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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당한 성도 (딤전 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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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 지구상엔 전쟁과 싸움이 그친 적이 없었습니다. 적게는 가정불화로부터 크게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항상 싸움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전쟁이나 싸움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폭력으로 상대방을 굴복시켜서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이 전쟁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전쟁이나 싸움은 그것 자체가 악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짓밟고 그것을 얻게된다면 결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하는 법입니다. 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폭력으로 제압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 중엔 우리를 향해 싸우라는 「싸움」이 있습니다. 싸움 자체가 지니는 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싸움이 있습니다. 그 싸움은 오히려 선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요구하고 있는 “선한 싸움”입니다. 이 세상의 싸움과 믿음의 선한 싸움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 다. 그 중 네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싸움과 선한 싸움의 다른 점은 싸움의 대상입니다. 세상의 싸움은 그 대상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와 자식까지도 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의 대상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육신」과 세상의 풍조와 공중권세 잡은 자인 “사단”을 싸움의 대상으로 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싸우고 씨름한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계속 사기꾼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굴복한 자로서 살 것인가의 싸움이었습니다. 둘째, 싸움의 목표입니다. 세상싸움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세상싸움은 명예 물질 또는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죽기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의 목표는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죽이고 쳐서 복종케 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세상싸움을 하거나 선한 싸움을 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싸워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즉 혈과 육을 위해 싸우든지 혈과 육을 죽이기 위해 싸우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셋째, 싸움 도구의 차이점입니다. 세상의 싸움은 권모와 술수와 중상 모략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은 믿음이 싸움의 도구입니다. 기도가 도구이며 말씀이 도구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많고 힘이 센 사람도 선한 싸움을 위해서는 겸손히 무릎꿇고 엎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세상의 싸움은 결국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집니다. 싸움에 진 사람은 패배자가 되어 굴욕을 당하고 낙오자가 됩니다. 승리한 자 역시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리자 뒤에는 패배로 인해 울고있는 쓰라림과 비참함이 있고 아무리 화려한 승리라고 해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의 실패와 패배를 딛고 올라선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에서의 승리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나 자신만의 승리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승리가 있고 하나님을 위한 승리가 있습니다. 선한 싸움은 혈과 육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혈과 육을 대적하고 죽이기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어떤 싸움을 할 것인가요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기왕 싸울 바에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원 한승리자가 돼야합니다.

2. 선한 싸움의 목표
싸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했고 에베소서 6:13에서는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싸워야 합니까 그것은 싸워서 이기고 서기 위해서입니다. 지는 자는 무릎 꿇고 땅에 엎드려야 하지만 이기는 자는 꼿꼿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싸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싸우고 이긴 사람은 반드시 전리품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한때 해지는 곳이 없다던 영국이 세계 도처의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쟁에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36년 동안 온갖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영적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영생이라는 전리품을 얻게 되지만 이 싸움에서 지면 생명도 빼앗기고 행복도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맙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생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4:24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미루어 마귀가 얼마나 영생을 방해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택하신 자를 미혹한다는 것은 이미 택함 받고 영생 얻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최후 발악을 해서 미혹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생의 방해꾼과 싸우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방해하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적진 깊숙이 공을 몰고 들어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상대편 선수들의 방해를 차단하고 아군을 도와 주는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싸움을 하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이며 그 영생을 방해하는 원수를 막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군 분투만으로는 안됩니다. 신앙의 전투는 함께 싸워야 합니다. 개인기가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게임에서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신앙이 제아무리 훌륭하고 강하다고 해도 함께 싸울 줄 모르면 그것은 독불 장군에 불과합니다. 함께 숨쉬고 함께 손잡고 함께 싸우는 협력과 협동이 중요합니다.

