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평강의 주님을 만난 기드온 (삿 06:11-18)

첨부 1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 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하나님은 마치 우리들의 아버지와 같다고 비유해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한 학생이 훌쩍거렸습 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학생에게 우는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기 아버지는 매일 밤 12시가 다 되어 술이 잔뜩 취 해 들어와서는 식구들을 때리는 행패를 부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 만일 자기 아버지 같은 분이면 어쩌냐고 울먹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매우 부정적인 경 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네, 제 1위가 하나님은 경찰관 같은 분 이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마치 경찰관처럼 잘못하는 사람을 추적 하여 붙들어서 혼을 내 주고 딱지를 떼고 감옥에도 보내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성경을 읽으면 하나 님의 의(義)가 강조되는 대목에서 하나님이 매우 잔인하고 보복을 일삼는 신(神)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잘못된 하나님의 모습을 마음에 심게 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늘 무섭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따뜻하고 자애로운 분으로 느껴 보십시오. 우리가 그분에게 다가갈 때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우리 마음을 위로 하고 평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사사기 7장에서 사사 기드온이 만났던 하나님은 매우 따뜻하고 걱 정거리를 없애 주시는 평강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 님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두려운 일로 강조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절대적인 성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을 보는 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 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6장 22-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使者)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 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 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 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기드온은 뜻하지 않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기드온은 당연히 죽을 줄 알고 슬퍼하는데 하나님께서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 니하리라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장소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을 여호 와살롬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평화이시다, 하나님은 평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살았던 때는 주전 12세기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은 태평성대가 지나면 하나님을 망각하고 또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습니다. 사사기 6장을 시작하는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 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1절).

범죄한 이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미디안이라는 요단 동 쪽에 거하고 있던 유목 민족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에 처하게 하십니다. 매년 농사철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종을 하고 나면 미디안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와 농산물을 다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 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食物)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3,4절).

정해진 때에 국가가 세금을 징수하는 것처럼, 파종이 끝나면 미디 안 사람들이 꼭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농산물을 파헤쳐 놓았습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토굴 생활을 시작합니다.

6장 2절 말씀입니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 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미디안 사람들이 농작물에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소나 양 같 은 가축도 남겨 두지 아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숨겨 두기도 하고, 먹을 양식을 감춰 두기도 할 양으로 산에 굴을 파서 생활했습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굴에서 생활하면서 7년이라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습 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징계의 장중(掌中)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 이제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입니다.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또 한 예입니다. 이스라 엘은 죄를 범하고, 고통을 당하고,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 구출을 받습니다. 죄와 고통과 기도와 구출, 이것이 사사기에 서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6장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 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구원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 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한 사람 세우셨습니다. 그 시대를 구출 하고 그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사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는 기드온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는 주로 밀농사 를 지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요아스의 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 『 요아스』라는 이름의 뜻은 본래 절망입니다. 그것은 본명이 아 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시대가 하도 절망적이어서 이름을 절망 이라고 붙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들로 태어난 기드온은 오브라 에 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번 과에서는 기드온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를 살펴보겠 습니다. 당신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지금 이 순 간 당신이 경험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기드온의 경험을 통 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싹부터 짖눌러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 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대신 멸시하고 천 대하고 무시하고 너 같은 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의 태 도를 취하는 사람들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넘어지고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기드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조적(自嘲的)인 절망 속에서 삶을 살던 비천한 농부에 불과했습니다. 15절의 고백이 그가 생각했던 자화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 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기드온은 자기 자신을 단순히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비천한 자이고 보잘것없는 자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첫번째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절).

하나님은 기드온을 만나자마자 그를 큰 용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기드온은 어리둥절해 말문이 막혔 을 것입니다. 자신을 제일 작은 자로 여기고 있던 그에게는 얼토 당토 아니한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현재를 보신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미래를 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평범한 농부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아주 잘 생긴 돌을 하나 발견했습 니다. 그는 그 돌을 보고서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외쳤습니다.

