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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기쁘시게하는 교회 (계 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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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즈음 계속해서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주를 기쁘시게 하 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 인가를 찾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세번째 시간으로 버가모 교회에 주 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버가모라고 하는 도시는 서머나 북방 100키로 미터에 위치한 무시아주 의 수도로서 당시에 벌써 장서 20만권을 소장하고 있던 도서관과 유명한 의 학교가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버가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신전들로서 버가모에는 '아에스쿨라피우스'라고 불리우는 뱀신 을 섬기는 신전과 제우스 신전 그리고 그 밖에도 로마의 황제를 섬기는 신 전들이 있어서 당시의 버가모는 황제숭배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바로 이러한 도시위에 세워진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버가모 교회가 그러한 곳에 교회를 세운 것을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13절 에서 '네가 어디 사는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버가모와 같은 사단의 위가 있는곳에 하나님의 고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몇해전 함께 일하던 교역자와 함께 소요산을 등산한 적이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다 보니 원효가 세웠다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주변의 경관이 참 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바라보던 전도사님 한 분이 저에게, 한국의 좋은 곳이란 곳은 다 절간이 차지 했다고 불평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 전도사님에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사실 은 좋은 곳은 절간이 차지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들이 차자하고 있기 때 문이었습니다.

불교는 세상과 떨어져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곳에 사찰을 세웠지만 교회는 온갖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의 중심지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압니다. 교회를 세워야 할 곳은 산속이 아니라 바로 사단의 위 가 있는 버가모와 같은 세상임을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는 자 꾸 산으로 올라 가려고 하고 있고 불교는 자꾸 세상으로 내려 오려고 한다 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도 산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랑 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의 체험이 너무나 좋고 아름다워 그곳에 초막을 짓고 있기를 원했지만 예수님 은 그곳에 초막을 짓고 머무르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산은 내려오기 위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귀신들려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올라가는 것이지 그곳에 머무는 것은 기독교의 본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중의 하나는 버가모와 같은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숨기지 아니하고 그곳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장으로 삼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 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속에 사찰을 짓고 그 속에서만 목탁을 두드리는 불교 와 같이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주여 주여를 외치고 정작 중요한 세상에 나 가서는 예수 믿는 티도 내지 않고 전혀 예수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버가모 교회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하여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 여 주셨습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감추고 숨는 역할이요 빛은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금이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고 그냥 드러내고 있으면 그 소금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바로 이러한 소 금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제와 선행입니다. 하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소금의 역할인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집사님 중에 아주 신앙적으로 사업을 하시던 집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특히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하셨는데 정말로 가족들 로 모르게 구제와 선행을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과 가까이 지내시던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께서 그를 위하여 조시를 지으셨는 데 그 중에 한귀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오른손이 하는일 왼손이 모르게 /오른손이 하는일 오른손도모르게...

얼마나 고인이 모습을 잘나타낸 표현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공감 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공을 세우면 그것을 나 타내려고 하고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억울해 하고 낙심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소금과 같은 삶을 살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빛의 역할은 이와 반대입니다. 빛은 감추면 역할을 감당 할수 없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둔다고 예 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빛은 감추는 역할이 아니요 드러내는 역 할입니다. 어느 예수 믿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으신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실 때 기도 를 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 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때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빛의 역할인 것입니다.

숨는 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결혼을 한 사람이 마치 결혼을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도 하고 말도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동기가 불순한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처럼 하여서 할 수 있는 일은 음행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임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숨기우면 그는 결국 세상과 사람과 똑같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행음을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자 신을 숨긴다는 것은 그렇게 살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예수 믿는 일을 부끄러워 하는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알려 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해준 적이 있었 습니다. 이야기는 만든 이야기이지만 얼마든지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콩나물 장사를 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공부시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한채 그저 그 아 들 하나 공부 시키기 위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시 발 표하는 날 어머니도 장사를 마치고 허줄한 모습으로 발표장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허줄한 어머니가 부끄러워 그만 누구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자기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라고 이야기하고 말 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참 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질이 나쁜 죄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러한 죄를 지으면서 살 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 때에 샘터라고 하는 책에서 장 훈 선수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그후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장 훈 선수가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가 되어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자 일본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었습 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 니다. 어느날 그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한 관중이 그를 향하여 '조센징 가 라'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온 광중이 장 훈 선수를 향하여 '조센징 가 라' '조센징 가라' 라고 외쳤습니다. 일본인들의 야유가 끝난 후 장 훈 선 수는 저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답니다. '그래 나는 조센징이다' 그리고는 일본 투수가 던지는 공을 힘차게 때렸는데 그 공이 담장을 넘어 홈런이 되 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독일 사람들은 유태인들을 멸시하기 위하여 가슴에 노란 별을 달고 다 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태인들은 그 노란 별을 자식들의 가슴에 달아주 면서 내가 너에게 이 별을 달아 주는것은 네가 자랑스러운 유태인이기 때문 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긍지라고 아니 할수 없습니다. 그 러한 민족의 긍지가 2천년을 나라없이 살았지만 다시 나라를 회복하는, 역 사의 불가사이를 이루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잊어서는아니 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 러분은 자랑스러운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세상에서 그리 스도인의 표지를 감추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슬퍼 하시는 것입니다.

새문안 교회에 장군 출신 장로님 한 분이 계십니다. 박대통' 훤 몇 몇 장군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대통령은 장군들에게 일일히 술을 한잔씩 따라 주었는데 그때의 분위기는 그 술을 따라 주는 것으 로서 장군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를 보여 주었고 장군들은 그것을 마심으로 충 성을맹세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마심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때 이 장로님은 짧은 시간이지만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각하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 다. 그래서 이 술은 마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사양하였다고 합니다. 명령 하면 복종만 있는 군대에서 살았던 대통령에게 이것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 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 장로님 과 동료들은 그것으로 군복을 벗게 될 줄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 게 되지 않았습니다. 후에 대통령은 그 분에게 더 중요한 자리를 맡겼다고 합니다. 신앙때문에 대통령의 술잔을 거절 할줄 아는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 이요 또한 믿을만한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장로님을 존경합 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다 그러한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될수 있기를 바 랍니다.

세상에서 빛과 같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식사할 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신이 크리스챤임을 드러내는 가장 쉽고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직 장 신우회 활동에 참여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교 회가 셋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 교회를 다녀야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우리가 주일마다 출석하는 교회요 둘째는 가정교회요 셋째는 직장교 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를 좋아하시지만 특별히 직장교회를 좋아하십 니다. 이것이 오늘 버가모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하나님의 멧세지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우리의 교회를 세우십시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며 또한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만 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고 살면 불리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 씀하십니다. 내가 저들이 알지 못하는 만나를 주겠다고 말입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내용이 나 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당신과 언약을 맺으면 심히 번성케하며 그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히 번성케 하며 열국의 아비가 되게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단하나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 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디서든지 어떠 한 때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심히 번성케하며 열국의 아비가 되게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 언약을 지켰습니다. 하나님도 약속을 지키시어 아브라함으로 하 여금 심히 번성케 하였으며 또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었습니다.

이 언약을 맺으실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수많 은 신앙인들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 늘날 수많은 세상의 신앙인들은 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 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이 언약을 맺으시 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을 약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기독교인임을 숨기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버가모 교회처럼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믿음을 지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람들 이 알지 못하는 만나를 주실 것이고 여러분을 아브라함과 같이 심히 번성케 하시며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해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교인들이 되어 주실 때 우리 동안교회는 버가모 같은 교회가 될 것이 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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