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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직원-장로 (행 2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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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가 주로 교회를 유기체라고 하는 면에서 생각을 해 왔습니다. 교회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이다 라고 하는 면, 그러니까 이것이 유기체이지요. 한 면에서 병을 앓으면 다른 면이 같이 앓음을 당하고 한 편이 기뻐하면 또 다른 면이 다같이 기뻐하고, 이것이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이 그렇게 규정해 놓고 있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 과연 우리 가운데서 드러내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일 안드러 내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는 거냐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올시다. 성경은 교회가 그렇다고 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적이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성경이 거짓말이든지 아니면 우리가 가짜 교회든지 둘 중에 한인 것이지요, 성경이 거짓말 일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거짓말쟁이 이실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늘 생각해야 될 것이 아, 내가 정말 유기체로서의 역할을 다해 내야 되겠다, 이런 의식을 가져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기체라고 하는 면과 접붙여서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조직체라고 하는 면입니다. 유기체이기 때문에 조직은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쳐지지가 않습니다. 교회는 유기체이면서 또한 조직체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여러 가지 제도를 갖도록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럴 때에도 그 제도라고 하는 것을 사람이 자, 이러이러한 제도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좀 편하겠다, 좋겠다, 이런 식으러 하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의 경험에 근거하거나 우리가 좋겠다고 우리의 지혜를 짜내거나 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우신 그 제도의 원리를 찾아서 우리 가운데서 그 조직체가 있도록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만일에 주님께서 교회는 유기체이다, 어떠한 조직도 갖추지 말아라 라고 성경 가운데 말했더라면 우리는 전혀 아무런 조직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아, 목사라는 것도 있을 필요가 없고, 장로라는 것도 있을 필요가 없고, 집사라는 것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조직을 있게 하셨다면 우리가 생각하니까 이런 이런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런 것을 있도록 하셨다면 그것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일이지요.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여기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 되어야지 아, 우리가 옛날에 경험했을 때는 이러 이러한게 잘 되던데요, 그것이 표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성경이 우리한테 뭐라고 규정해 주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 되어져야 합니다.

가끔가다가 이런 조직체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타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교회에 목사님이 있고 장로님이 있고 의례히 집사님이 있고하면 맨날 사람들이 회의만 하고 싸움만 하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순수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예배하고, 또 그냥 성경 공부하고 그러면 어떻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우찌무라 간조”라고 하는 사람, “내촌(강산)”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은 주님의 말씀을 아주 존중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가 보니까 사람들이 조직체를 만들어 놓고 막 싸우고 그냥 문제가 많거든요.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그럼 조직체를 없애 버리자 뭐 목사 없으면 어떠냐, 장로님 없으면 어떠냐, 집사직같은 것을 없애고 순수하게 다 똑같이 그냥 성경 공부하면 어떻겠는가. 젊은 사람의 마음에 그런 것이 쏙 듭니다. 아, 그거 좋다. 그것이 진짜 같다. 이거요 예 그러나, 이때도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이 과연 성경 가운데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이것이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아,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좋다, 그것이 표준이 되어져서는 안된다, 이거죠. 그래서 성경 가운데서 어떠한 직원들을 두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가르치는가, 교회의 직원들이 어떤 분들이 있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교회의 조직체 중에서 교회의 직원들을 우리가 생각을 해 볼려고 합니다. 주께서 어떠한 직원을 두라고 하셨는가 교회의 직원,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생각이 들기 쉽느냐면 요즘은 교회마다 무슨 일이 있느냐면 교회 사무 직원들을 두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회사 같은데서 사무를 보는 분들이 계시듯이 사무 직원들이 있어요. 교회의 직원 하면 그분들이 직원들인가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제 더 중요한 직원들이 교회를 세우는 기본적인 역할을 한 직원들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교회를 만대에 세우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세우게 하신 직원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 늘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 교회를 세울 때만 있었던 직원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것을 우리가 설명할텐데, 그 사람들이 누구냐면 사도들, 신약 교회의 선지자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신약 교회의 전체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리켜서 말할 때에 우리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움을 입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1세기에 있던 사도들이 우리에게도 사도입니다. 