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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 (마 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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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말씀을 듣는자들 가운데서 세번째 부류로서 말씀이 싹이 돋아 올라와서 자랄 때에 그것이 잘자라 결실을 못하게 가시떨기가 그 기운을 막았다고 하신다. 가시떨기는 영적 생활을 침식시키는 큰 세력인데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또 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쾌락이라는게 있어서 결실치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① 이생의 염려라는 것은 별다른 특수한 사람들이 가진 염려라든지 혹은 어떤 죄악적인 염려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사람들이 아무라도 가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염려 어떻게하면 살까 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이다. 사는 문제에 염려안할정도로 생활이 안정되면 어떻게 사람답게 살까 출세하고 살까 하는 마음의 요구로 나쁜 의미가 아님.
② 재물의 욕심 독특한 죄악이 아니고 세상사람들이 다 추구하고 나가는 것. 미묘한 관계가 있다. 저축이라는 것. 재물에 대한 표준 성경이 안 세워진 것 아니다. 자기가 표준을 세워. 얼마까지는 적당하고 그이상을 보고 나가면 욕심이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마음 자리가 문제이다. 재리의 욕심이 큰 문제는 말씀의 씨에게 자기가 주어야 할 중요한 것들을 못 주고 있는 것.
③ 쾌락 행복추구도-다 변호될만하고. 이 세상 사람들은 부적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없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는 모든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다.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기본권리다. 이런 것들이 왜나쁘냐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라도 선덕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어 가는 일을 저해하고 그것을 질식케해서 맘 기울임과 에너지와 정성을 그 선덕이라는 것 그유가치하다는 것 때문에 자기맘에 도사리고 앉아서 흡수해 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여야 할 자기의 정성이나 자기의 노력에는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던지 적게 벌었던지 그것이 최종의 문제가 아니라 이생의 염려, 행복추구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이지 못해서 열매를 못 맺는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만 이세상에서 중시되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들의 생활양식, 생활양태 그속에서 나타나는 까닭에 독특하게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띠고 발휘되지 않으면, 이 세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활양태와 구별됨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 씨를 품은 사람은 많아도 열매맺는 사람은 적다. 마음만 가지고 있어선 하나님 나라가 형성되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 백성들의 그러한 생활로 표현이 되서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데 의미를 가진다.
열매 안 맺어도 하나님 나라라고 집어 넣고 적당하게 내맘대로 교인생활 잘했으니까 그 사람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못하는 것이다. 그걸 보여준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렬하고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렬해도 마음과 생활과 사회생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못한다.
하나님 나라를 강렬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씀의 사역이라는 것은, 즉 하나님 말씀에 정당한 장성과 그로 말미암은 결실이라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느냐하면 그 사람이 전생활과 생명을 오직 거기다가 기울이고 사는 것이다. 이세상에도 마음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마음을 주고 그렇게 해서는 열매를 못 맺는다. 아무 열매 맺어도 되는 것 아니다. 사5:들포도. 세상 것은 조금만 저도 잘자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전정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자랄 수 없고 열매 맺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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