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겨자씨 비유 (마 13:31-32)

첨부 1


I.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 씨
씨앗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을 의미한다.여러 씨앗 중에서 겨자 씨는 보통 가장 적은 치수나 무게를 나타내는데 인용되어 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겨자 씨란 가장 작은 미립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겨자씨는 복음의 시작과 깊은 관련이 있다.초라하게 말 구유의 아기로 초림했던 예수님과 사회적으로 미천했던 제자들과 그리스도교 초기의 공동체의 미약함은 겨자씨에 비견될만 하였다. 그러나 그 안에 씨앗과 같은 생명력이 있다는 데에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씨앗은 외견상으로 무척 작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이 씨앗에는 그 어떤 것에도 없는 생명력이 있다. 그 생명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미래의 장엄함을 의미해 주는 것이다.
씨앗은 조그만 한 알갱이의 모습으로 힘도 없이 작은 충격에나 영향력에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력이 있어서 자라나면서 무성해 진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으로부터 거부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모습일 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에 따라 부활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곧 복음의 숨어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생명력이 씨앗의 생명력과 같은 복음의 생명력이며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담대히 신앙을 지키는 생명력인 것이다.
조그만 겨자씨를 보면 우리는 별다른 특징도 없고 해서 무시해 버린다.하지만 그것은 가시적인 것이며 외형적인 모습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나약한 모습으로 힘없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외형적인 것만으로 판단하고 흩어져 버림으로 모든 것이 소멸되는 것 같았지만 그의 나라에 대한 궁극적 위대성을 예수님은 소유하셨고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서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되셨다.

II.나물보다 큰 나무가 됨
가.싹트임
겨자씨는 생명력이 있어서 싹이 튼다.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보기에는 매우 미미하고 보잘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자체적으로 스스로 싹을 내고 자라난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의 동역자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싹을 일으켜야한다.우리는 세상에 속해있는 자들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밭이다.복음의 씨를 받는 밭으로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사역자로서 복음의 싹을 힘차게 키워 나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성장
한번 싹이 난 씨앗은 자라난다. 그것은 놀라운 생명의 신비이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의 결정체이다. 사랑의 힘으로 겨울의 추위도 이기고 굳은 땅을 헤쳐 새 싹이 돋아난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
그 시작은 보잘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연약하고 부드러워 험한 세파를 헤치고 자라날 것 같지를 않다. 그러나 연약한 순이 굳은 땅을 헤치고 나오는 것 이상으로 그것은 힘이 있다.그것은 매우 조용한 상태로 성장하지만 강철같은 힘으로 역경을 헤쳐 나간다. 그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빨리 자라난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매우 힘이 있고 그 성장 속도도 빠르다.

다.무시할 수 없는 성장
무엇이든 교만치 않고 겸손과 온유함으로 내실을 기하며 차분히 성장하면 건실해진다.겨자씨의 경우도 사람들은 작다고 무시하지만 발에 밟히는 잡초나 나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로서 성장해 간다.
그와 같이 천국도 그 시작은 미약해 보이지만 내적 충실함 속에 외적인 성장을 배로 하여 점진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성도들은 이러한 성장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한다. 결실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업을 포기해서는 아니된다.

III.공중의 새들이 깃들임
가.공중의 새
새라함은 대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노는 것으로 세상적인 승리감에 뛰노는 우리 인간의 단면으로 생각될 수가 있다.
모든 생물은 안식을 필요로 한다.공중의 나는 새도 안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안식처를 찾는가.결코 가지도 없는 황량하고 위험한 나무를 안식처로 삼지는 않는다. 새는 커다란 나무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우리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주님 계신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안식처이다.

나.깃들임
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품은 어머니의 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우리는 그런 안락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우리의 영혼을 깃들이어야 한다. 새들에게는 잎과 가지가 많고 무성한 나무일수록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 안락함을 준다.
천국은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감싸주는 곳이며 우리가 깃들일 곳이다.물질과 정욕에서 안락함을 찾는 것은 세상적인 것으로 참 안락이 아니며 잠시 잠간의 쾌락임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은 솔로몬의 영화가 헛된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하나님께로서 시작이 되고 완성될 영원한 안락처인 천국을 소망하며 그 곳에 우리의 영혼을 깃들여야 한다.

다.하나님 나라의 확산
겨자씨의 모습은 실망적인 것이었으나 나무가 된 모습은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올바로 천국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로서 세상을 살아갈 때에만 복음의 씨가 싹이 트고 자라나서 우리의 안식처가 예비된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과의 영적 싸움에서 늘 승리하기 위한 영적 군사로 천국 건설의 역군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산을 위해 복음의 씨앗의 생명력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처음 시작은 작고 미약했으나 성장하면 무성해지는 겨자씨처럼 천국을 소유한 한 생명은 미약한 것 같으나 그 작은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