님의 은택이다. 여기서 [아니]('가난한 자')는 환난을 당하거나 희생물이 되어 고난을 겪는 자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7-10절은 하나님께서 광야를 행진하실 때 거룩한 전쟁의 전사처럼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비를 퍼붓는다. 이 비로 말미암아 주의 백성은 해갈하며, 특별히 가난한 자들이 주의 온갖 좋은 것으로 만족을 얻게 된다.

68:11-14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11-14절은 하나님의 가나안 열왕들에 대한 승리를 회상하고 있다. 11절은 하나님의 승리의 선포이며 12-14절은 그 결과를 기술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함으로 왕들은 도망가고, 그의 백성들은 탈취물을 나누며, 비둘기처럼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 11절 >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들에 대한 승리를 먼저 선포하시는 것이다 (출23:22-23, 27-28, 31 ; 신7:10-24 ; 11:23-25 ; 수1:2-6).

소식을 공포하는 자가 큰 무리라. 전통적으로 [ 살]의 피엘, 분사, 여성, 복수형인 [하므바세롯]을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라고 번역해왔다. 전쟁에서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 삼하1:20). 칼빈은 이 경우 마치 전쟁이 끝난 후 여인들이 노래하고 승전의 소식을 전한 것처럼 이해하나 다음에 이어지는 문맥이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됨으로 열왕들이 놀래어 도망하는 경우라면 여기서 여자를 언급하는 것은 문맥상 순서가 맞지 않다. 만일에 이것을 집합적인 복수로 읽는다면 여성적인 의미가 사라져, `소식을 공포하는 자가 큰 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식을 공포하는 자'가 누구인가 히브리어 [차바] 는 군대나 전사를 의미한다 (삼하3:23 ; 출6:26). 따라서 주께서 신적인 전사로서 말씀을 주실 때, 이를 선포하는 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군대이며, 그 수가 많다는 뜻이다. Dahood는 이를 구체적으로 하늘의 `별'이라고 말하지만(p.141), 별 이상의 천군 천마이다. 17절의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한 것도 바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전쟁에서 공격이 끝나면 병사들이 탈취물을 나누는 것이 순서이며, 병사들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다. 이 탈취물은 집에까지 가져와 가족들도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네밧 바잇]을 `집에 거하는 여자'로 번역하는 것도 무리는 없다. 이 경우 [네밧] 의 원형은 [나바]로서 동물이나 사람 또는 하나님의 거주지라는 뜻이 될 것이며, 목초지라는 뜻도 가능하다 (삼하 7:8 ; 사65:10 ; 시23:2, Tate, p.165). 전장의 병사뿐만 아니라 집에 거하는 여인들마저 탈취물을 나누는 것은 전쟁에서의 대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 13절 >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는. 사람이 양 우리에 눕는다는 표현은 은유적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양무리에 비유한다면 [세파타임]을 양 우리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다. 이스라엘이 양 우리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찬란하게 빛나는 한 마리의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NIV에서처럼 양 우리를 `야영장의 모닥불' campfire 나, 테이트 Tate 처럼 `안장 사이'(p.165)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다.

< 14절 >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는 열왕들을 흩으시는 모습을 살몬에 흩날리는 눈으로 비유하고 있다. 살몬은 세겜 근처에 있는 산이었다 (삿9:46-48). 그러나 일부의 학자들은 바산의 동쪽에 있는 검은 화산이 [예벨 두르주]를 가리킨다고 한다 (Albright, HUCA 23 [1950]23). 레바논을 흰색에 비유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곳을 검은 색으로 비유한다. 어지러이 도망하는 열왕들과 병사들의 모습은 검고 어두운 살몬에 휜 눈이 뿌리는 모습에 아주 극적이다.

68:15-18 바산에 거하려 하신 하나님

15-18절은 그의 행진을 마치시고 그의 산에 거주하시고, 그의 군대와 백성들을 거느리시며 사람들로부터 예물을 받으시고자 한다.

< 15절 >

바산. 바산은 살진 암소와 힘센 황소가 자라는 곳이며 (신32:14 ; 겔39:18 ; 암4:1 ; 시22:13), 용맹스러운 사자의 집이 있는 곳이다 (신33:22). 성경에서 고상함과 부요함과 능력의 상징이다 (사2:13 ; 렘22:30).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이며, 높은 산이다.