그 누구가 내가 사도를 대신한다,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오늘부터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교회가 있으면 늘 있도록 하신 그런 직원들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찾아보면 교회에서 주님께서 실제로 있겠끔하신 직원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가운데 보면 바울이, 한번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그랬습니다. 이 교회 장로들을, 이것은 에베소에 보내어 청하였다고 하니까, 어디에 있는 장로들이겠어요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일 것입니다. 에베소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 교회가 하나가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에 주님께서 장로들이 있게끔하셨습니다. 우리가 장로님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데, 이때도 우리가 좋은 제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장로들, 그러니까 아, 우리가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을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28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감독자로 삼고”그랬죠. 그래서 장로님들을 뭐라고 표현하기도 했느냐면 장로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감독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라는 말이나 감독자라는 말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쓰는 말이지요. 교회 안에는 언제나 이렇게 장로가 있도록 하셨습니다. 뭐 여기만 그랬는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사도행전 조금 앞부분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행14:23-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각 교회에서 어떻게 했다고요 장로들을 택하였다,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주님께서 장로들이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수로 장로를 택하게 한 것이 아니고, 각 교회들마다 복수로 장로들이 있게끔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장로님이 한 분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위하신 주님의 규례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규례로, 아, 옛날에 있었던 규례도 오늘날에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나중에 이제 우리가 다음주에 생각할 터인데 디모데서에 보면 장로님들을 너희들이 이러 이렇게 세워라,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항존적으로 교회 안에 있도록하신 주님의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원들 가운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게 장로님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장로님들이 뭐하는 것이냐 몇가지 성경 구절들을 우리가 찾아보겠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장로님들이 하시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어디를 보시느냐면 로마서에 보면 “다스리는 것”과 하는 말이 나옵니다. 다스리는 것, 그게 장로님들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장로님들은 교회를 다스립니다. 그게 왜 그런가 일단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생각해 보지요. 또 한군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디를 가보시느냐면 데살로니전서 5장을 나옵니다. 12절-거기 “다스리며” 라는 말이 다시 한번 나오지요. 또 하나 뭐가 나오느냐면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권하는 자들”, 권면 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뭐하시는 분들이냐 다스리고 그 다음에 권면 하시는 자들이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군데를 찾으시는데요 히 13장:7절,-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어떻게 하던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인도하던 자들”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장로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아,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장로님들이 뭐하는 존재인가 성경 가운데는 뭐하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다스리도록 했다고 했고, 그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다는 이야기이지요. 또 사람들을 권면 하도록 했습니다. 세번째는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이 세 가지만 중심으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해 보십시다. 사실상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 하나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분은 사실상 누구시냐 하면 우리의 왕되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시요, 하나님이 시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러니까 이것을 아주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다 뭐하는 사람들이냐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나간다. 받아 나가는데 억지로 받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해 가지고서는 내가 받아 나가겠습니다, 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신단 말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내가 원해서 자원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정말 기뻐서 말이죠 하나님이 다스리는 대로 다스림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다스림을 받아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와서 우선 나라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자, 그러고 나온 사람들이라 그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안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있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가 사실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속에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속에 우리 스스로의 의식, 아까 우리가 유기체로서의 우리 자신들을 생각 했습니다. 유기체인 우리 교회의 머리가 누구 시라고요 예수 그리스도 시잖아요. 우리가 맨 처음에 이 교회론을 시작하면서 이야기했었습니다. 