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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기쁘시게하는 교회 (계 0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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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성경 한 곳을 더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계시록 4장 10절에 서 11절의 말씀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 드려 세세토록 하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 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텔레비젼을 보면 맹수들이 먹이를 사냥할 때에 무서운 집중력을 가지고 먹이를 추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적당한 비교는 아닙니다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무서운 집중력을 느끼곤 합 니다. 어느 때에는 몇일씩 또 어느 때에는 몇달씩 한가지 주제를 가지 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곤 합니다. 요즈음 저는 근 한달나 마 매우 중요한 한가지 주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저에게 집중하고 계시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부인과 떠남'에 대해서 입 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의 마음이 집중되고 있 습니다.

지난주 극동방송 설교를 준비를 하다가 또 다시 '자기부인과 떠 남'에 대한 강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 금전에 봉독해 드린 요한 계시록 4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은 계시중에 횐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쓴채 보좌에 둘러선 24 장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 24장로가 누구 인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살았기에 하나님의 보좌 제일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이유를 본문에서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본문중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 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 24장로들은 모두가 다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한면 흰옷은 성 도의 깨끗한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계19:8)그리고 면류관은 성도의 신앙과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인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4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썼다고 하는 것 은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행위가 금면류관을 받아야 하리만큼 훌륭 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자리에 까지 이르 는 사람이 될수 있었는가에 대한 더 중요한 대답은 그 금 면류관을 벗 어서 보좌앞에 던지며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하나님께 돌렸다라 고 하는 10절과 11절의 말씀속에서 찾아 볼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저들의 신앙과 사람됨을 가늠해 볼수 있습니다. 저들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모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만 돌리는 신앙 의 소유자들 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저들 이 그러한 신앙의 소유자들 이었기 때문에 24장로의 반열에 들 수 있었겠음을 짐작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쓸수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으나 그래 도 더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기 위하여 그 금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중의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횐옷을 입지 못하고 면류관도 없는 그러한 명 목상의 교인들 때문에도 문제가 생깁니다만은 사실은 보다 크고 근본 적인 문제들은 휜옷을 입고 면류관은 썼으나 그것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그 면류관에 연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자신이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사실 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어렵고 가난할 때 교회에는 교회의 십자가를 지 고 충성하는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외면하 고 회피했음에도 불구하고눈물과 기도와 땀으로 더나아가 피흘리는 희생으로 교회를 지키고 가꾸어온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있었습 니다. 저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이 렇게 부흥하고 발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로 저들의 수고와 희생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 음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수고를 하신 신앙의 선배들은 참으로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시기에 합당하신 분들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가 앞으로도 정체하지 아니하고 계속 발 전하는 교회가 되려면 그분들이 스스로 24장로와 같이 면류관을 벗어 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시니 라'는 자기부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저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 고 자기의 공적을 이야기 하며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할때 저들은 지 난주일 말씀드린 교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교회의 부정적인 기득권층이 되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쓰기도 어렵지만 벗기가 더 어렵습니다. 면류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벗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벗지 못할 사람은 차라리 아니 쓰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릅니다. 24장로의 훌륭 함은 금면류관을 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리 는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계속적인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우리 한국 교 회에는 오늘 본문의 24장로와 같이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던져 드 리는 사람들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저는 24장로와 같은 몇분의 이야 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합니 다.

어려서 부터 다니던 교회에 장로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부친의 뒤를 이어 교회의 2대 장로가 되신 분으로 작지 않은 교회이었 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재정의 1/3을 담당하시리 만큼 헌금을 많이 하시 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어느날 제가 당회에 건의할 일이 있어서 그 장 로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를 특별히 가까이해 주셨고 또 제 생 각에는 헌금도 많이 하시는 장로님이시니까 자연 당회에서도 발언권이 강하시리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저 에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도사님이 아시다시피 제가 헌금을 조금 많이 하는편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당회에 가면 말을 거의하지 않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든지 발언을 많이 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해야지 둘다 다 많이 하면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 니다." 저는 그 말씀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 으면서 아 이 장로님이 참으로 존경할 만한 장로님이시구나 하는 생각 을 하였습니다. 헌금을 많이하면 발언권이 강해집니다. 그 발언권은 면류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면류관을 하나님을 위하 여 깨끗이 벗어 놓았던 것입니다.

상계동에 있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으로 부터 아주 아름다운 이 야기를 지난 주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오신 어느 교회의 장로님 내외분이 세우신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 내외분은 연탄 수레를 끄시면서 돈을 모으신 분인데 돈이 모이시는대로 땅을 사셔서 나중에는 큰 재산을 이루게 되셨다는 것입 니다. 그 장로님은 돈을 모으시면서 하나님께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은 당신의 집을 짓기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먼저 짓겠다는 약속 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당신의 집을 짓게 되셨을때 집을 짓기 전 에먼저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셔서 당신의 땅을 다 보여주 시고 교회를 짓기에 합당한 땅을 선택해 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골라주신 땅에 자비를 드려서 교회를 지으신 것이 바로 지 금 당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 사님은 아주 근사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하여주셨습니다. 그 장 로님은 건축만 하셨지 아직까지 거의 한번도 교회에 오신 적이 없으시 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자신이 영광을 받 을까봐 두려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와같은 장로님을 한분 더 알고 있습니다. 하나도 다른 것 이 없이 똑같은 일을 그 장로님도 하신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집을 짓 기전에 하나님의 전을 먼저 건축한다고 하는 일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 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으로 흰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벗는 것입니다. 제가 예로 들 은 몇분의 장로님들의 훌륭함을 면류관을 쓰신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벗으신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 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부인은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기득권층에 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자기 부 인은 그러한 기득권층을 부인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된 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나중행위가 처음 보다 많다고 하나님께 칭찬을 들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책망도 하시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은 두아디라 교회 가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것과 음생을 저질렀다라고 하는 것입니 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서는 로마서와 고린도서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입장을 밝 혀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우상의 제물인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라고 생각하여 고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들 이 있었든 반면에 우상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 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여 거리낌없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 니다. 저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이 에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둘다 다 옳다는 것이었고 이와같은 하나님의 판단을 전하여 준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입장은 후자로서 하나님께 감 사하고 먹으면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훌륭 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가 그것때문에 양심에 시험을 받는다라 고 하면 자기는 그의 양심을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하 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먹어도 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 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고 책망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 었다고 책망을 하시는 것은 그 행위의 결과만을 놓고 말씀 하시는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회가 우상 의 제물을 먹게된 그 이유와 동기가 옳지 못함에 대하여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성숙한 신앙적인 판단을 따라 우상 의 제물을 먹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 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였는데 두아디 라 교회는 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성숙한 판단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 라 그것을 가장하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되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신앙의 합리성을 가장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 우는데 급급한 교회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행음하는 자리에 까지 빠 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 회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시 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보통 죄인이 아니라 타고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전통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이든 아니면 자신이 개혁과 발전을 주장하는 개혁론자이든 자신에게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 고 주를 따라가는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전에는 전통을 주장하든 개 혁을 주장하든 그 목적이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 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절대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교회 는 될런지 몰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는 절대로 될 수 없습 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표어를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로 정하였습 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먼저 자 기 자신을 부인 하여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흰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쓸 수 있 으리 만큼 열심히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리고 그러한 면류관이 우리에게 주어 지거든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선 24장로들과 같이 그 면류관을 주를 위 하여 벗어드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참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하는 신앙인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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