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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징의 시행 (디모제전 0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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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 6개월동안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제 한 남은 기간들 어느 정도가 될려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세워진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이 땅위에 새로운 공동체로 세워진 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을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라는 존재로 이 땅 위에 서 있는데 그러한 존재가 과연 어떠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이 생각없이 우리가 있다는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 각자 각자 한 사람이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교회가 이 세상에 세워진 뜻 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을 이 땅 위에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것은 중요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터 교회의 사명을 생각하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좋은데, 잊어버리지 않아야할 말, 이 말만은 잘 기억해 놓으시고, 그게 뭐냐고 하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이 땅위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에게 가져와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기 위해서 이 땅위에있는 공동체이다. 그 말만은 여러분이 생각해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시한다, 증시한다는 것은 나타내보인다 그런 뜻이죠. 하나님나라 즉, 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막연하게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고, 성경에서 가르쳐 준 바를 잘 따라가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습니다. 영적인 실체가 우리에게 임하여 왔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에게 임하여 왔다는 그것을 이 땅위에 찬연하게 그 빛을 비추어 보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는 공동체가 바로 이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확연하게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천국과 교회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잘 나타나지게 되어집니다.
흔히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우리 예수를 믿으면 나중에 언젠가는 천국에 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게 될 것인데 그전에 우리가 임시로 정거장 처럼 있는데가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성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가 않습니다. 죽은 다음에 천국 간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천국은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애매하시면 이제 또 주일마다 공부를 해 보셔야죠. 그러니까 성경에 가르쳐주신 바에 의하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확연하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관으로서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공동체란 말입니다. 이것을 좀 더 다른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너한테 이렇게 쓴 이유는 내가 너한테 아주 빨리 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을때 마음 속에 간절히 원하는게 빨리 가서 보기를 원하는게 있지 않습니까 바울 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성도들하고 오래 떨어져 있고, 오래 떨어져 있고,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하고 오래 떨어져 있으니까, 여 이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을 가서 친히 보기를 원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가 편지를 쓰지 않습니까 그 편지가 바로 오늘 읽은 디모데전서, 첫번째 편지인데 그 중에서 바울이 뭐라고 하느냐면 내가 직접 가서 보기를 원하지만 만일에 내가 좀 늦어지게 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집, 이게 뭘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하고 좀 같은 걸까 그것을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집, 하면 아 ! 그러면 예수 믿는사람이 매주인 예배할려고 모이는 예배당이 있는데 이게 하나님의 집인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한 번 보시죠. 하나님의 집은 15절에 보시면 “이 집이 하나님의 교회다” 그러니까 그 말은 거꾸로 들오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아, 교회라고 하는 것을 여기라고 생각하고서는 요것이 하나님의 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교회 그러며는 이 건물이 없어도 우리가 보는 예배당은 없어도 교회는 있다고 그랬지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이 장로님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예배 할 처소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예배당은 없죠 건물은 없죠 그러나 성도들이 같이 모이니까 그 성4도들이 모이는 그 모임, 또는 이 성도들이 각기 흩어져서 자기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성도로서 사는 사람으로서 마음 속에 의식을 갖고 살아 있는 공동체, 그것을 갖다 우리는 교회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동체가 뭐예요 바로 성경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댁에서 생활하시면서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성도로 있으면 교회의 지체로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입니다. 꼭 여기에 와야지만 나는 하나님의 집에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이예요. 그로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에 와 있는 것은, 즉 교회와 관련해서 사는 것은 여기 오실 때에만 관련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오시는 주일이든지 수요일이든지 아니면 우리 청년들 같으면 토요일 저녁이라든지 그러한 때에만이 아니고 내가 가서 집에서 생활할 때에나 나는 언제나 어디에 있는 겁니까 하나님의 집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독특한 존재에 대한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하도록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 편지를 썼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집에 일원으로서, 그러니까 이 집이라고 하는 것을 가족이라고 바꾸어 놓으면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알기를 원하시면 여러분이 디모데서를 읽어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 오늘 읽은 본문에 그 15절 뒷 부분에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그런 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교회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집,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진리의 기둥과 터 이러한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게 뭐냐면, 이것을 하나의 동상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동상 저 광화문에 있는 이 순신 장군의 동상, 그랬을 때 사람들이 이 동상을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커다란 기둥을 이렇게 딱 만들어 놓고, 거기까지는 아직 동상은 아니죠. 이 존재가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다음에 편편한 어떤 좌대 같은 것을 마련해 놓지 않습니까 그래놓고 그 위에다 이 순신 장군 동상을 해놓는다는 말이죠. 