< 16절 >

바산 주변의 높은 산들이 하나님이 영영토록 거하시려고 선택하신 산을 시기한다. 여기서 산들은 의인화되어있다. 사2:2에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며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라고 말하고 있다(미4:1). 고대 근동의 세계에는 신들의 거처가 산이었다. 여호와의 산이 다른 산 꼭대기에 선다는 것은 왕으로서의 여호와의 통치와 위엄과 능력이 다른 모든 산보다 뛰어나 굳게 서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온 세계에 대한 왕권이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산이 반드시 높게 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처로 별로 높지 않은 바산을 택하여 높이시기 때문에 바산 주변의 산들이 시기하는 것이다. 택함을 받은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 17절 >

하나님의 병거. 고대의 근동의 산들은 하늘의 군대와 지상의 군대를 보유한다. 천상에서 신들이 전쟁을 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그 신들의 백성들이 싸우는 것이며, 지상에서의 한 백성의 다른 백성에 대한 승리는 곧 한 신의 다른 신에 대한 승리였다 (삼삼4-5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천상에 수많은 군대를 보유하시며 지상에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군대로 뽑으셨다 (Sohn, pp.54-61).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에서 쓰였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병거'는 곧 하늘의 군대를 의미한다 (왕하6:17 ; 합3:8, 15). [아도나이 밤 시나이 바코데쉬](`주께서 그 중에 계시며, 시내산은 그 성소에 있도다)는 시내산이 그 성소에 있다고 할 때 그 성소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Tate는 를 로 읽음으로 가 와 두 단어에 같이 연결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the one of Sinai'나 `the god of Sinai'로 번역하고 있으나 (Tate, p.166) 여기에는 무리가 많다. BHS의 제안대로 (주께서 시내산으로부터 그의 성소에 나타나셨도다) 로 읽는다. 신33:2은 이를 뒷받침한다.

< 18절 >

하나님은 높은 곳으로 오르셔서 그의 잡힌 백성을 이끌고 오시며, 선물을 받으신다. 여기서 `높은 곳'은 시온산의 여호와께서 왕으로서 좌정하신 곳을 가리킨다. `선물을 받으심'은 예배와 경배를 받으심을 의미한다. 엡4:8은 본문을 인용하여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주시는 일이 바로 본문의 연속이요 성취로 이해하고 있다.

 본문 요약

시편68:1-18은 하나님께서 신적 전사로 수많은 병거와 병사를 대동하고 광야를 거쳐 행진하여, 그의 영영한 거처에 왕으로 좌정하시고 뭇 백성들로부터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이 행진하실 때 땅이 진동하며 비바람이 몰아친다. 거역하는 자, 곧 열방의 왕들은 마치 눈밥이 날리듯이 다 흩어지고 도망간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비로 말미암아 오히려 해갈하고, 아버지처럼 그들은 보호하시며 재판장처럼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시편 저자는 그의 영영한 성소를 향하여 행진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그곳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며 그들의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열왕들과 그의 백성들의 반응을 대조하고 있다.

 신약과의 관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4:7-16에서 시68:18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위로 올라가심을 하나님께서 그의 영영한 성소, 곧 시온산에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올라가심에 대한 연속이요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Calvin). 마치 하나님께서 신적 전사로서 그의 성전을 마치고 그의 높은 처소에 올라가 그의 병사들에게 선물 (탈취물)을 나누어주시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부활 승천 후에 하늘에 올라가셔서 그의 백성들에게 선물, 곧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칠칠절의 시로 사용되었듯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오순절의 시로 사용되고 있다 (Kinder, p.238).

 설교 요지

제목:영원한 성소로 행진하시는 하나님

대관식을 마친 왕이나 취임식을 마친 대통령은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들의 거처인 궁전이나 대통령 관저로 행진을 한다. 왕중의 왕, 만군의 하나님께서 행진을 하신다면 그 모습이 어떠한 모습일까

<본론>

1. 성소를 향하여 행진하시는 하나님

1. 신적 전사로 행진하시는 하나님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며, 시내산도 흔들림,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다.

2. 성소에 거하시고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의 성소에 거하시고자, 그가 택하신 성산 시온을 향하여 행진하신다. 그리하여 만백성의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고자 한다.

2. 도망가는 열왕들

하나님께서 행진을 하시매, 열왕과 그 군대들이 도망한다. 마치 안개가 몰려감같이 눈이 바람에 흩날리듯이 날려간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3. 탈취물을 나누는 그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행진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며, 찬양한다. 심지어 집에 거하는 여자들도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승리의 기쁨을 맛본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요, 재판장이시요, 구원자이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마치 비둘기처럼 평안을 누릴 것이다.

<결론>: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성령의 선물 (엡4:8-13)

만군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그의 영원한 보좌에서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아울러 그의 백성에게 탈취물을 나누는 승리의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