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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교의 신앙을 지킨 교회2 (계 0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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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든 개인과 교회와 역사속에서 섭리하시는 스타일을 보면 한가지 공 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시고 그 다음에 비 로소 각자가 맺은 열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해 보신다는 것입니다. 따라 서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 해 보시는데 그 시험은 바로 환경을 통해서 옵니다. 이 시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 이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한가지 측면은 연단을 통해 더욱 굳게 하시기 위함 이요 또다른 측면은 지금까지 쌓아온 공적이 금이나 은같이 타지 아니하는 것으 로 되었느냐 아니면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이 타서 없어질 것으로 되었느냐는 것 을 판단하기 위해서 입니다. 창수와 비바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가 반석인 지 모래인지 구분하시기 위함이요 둘째가 반석에 쌓았다면 얼마나 든든하게 지었 느냐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도리깨질을 하면 할 수록 알곡은 드러나게 되있습니 다. 그리고 드러난 알곡을 키에 담아 키질을 하면 쭉정이는 밖으로 밀 나가지만 알곡은 점점 안으로 모입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모아진 알곡을 선풍기에 날리 면 보이지 않던 검불과 먼지는 날라가 버리고 알곡은 더욱 알곡되어 드디어 곳간 에 들어가게 됩니다. 도리깨질이나 키질이나 풍구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 까 비록 그때는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알곡을 진짜 반열에 세우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성경의 예들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전에 반드시 걸쳐 야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험이라는 과정입니다. "과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혹 축복을 받아도 잘 관리하거나 활용할 실력이 있는가" 를 보 시기 위해서 축복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시험을 먼저 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누 구는 시험을 변장된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랫고 룻 이 그랬고 욥이 그랬습니다.

 창립 2주년을 맞은 우리교회와 각 개인 개인의 신앙의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솔 직히 말씀드려 우리교회는 성전 을옮기기 전후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스타일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 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 참이었나 거짓이었나를 구분하 시기 위한 환경일 수도 있고, 교회와 성도에게 축복하시기 위한 테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어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기회가 될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주간 기도원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 의 주인이시요 우리교회를 뜨겁게 사랑하시며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여러 통로(기도, 말씀,기도 묵상)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 었습니다. 또한 교인 한사람 한사람, 한가정 한가정, 사업체 하나 하나에 하나님 의 분명하신 뜻과 섭리가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7교회를 책망하셨듯이 저나, 저의 가정이나, 교회나, 제직이나 성도에게 칭찬과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칭찬과 책망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러자 우리교회에 대한 소망과 사랑이 불일듯 했고 우리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 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주에 말씀드린 서머나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순교의 신앙을 지킨 교회. 물론 우리교회의 어려움은 저들의 고 통과 어려움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저들은 우리보다 훨신 더 어려운 상화이 었는데도 책망은 없었고 칭찬만 있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교회입니까 얼마나 부 러운 교회입니까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께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요, 예수 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격려를 받았다는 뜻임을 지난 주일에 말 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서머나교회가 받은 위로가 어떤 위로인지를 상고해 보았 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나머지 두가지 교훈을 상고해 보고자합니다.