야, 다윗이 걸어나온다. 다윗이 걷고 있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돌을 보고 다윗이 걸어나온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미켈란 젤로는 돌이 다듬어지고 깎여져서 다윗 상(像)이 만들어질 위대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능성의 안목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능성을 가지고 하잘것없는 기드온을 바라보고 선택하 셨습니다. 주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를 사용하실 때 일어날 놀라 운 미래를 보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인물 가운데도 주께서 그 가 능성을 보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시몬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정서적 으로 지극히 불안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 늘과 내일이 다른 도무지 일관성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믿기 어 려운 사람, 그가 베드로입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 놓 겠다고 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쉽게 그분을 부인하기도 했던 사 람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처음에는 발을 내놓지 않아 주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 니라고 하니까 그럼 목욕을 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입니다(요 13:5-9 참조). 다음 행동과 말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 한 사람입니다. 아마 베드로는 변덕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오신 주님의 첫 말씀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 .

여기서 중요한 말은 장차라는 단어입니다.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식 표현인데 뜻은 반석입니다. 이것은 그의 성격에 얼 마나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육중하고 안정감이 있는 반석, 이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셨습니 다(마 16:18 참조). 베드로는 주님 손에 붙들려 삶이 변하 였습니다. 주님은 그분 앞에 겸손히 복종하는 삶에 나타날 위대한 가능성, 초대 교회의 기초가 베드로를 통해서 세워질 것을 보셨 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능성을 보고 그를 믿어 주셨습니다.

 당신은 도무지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비판의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해 괴로운 밤을 뜬 눈으로 새워 본 적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주님의 음성이 있 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하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 두 당신을 버리고 포기해도 오직 한 분 하나님은 당신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아시기 때문입니 다.

 창기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는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 누가 이 여인을 동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창기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성녀(聖女) 막달라 마리아의 가능성 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살기 등등한 젊은 관원인 사울에게서조차 가능성을 발견 하셨습니다. 그가 열정적으로 생애를 바칠 전도자 바울이 될 수 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 헌신할 때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고 주님의 사람이 될 것인지를 예측하십니다.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우리에 게 다가오시는 주님,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 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이름은 평강입니다.

 우리의 불평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기드온은 하나님을 보자마자 불평부터 늘 어놓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 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기드온의 불평은 오늘 우리의 불평과도 흡사합니다. 어찌하여 하나 님은 내가 이 어려움을 당하고, 이 고통과 멸시 천대를 받게 내 버려 두시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기적을 왜 지금은 베풀지 않는지를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기적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기드온의 불평을 들은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만약 당신 이 왕인데 신하가 와서 불평을 터트렸다면 그 신하를 어떻게 하겠 습니까? 아마 왕에게 대든 죄로 감옥에 가두었을지 모릅니다. 그 런데 기드온을 향한 하나님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 냐.

 이 말씀에서 눈여겨볼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라는 구절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기드온을 쳐다보았다는 말이 아닙 니다. 여기서 돌아보았다는 말은 지극한 연민의 심정으로 그를 주 시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인정 많고 통찰력 있는 상담자와 같습니 다. 내담자를 이해하고 그의 고통을 공감하는 상담자가 그를 도울 목적으로 안타깝게 여기며 바라보는 연민의 모습입니다. 그 앞에 서는 어떤 불평도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눈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평을 받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때로 불평을 하다 보면 불평을 받아 주던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어 절교 할 위험에 이릅니다. 사람에게 불평을 털어놓는 데는 한계가 있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불평이라도 능히 받아 주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불평과 푸념을 들어 주고 받아 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 상대가 없을 때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을 체험합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어 답답한 가슴을 안고 살 아갑니다. 그럴 때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 신의 어떤 불평도 능히 들으시며 진정으로 당신을 이해하고 공감하 십니다. 그분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영국의 평신도 신학자요 문학가인 C.S. 루이스는 한때 불가지론 자(不可知論者)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 그는 시편을 읽으면서 모름지기 성경에 나오는 시(詩)이니 위 대하고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뜻밖 에도 시편에는 불평으로 가득 찬 시가 많았습니다. 원수를 망하게 해 달라는 탄원시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성경에 이런 시 가 기록되어 있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루이스는 그 가운데서 진리 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불평도 능히 들으시고 문 제를 해결해 주시는 크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고통이나 절망스런 상황도 다 이해하시고 우리의 불평을 말 없이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당신의 고통스런 형편을 털어놓으십 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4:15).