머리가 수뇌부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다 쫓아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원하는 대로 쫓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이 원한다고 쫓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새로운 새신자가 원한다고 쫓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분이 원하는 대로 모두가 협력해서 그분을 쫓아 나가는 거란 말이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일을 원하여서 다 힘을 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다스려 나가시는데 친히 다스리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느냐면 사람들을 우리 가운데 세우셔서 간접적으로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그 마음을 잘 두셔야 한다는 말이죠. 물론 교회가 맨 처음에 시작될 때에 이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 몇 명 믿는데 그 중에 장로님이 있을 수는 없죠 물론 장로님이 파송을 받아서 어느 지역에서 교회를 하는 경우에는 거기 장로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신앙이 어리고 그래도, 그러나 정상적인 경우라면 맨 처음에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는 장로님이 있을 수가 없죠 모든 교인들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따라 내가 정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나가고 하나님의 권하심을 받아 나가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그것을 받아 나가게 되면 이제 실제로 그 공동체 가운데서 정말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나가는 사람, 하나님의 권하심을 그가 받아 나가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는 사람을 주님께서 세우셔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성도들을 또 다스리고 권면하고 인도하게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장로가 되신 분들, 장로는 대개 두 종류의 장로를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나중에 이것을 떼어서 생각할 것인데요, 하나는 교회에서 강도를 하는 장로가 있습니다. 강도를 하다니, 어디 뭐 강도질을 한다는 건가, 요즘에 이제 그런 사람들이 있죠. 그게 누구냐 하면 목사님들입니다. 가끔가다가 그런 목사님들이 있죠. 교인들을 등쳐먹는 사람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정말 나쁜 의미에서 강도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강도를 한다는 말은 옛날에 설교를 한다는 말을 강도를 한다고 했죠 강설할 때의 강자에다가 또는 도리라고 하는 기독교의 도리를 강도 하시는 분, 그래서 목사님이 되기 전에 우리가 강도사가 된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설교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실습 삼아서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입니다. 운전을 할려면 면허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목사가 되는 사람들을 강도 하는 장로라고 그러고 또, 한 종류의 장로님이 있습니다. 이 장로님들이 다 어떤 분들이어야 하느냐, 원칙적으로 따진다면 본인 스스로가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잘 받아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면 하심을 잘 받아 나가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나가야 된다는 말이죠. 여러분들이 이것을 잘 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음 주에 더 보시겠지만 우리 가운데 이제 누군가를 장로로 세울 때 우리는 그것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잘 받아 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권면 하심을 잘 잘해 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나가고 있는가 그렇게 하지도 않는 사람을 목사로 세워 놓으면 그게 되겠어요.안되잖아요 그죠 그런 교회는 목사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안 받아 나가니까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안 받아 나가겠지요. 그래서 요즘에 제가 반성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잘 받아 나가고 있는가 설교는 매주일 하긴 하는게 그거하고 나 사는 것 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러면 왜 그래요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잘 안 받아 나가고 있는가 그 생각을 깊이 하게 됩니다. 목사님들이 간혹 가다 하는 말에 박영선 목사님이 그런 말을 하셨는데, 자기가 뺀질 뺀질 했었대요. 뺀질이 목사가 있으며는 교인들도 다 뺀질뺀질 하대요 우리 교회도 상황이 그렇게 되면 어지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이런 분들이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 즉 장로님들로 세움을 입어서 우리가 그분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과 권면 하심을 받아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사람들이 이것이 참 어려운 것이죠. 사람들이 인도하는 대로 다스림을 받는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칼빈 선생님은 왜 그렇게 하게끔 하셨는가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그냥 인도해 나가셔도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해 나가셔도 되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세우셔서 우리를 가르치도록 사람들을 세우셔서 우리를 인도하게 하고 권면 하도록 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맨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진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하시니까요 그게 마치 우뢰가 우는소리처럼 막 하니까 백성들이 감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냐면 아, 하나님, 하나님이 제발 직접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하고 거꾸로죠,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해 드려야 돼요. 그걸 존중해 드리지 않고, 하나님, 나는 괜찮으니까 나한테는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안됩니다. 그래서 직접 말씀하시지 마시고 누군가를 세워서, 그때 세움을 받는 사람이 모세였죠.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청원했습니다. 그런 전통이 이제 계속되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세워서 우리를 다스리고 권면 하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요한 칼빈 선생이 생각 하다가, 주님께서 그것은 우리에게 겸손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고 이야기합니다. 그것 아주 중요한 말씀이죠. 