 2.서머나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인정은 무엇입니까 (9) 서머나교회는 외부적으로 볼 때는 지질이도 가난하고 참으로 볼품없고 비천하게 보인 교회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도 그리했고 자신들이 볼 때도 그리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실상은 부요한 자니라"라고 인정하십 니다. 그런데 그 다음을 보면 재미있는 비교가 나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을 사단의 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하는 의미는 말끝마다 하 나님을 찾고 율법을 운운하고 종교적 행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참으로 신실한 것 같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는 저들의 정체는 하나님의 선 민인 유대인이 아니라 실상은 사단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보셨을 때 과연 서머나교인들과 같은 인정을 받을 수 있 겠습니까 아니면 자칭 기독교인이요 실상은 사단의 회라는 심판의 말씀을 듣겠 습니가 어느쪽이 우리의 실상입니까 가진것이 없고 좀 가난해도 주님이 인정해 주실 때 우리는 결코 가난한자가 아닙니다. 실상은 믿음이 부요한 자인 것입니 다. 배운 것이 없고 좀 무식해 보여도, 비천해 보여도 예수님이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과연 이렇게 인정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말끝마다 하나님을 찾 고 예수님을 말하고 주여 주여하지만 "실상은 나를 불신하고 있구나! 혼자 진실 된 것 같지만 실상은 거짓된 자구나! 혼자 깨끗한 것 같이 하지만 실상은 구더기 와 같구나! 혼자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구 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의 큰 일군 이요 지도자이지만 실상은 교회를 어지럽히고 넘어지게 하는 자구나!" 이러한 자 칭 유대인과 같은 책망을 듣지 아니하겠는지...한 번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 을 엄숙하게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어떠한가 내가 나 보기에 어떠한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님 보시기에 내 실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그물교회 모든 성도들과 부족한 저, 이 말씀을 통하여 실상은 부요한 자로, 실상은 거룩하고 진실한 자로, 실상은 적 은일에도 충성하는 자로, 실상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인정받게 되시기기를 소 원합니다.

 3. 그럼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은 무었입니까 (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죽는 순간까지 충성하라는 말씀 이요 죽는 한이 있어도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대개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하면 잘사는가" 에 있습니다. 왜 기를 쓰고 자녀들을 가르치려고 합니까 자녀들이 빌 어먹지 않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왜 아침부터 밤 늦게 까지 분주하게 뛰어 다닙니까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보면 "얼마나 잘사는데 있느냐"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잘 죽느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잘살아 보았자 7-80 년이지만 잘 죽어야 영원한 미래를 복되게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순간이라고 고백하면서 잘사는 일에만 관심있고 잘죽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면 이는 거짓된 신앙고백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연세 드신 어른들을 보면 "어떻하면 잘 죽을 까" 하며 걱정하시는 분도 있긴 있습니다. 그 걱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들입니 다. "고생하지 말고 죽어야 할텐데...갑자기 죽지 말아야 할텐데..." 유언을 못하니까 갑자기 죽어도 안되고 자식들에게 페가 되니까 어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어도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3일만 누웠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 다. 물론 이것도 복은 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들이 장례치루기가 힘드니 한 여름이나 한겨울에 죽어서는 안되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요일날 죽지 않 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금요일에 죽으면 주일에 장례를 치루어야 하니까요. 그 래서 토요일에 죽어서 주일에 성도들의 조문을 받고 월요일에 장례를 치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교역자를 생각해서 화요일 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분도 있습니다. 일주일 중 화요일만이 교역자가 예배 에 부담없이 장례절차를 치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언제 죽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가 지 충성할 수 있어야 할터인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죽어야 할터 인데..."하는 것을 의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믿음 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포기하지 맘라는 말이요, 죽는 시간까지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엄습한다고 해도 복음전하 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요, 죽을 각오를 가지고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 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 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어떻게 책임져 주십니까 8절에 보니 예수님을 죽었다 가 살아나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면 바로 이 부활의 영광에 동 참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뿐만아니라 생명의 면류관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생 명의 면류관은 세상에 있을 때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담보로 한 상급이기에 하늘나라에서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최고 귀한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주님도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것을 아끼지 아니 히시고 주시는 것이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면류관은 죽도록 충성한자에게만 주어지는 상급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죽도록 충성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 앞에 서 는 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신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습니까 잘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 죽을 준비를 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믿으 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실한 성도의 태도입 니다. 물론 영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땅에서 잘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영생을 믿는 우리에게 는 잘 죽을 준비를 하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지금 잘 죽 기위해서 잘살고 있습니까

두주간에 걸쳐 우리는 서머나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상고하며 우리 신앙을 세가지 로 점검해 보았습니다. 첫째, 내 현재 생활이 예수님이 알아주실만한 신앙의 행 위인가 둘째, 주님 보시기에 내 실상은 어떠한가 셋째,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만큼 죽을 준비를 잘하며 살고 있는가 이 세가지 말씀을 무기로 한번 영적 싸움 을 싸워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서머나교회 교인들 이 받았던 위로와 인정과 격려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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