3.어떻게 싸워야 합니가
본문 11절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고 했고 에베소서 6:11에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17절을 보면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믿음의 방패를 가지고……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어떤 전략 연구 전문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병사들의 정신력(사기)과 화력 즉 병기라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최신예 병기와 화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신 무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길 수 없고 제아무리 정신 무장이 철저하다고 하더라도 맨주먹으로 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크메르나 월남이 공산화 된 것은 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바울이 본문 11절과 에베소서 6:11 이하에서 밝힌 싸움의 방법은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할 것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그 힘으로 싸워 이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와의 싸움에서 지면 나는 다른 사람과 싸울 수 없고 마귀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나자신 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가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린도전서 9:27에서 말한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남을 꺾는 것보다 내 고집 꺾기가 더 어렵고 내 버릇 고치기가 더 힘들고 내 마음 다스리기가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평천하(平天下)는 수신(修身)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옛말은 옳은 말입니다.

4.그러면 어떻게 나를 이기고 적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싸움의 방법(11절)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대상은 마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을 죄악으로 넘어뜨립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6:11에서 그것을 “마귀의 궤계”라고 했고 6:12을 보면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싸움의 대상이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중요성은 바울 사도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이 싸움의 구체적인 방법과 승리의 방법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피할 것과 좇을 것입니다. 내 욕심과 내 정욕과 내 혈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사탄의 정체 역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강하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주경가 베이커는 “사탄은 바로 우리 집안에 우리 자신 곁에 가까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사탄을 지지하는 강한 세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나를 이길 수 없고 사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신 갑주로 무장하라”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고 승리의 찬송을 부르려면 내가 지금까지 무기로 생각했던 것을, 이것만 있으면 만사가 다 성공이고 형통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일단 벗어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낡고 힘없는 무기는 내려놓고 최신예 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그 능력으로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귀신 들려 발작하는 젊은이를 장정 여덟 사람이 달려들어 말렸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장로님 한 분이 성경을 손에 들고 그 옆으로 다가가자 귀신 들린 청년은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바로 그 힘으로 우리가 무장해야 선한 싸움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힘은 곧 하나님의 힘이며 믿음으로 받는 힘인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 그 힘을 주시옵소서. 싸움에는 대상이 있고, 싸워야 할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싸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했고 에베소서 6:13에서는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싸워야 합니까 그것은 싸워서 이기고 서기 위해서입니다. 지는 자는 무릎 꿇고 땅에 엎드려야 하지만 이기는 자는 꼿꼿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싸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싸우고 이긴 사람은 반드시 전리품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한때 해지는 곳이 없다던 영국이 세계 도처의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쟁에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36년 동안 온갖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영적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싸움에서이기면 영생이라는 전리품을 얻게 되지만 이 싸움에서 지면 생명도 빼앗기고 행복도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맙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생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4:24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미루어 마귀가 얼마나 영생을 방해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택하신 자를 미혹한다는 것은 이미 택함 받고 영생 얻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최후 발악을 해서 미혹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생의 방해꾼과 싸우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방해하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영적 싸움을 하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이며 그 영생을 방해하는 원수를 막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군분투 만으로는 안됩니다. 신앙의 전투는 함께 싸워야 합니다. 개인기가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게임에서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신앙이 제아무리 훌륭하고 강하다고 해도 함께 싸울 줄 모르면 그것은 독불장군에 불과합니다. 함께 숨쉬고 함께 손잡고 함께 싸우는 협력과 협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전투는 전 교회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5.믿음의 선한 싸움은 영생을 누릴 때까지입니다.
취해야 할 이것이 바로 영생인데 이 땅에서 실컷 수고해놓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정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론 이것은 우리가 이미 얻은 영생이 취소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이미 얻었다고 여기지 말고 더욱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취하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얻거나 소유한다는 의미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영생을 견고하게 붙잡고 누리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싸워서 얻고 그 얻은 영생을 누리고 즐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이 명령을 지켜야한다"고 1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앙적 열심과 순수성이 한 순간에 그쳐서는 안되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즉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열심과 순수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삶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당하여 피할 것은 피하고 좇을 것은 좇으면서 최후 승리를 맞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특권적 신분을 각 성시키고 거룩한 사명을 일깨워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한 증거를 설파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마음의 귀를 기울여 이 부르심을 들으며 항상 새로워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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