아, 우리를 겸손하게, 하나님의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보다 누군가 한 사람을 통해서 또는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서 가르침을 받게 하셨다, 하는 것이 우리로 겸손하게, 아, 나는 하나님의 직접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다 이게 아니라 아, 겸손하게 사람의 말을 통하여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이죠. 아, 그렇구나, 그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정말 겸손하게 하도록 하는 시금석이라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 가운데서 만일에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교회에 장로님들이 되신 분이 있으면 그런 분들은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냐면 이게 내 말로 내가 인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것이 주님의 뜻으로 잘 인도해 내야 할 내가 책임을 맡았다는 말이지요. 목사님과 장로님, 장로님들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교회를 정말 교회답게 주림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바로 그 책임을 맡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것에 근거해서 권면을 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지혜나 이런 것이 근거가 되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 성경의 중요 귀중한 교훈을 중요시해서 그 교훈에 따라서 모든 인들을 해 나갈려고 힘을 쓸려고 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장로님들께서 주님의 귀하신 교훈에 따라서 잘 인도해 나가시면 모든 성도들은 그런 마음으로 가르침과 그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야 됩니다. 아, 나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데 나는 필요 없습니다, 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주께서 교회 안에 장로를 세웠다, 라고 하는 그 뜻에 대해서 내가 반대해 나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장로가 되신 분들은 정말 내 뜻이 아니고 내 지혜가 아니고 내 경험이 아니고, 그러니까 오랫동안 목회를 많이 해 오시는 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장이 무엇이냐면 “요렇게 요렇게 하니까 되더라”, 그런 생각이예요.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아니고 경험이 기준이죠. 어느 교회에서 요렇게 요렇게 하니까 교회가 워 어떻게 되더라, 그런 거예요 그러면 목사님들이 모일 때는 주로 관심들이 어디에 있느냐면 이것은 좋은 이야기 아닙니다. 목사님들이 어떤데를 찾아 다니느냐 꼭 방법론을 찾아 다닌다는 이야기지요. 그게 안타까와서 우리 이광길 목사님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공부를 하러 갔잖아요 그래서 생각하셔야 된다는 말이예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될까요 맨 처음에 신학교 딱 나오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볼려고 노력을 하죠. 그런데 뭐가 잘 안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아, 어떻게 하면 될까 방법론을 찾는단 말이죠 사람들이 다 뺀질뺀질 거리니까 어떻게 하면 뺀질뺀질 안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저희들의 삶을 다 드리고 이건 정말 교회를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다웁게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게 하는 그 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다 사람들이 찾아 다녀요. 거 신학교를 졸업하시는 분들이 자꾸 그러십니다. 그게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지요 언제나 우리가 이렇게 경험에 의존할려고 하면 안됩니다. 경험이 우리를 인도하게 하면 안됩니다. 물론 경험도 중요한 것입니다 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져서 우리 장로님들이 하시는 일이 장로님들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면 성도들이 정말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는 지를 점검하고 안 그러면 그렇게 살자고 자꾸 권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것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자꾸 그러면 피하게 되죠. 그러지 말고 그 말씀을 아주 존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방법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인 사도행전 20장의 말씀을 잘 생각 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감독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28절 예수님의 피로 사신 것을 하나님의 피로 샀다 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하나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써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그렇게 이야기했던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의 피를 누구의 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곧 누구라는 이야기 입니까 하나님이라는 이야기지요. 아, 그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요 아니요 그게 다 아는 것 같은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옛날서부터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잘 인정을 안할려고 해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꾸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대표적인 사람들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29절 보세요--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교회 안에 이리가 들어온다니, 비유적인 말이지요 이리 같은 존재가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양떼는 성도들을 이야기하지요 성도들을 아끼지 아니한다고 했어요. 그게 어떻게 하는 사람들이에요 30절 보세요__교회를 이상한데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지리라는 거예요 거짓 선지자들, 거짓된 사람들이 나타날 줄을 안다. 지금 우리가 행전 20장 30절을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흉악한 이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나타날까 봐 교회의 장로들을 세워서 그 사람들이 온 교회를 치게끔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정상적인 궤도에서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이 장로님들이 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무슨 일이냐 하면 혹시 우리 가운데서 잘못된 교훈을 하는 사람들, 그러면 생활을 잘못 해 나가는 사람들, 어그러진 길로 나가는 사람들을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다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죠. 