그런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교회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느냐 하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진리라는 것을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있어지는 기둥과 터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성경에 있는 말씀이니까 우리가 이것을 믿고 따르는 것인데, 그럼 교회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있는지가 이 본문 가운데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동상의 경우에 그 동상의 윗 부분에 있는 존재가 드러나기 위해서 기둥도 있는 것이고 터가 있듯이 우리들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진리가 이 땅위에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것을 떠 받치고 있는 존재들이란 말이지요.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기둥과 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느냐 하면 그 위에 있는 존재가 이 세상 사람들한테 보여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죠.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뭐하는 존재들인가 우리가 뭐하자고 호산 교회로 늘 모이는 것일까 호산교회로 모인다는 것은 주일날 또는 수요일 날 저녁에 모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호산교회의 교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존재자체 그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째서 호산교회의 교인이라는 의식을 늘 가지면서 사는 것일까 왜 그렇습니까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 외에 다른 사명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진리가 이 땅 위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둥 노릇을 하는 것이고 터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마음 속에 생각되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확한데,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하는 것은 명확한데, 그렇다면 드러나야 할 지리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합시다. 지금 세대가 어떤 세대가 되어 있느냐 하면 사람들을 아주 중요시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존중하는 정신을 흔히 뭐라고 하느냐면 인도주의적 정신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같은 것을 하면 막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요즘도 6.25에 가까우니까 그것에 대한 고발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가 사람을 존중하는 생각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존중하는 생각이 좋은생각이기는 한데 이것이 높아지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어지기까지 하느냐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고귀한 것이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 그런 생각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거기까지도 객관적으로는 좋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 어떤 것 이 노트가 있다면 이 노트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노트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지 아니지 않습니까 마이크가 있다면 이 마이크는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서도 여러분들에게 잘 전할 수 있도록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거죠 그래서 좋은건데, 나중에는 요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이 좋은게 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생각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런 생각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하긴 중요한데 그 생각이 너무 중요하게 되어서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세상에 아주 만연해 보여서 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결국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으 누이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한테 잘해주시고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거죠.
옛날에 어떤 연극을 보니까 연극 속에서 이제 풍자를 하는데 하나님을 풍자합니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실거예요. 그게 그의 직업이니까요. 하나님의 직업은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니까 우리를 용서하실 거예요. 이렇게 되어 지면 뭐가 중요시 되어지느냐면 하나님이고 뭐고 다 쓸데 없고 인간이 중요시 되어 집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교회안에도 그대로 들어 오기가 쉽습니다. 교회라는 것도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서로 어떻게 조화롭도록 잘 살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간혹 우리가 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이 넓다고 하시는 분들, 마음이 좋거나 마음이 넓은 사람이 흔히 하시는 말씀이 그렇지, 누구든지 종교는 하나 가져야지, 다 사람이 잘 살자고 하는 것인데 누구든지 종교는 하나 가져야 될 것이 아닌가 마음이 넓다고 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이 세상에,있는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교회 안에도 있어 가지고서는 그것이 주도적이 되어 버리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부를 수 있는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중심이 되어서 우리가 높아져야 할 존재가 아니고 이 세상안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가 현현되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벌써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이 좀 기분 나쁘기 시작하지 않아요 아니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좀 괜찮은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니 그게 과연 그럴까 그럼 내가 예수 믿는 것, 이것 좀 고려 해봐야 하겠다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인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교회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사람들이 여기에서 좋아지고 여기에서 높임을 받고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거라면 이것하지 말고 우리가 다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편안하게 살아야죠. 그런데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위에 현저하게 증시되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 속에 뼈저리게 있어야만, 그래야만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지게 되어지면 우리는 그 다음서 부터는 무엇이 생각되어 지느냐면 우리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비위를 맞추고 사람들을 좋게 해 주고, 하는데로 이제 흘러가 버립니다. 그런 형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이제 다음서 부터는 하나 하나 생각하면서 가 볼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되어져 가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을 해 보십시요. 요즘 시대에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위해서 다 해야죠. 그런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오겠습니까 이것이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안 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여기 있을 수 있도록 존재해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이 다 가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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