하나님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 나님의 이름은 마땅히 평강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불평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안심하라고 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신뢰하 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험까지도 용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내가 너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

너를 사용하겠다. 너를 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참조).

그러나 이 말만 믿고 지금까지 농사만 짓고 있던 사람이 나라를 위해 일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17절에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 게 요청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 씀하신 이가 주(主)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에게 하나님인 징표를 요구하였습니다. 진짜 하나님인 것을 확인해야 믿고 말씀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기드온은 도합 세 번이 나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첫째 시험/19-21절 기드온은 반석 위에 염소 새끼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놓고 그 위에 국을 쏟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使者)가 지팡이를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자 그것들이 다 불에 탔습니다. 마술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만하면 하나님인 것을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기드온에게는 그 증거만으로는 미흡했습니다. 그래 서 또 한 번 하나님께 증거를 요청합니다.

 둘째 시험/36-38절 기드온은 양털 한 뭉치를 가져다가 엉뚱한 요청을 했습니다. 밤에 사면은 마르고 양털만 이슬에 젖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데 그대로 됐습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셋째 시험/39,40절 기드온은 또다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드온도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지 진노하지 말아 달라는 간구를 먼 저 하였습니다. 한 번 더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하는 증거를 요구 했습니다. 내용인즉 둘째 시험과 반대로 밤에 사면은 이슬에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참으로 믿음 없고 괘씸하기까지 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시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 런데도 시험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그 마음의 동기를 보시기 때문입 니다. 기드온의 마음은 의심을 몰아내고 싶어했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하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택하여 세 우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은 의심을 넘어서 그분을 신뢰하기 원하는 기드온의 애타 는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자신을 시험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험을 용납하셨습니다.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 이십니다.

대개의 신자들이 이 본문을 읽고 감동을 받아 기드온처럼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예를 따르는 것이 좋은 신앙 자세는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어리석은 주문조차도 하나님은 허용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배우자 를 선택할 때였습니다. 한 자매만 저를 좋아하면 좋겠는데 워낙 여러 자매들이 저를 좋아하니까 보통 곤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지금 제 아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만 그래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마음이 더 급했습니다. 약혼이라도 하고 떠나야겠 다는 강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한 주간을 작정하고 새벽 기도를 나갔습니다 . 그 1주일 동안 어떤 모습으로든 확신을 갖게 해 달라고 간구 했습니다. 매일 새벽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 요일, 목요일이 지나고 금요일이 되어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토요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기도를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옵니다. 그리고 웬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는데 옆에 한 자매가 앉아 있었습니다. 바 로 지금 제 아내가 된 사람인데, 그 날 처음으로 새벽 기도를 나온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무엇을 더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래 서 사흘 뒤에 약혼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는 했으나 이런 기도가 권장할 만한 것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좋은 모범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이런 주문을 받으시고 그분을 시험하는 것까지도 용납하십니다.

말라기서 3장 10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예수께서 사단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눅 4:12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하 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복을 내리고 싶 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것까지 허용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자신의 모습에 낙심하고 절망합니까? 그 옛날 기드온을 만 나셨던 평강의 하나님이 지금 당신을 돌보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믿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향한 기대를 품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 신의 빛나는 가능성을 신뢰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떤 불평도 받아 주십니다. 그분께 나아와 모든 것을 아뢰십시오.

하나님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시험하십시오. 하나님은 마침내 당신을 신뢰하게 하고 안심시키고 당신과 동행하며 당신을 사용하실 것입 니다. 빛나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이름 은 샬롬, 평강이십니다. 이 평강의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고자 합 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두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눈으로 당신의 미래를 내다보십시오. 우리 의 비천한 인생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 위대한 삶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믿고 잠재된 가능성을 계발시켜 주시는 그분 께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드러내십시오. 확신이 서기까지 하나님 을 시험하는 한이 있더라도 믿음의 자리에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