나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쁜 이야기하면 좋아 할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이 신경이 많이 쓰여지는 것이죠 사람들한테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말을 해야 되나 그래서 말을 잘 지혜롭게 해야 되겠지만 혹시 우리들한테 어떻게 어떻게 하십시오, 라고 권면이 들어오게 되면 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생각해서 우리에게 전하여진 말인 줄 알고 우리가 그것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진짜로는 주님의 통치를 안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장로님들을 세우신다 이런 사실을 잘 생각 하시면서 우리가 또 때가 되면 우리들 가운데서 정말 오늘 말씀 드린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들 가운데 장로님들을 세우셔서 또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잘 다스리도록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협력하여서 주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아가 333쪽을 뭘 끼어 놓으시라고 그랬지요 여기 장로님과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것을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살전 5:12절이죠 “형제들아”--형제들은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교회 장로님들을 너희가 알고 그랬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알아주고” 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알아주는 거예요. 아, 저분들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저러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주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13절 보면 저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나아가게 될 때 화목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안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각기 자기 주장을 하고 나가면 안되게끔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 그것을 잘 제시함으로써 그 뜻을 향하여 나감으로써 화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 화목하면서 이루어 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가 14절, 여기 규모 없다고 하는 것은 생활을 질서 없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고는 하는데 생활을 질서 없게 삽니다.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장로님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온 성도들이 그 뜻을 받들어서 해 나가게 끔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다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들려야 하는데 예배를 같이 안 드려 나간다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권면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린 사람 다웁게 살도록 특별히 권면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어떻게 되어 나가기가 쉬우냐 하면 예배 드리게끔 하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생활하게끔 하는 데에는 우리가 신경들을 많이들 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신경을 못끄는데 있어요 사실은 교회는 무엇을 위하는 존재냐면 기본적으로는 주님께 예배하는 것이지마는 예배한 다음에는 이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처소에 나가서 자기 사업처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다웁게 살도록 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살면서 질서 없게 생활한다는 말이에요. 규모 없게 생활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 나라 백성 답지 않게 생활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을 잘 권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우리가 생활이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부족해도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규모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나를 열어 놓고 나의 부족한 점을 내어놓고 그것을 고침을 받고, 그래서 우리가 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겠다. 그런 마음을 가져나가야 된다는 말이죠.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 가운데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또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그러니까 두 가지죠. 하나는 권면하고, 그렇게 하라고 그러고, 또 마음이 약한 자들, 외롭게 된 자들은 안위해주고, 그래서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길이 참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길이 참으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안해도 그냥 놔두고 참으라는 것이 아니에요. 할 것은 다하면서 참아 내는 것입니다. 권면 하다 권면 하다 권면 하다 안되니까 신경질 내면 되겠어요 참 그렇게 되기가 쉬워요, 사람들은, 그렇지요 우리가 애들한테 그러쟎아요, 막 야단을 치다가 나중에는 엄마들이 자기가 화가 나 가지고서는 애들한테 야단을 치죠. 신경질을 내면서, 아빠들도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권면하고 하고 하면서 맨 나중에 까지라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것은 장로님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원리에 따라서 생활을 해 나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교회를 다스려 나가시는 방식 중에 아주 귀한 방식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장로님들을 세우셔서 통치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주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때가 되면 장로님들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아, 때가 되었는데도 장로님을 안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장로님들을 세울 때 장로님들은 복수로 세우게끔 되어 있죠. 한 사람만 세우지 아니하고 여러분들이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그런 분들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알고 우리는 그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잘 생각하셔서 우리 교회가 정말 주님께서 통치하시고 주님께서 권면 하시고 주님께서 인도해 나가시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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