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부활1 (빌 03:10-12)

첨부 1


오늘은 세계에 있는 교회들이 부활주일로 지키는 주일인데, 오늘 이 시간에는 부활에 대하여 간단하게 증거코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사도들 중에서도 신앙이 뛰어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표본적 인물인데,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흠 없는 성령의 사람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성경을 기록한 사도로서만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의 사람으로, 참 사람의 표본으로 계시기관으로 나타내시고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표본적 인물로 정하여 “믿음의 조상이라” 고 말씀하신것과같이, 이 사도바울도 성령의 사람의 표본으로 삼아서 우리 믿는 성도에게 나타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신앙사상과 신앙행위를, 사도바울 개인의 신앙사상과 행위로만 볼 것이 아니고, 성령의 사람 참 사람의 신앙사상과 신앙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성령의 사람의 신앙사상과 신앙행위가 어떤 것임을 믿는 성도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신앙사상과 행위는, 기독 자로서 흠없는 신앙사상이요, 신앙행위요, 우리믿는사람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1절이 하에 보면, 사도바울은 자기가 과거에는 세상에 있는 세상 것에게 소망을 두고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는 세상에 있는 세상 것에게 가졌던 소망을 다버리고 예수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7절 이하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일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부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함이라” 고 말씀하셨는데,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한 분에게 소망을 가지고, 다른 것에는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 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가졌고, 다른 것에게는 소망을 가지지 아니했는데, 이것이 성령의 사람의 표본입니다. 우리믿는성도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과거에 그리스도를 알 기전에는,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또 노력해서 부족함이 없도록 갖추어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당시의 강대국인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었고 문화로서는 최고로 발달된 위치에서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알고 나 후에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셋째로 사도바울은, 자기가 접촉하고있는 세상 것에서 그리스도를 수입하는 것만을 자기 수입으로 삼고, 접촉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만 수입하였지 다른 것은 수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수입을 가진 것 외에는 전부 배설물로 찌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이 세 가지가 성령의 사람의 신앙사상이요, 신앙행위로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할 우리 믿는 성도는 이 세 가지를 표본으로 삼고서 갖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은 그리스도한분을 소망하고, 노력은 그리스도만을 취하는 노력을 하고, 수입은 세상 것 접촉에서 그리스도만을 수입하는 것을 자기의 수입으로 삼고, 그리스도 수입을 한 그 외에 것은 전부 배설물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가 무엇이기에, 그리스도가 무엇이기에, 그리스도 한 분을 소망하는 것을 자기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그리스도 한 분을 취하는 것을 자기의 유일한 노력으로 삼고, 그리스도 한 분만을 수입하는 것을 자기의 유일한 수입으로 삼았는가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이라는 뜻인데,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장립받고, 제사장 선지다 왕의 직책을 가지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소망을 가졌다” 라고 말한 것은 무슨말인고하니, “제사장 선지자 왕의 소망을 가졌다” 고하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다” 라고 말한 것은,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고하는 말입니다. 또 “세상 것 접촉에서, 그리스도만을 알맹이로 수입하고 나머지는 찌기로 여겨서 버렸다” 고말한 것은 “세상 것 접촉에서, 그리스도만을 알맹이로 수입하고 나머지는 찌기로 여겨서 버렸다” 고 말한 것은 “세상 것 접촉에서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는 이것만을 자기 수입으로 삼고 다른 것은 수입으로 삼지아니했다” 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제사장 선지자 왕이 무엇이기에, 귀중히 여기고서 여기에만 소망을 두고, 이것만을 위하여 노력하고 세상 것을 상대하고 접촉하여 사는, 이 생활에서 이것만을 수입으로 삼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제사장의 나라요 제사장이 그 나라의 백성이요, 또 하나님의 나라는 선지자의 나라요, 선지자가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왕의 나라요 왕이 그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기전 영원 전에 그리스도로 계셨는데, 이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분이 예수님이시요 구주이십니다.

그러면 “영원 전에 그리스도로 계셨다” 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직책을 가지신 것 가운데에 “그리스도 직책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셨다” 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직책, 곧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고 이름하셨는데, 이 직책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직책을 이행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이 분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이행하시기 위하여 30여년동안 사적인 생활을 하셨고, 또 3년수개월동안은 공적인 생활을 하셨으며 마지막엔 십자가위에서 못 박혀 죽으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 가지 직책을 이행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사생활 30년 공생활 3년수개월, 십자가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 삼일만에 부활하심의 노력과 충성과 희생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 세 가지 직책을 완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이렇게 감당하셔서 택함을 입은 우리로 하여금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계대자가 된 것입니다. 첫 열매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다음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원형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시고, 이행하시기 위하여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시고 공사생활을 하시고 십자가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이 공로로 말미암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생겨졌습니다. 요한 복음 12장24절에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모형적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겨지게 되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이된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고, 이행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낮아졌으며 가난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공사생활을 하셨으며, 어떻게 당신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투자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어떻게 부활하시므로 그리스도직을 감당하시고 이행하셨는지” 이것을 표본으로 삼고서,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직을 얻고, 또 그리스도에게서 얻은 그리스도직을 모든 사람과 만물들에게 대하여 이행할 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의 제물로 투자하셔서 그리스도직을 완전히 이행하심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희생의 제물로 투자하여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므로 그리스도인의 실력을 양성하고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에 우리의 노력인데,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제사장 서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하므로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됩니다. 첫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신 이분이 그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여 완전히 이행하심과 같이, 이분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선지자 왕이된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다들이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다 감당하게 되고 이행하게 되고,

또 우리가 이렇게 가망하고 이행하므로 말미암아 많은 제사장이 생겨지고 선지자가 생겨지고 왕이 생겨지고, 또 그들이 이렇게 감당하고 이행하므로 말미암아 많은 제사장이 생겨지고 선지자가 생겨지고 왕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사장 선지자 왕이된자들이 영원세계에 가서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영생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생애는 제사장 생애요, 선지자 생애요, 왕의 생애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나라를 우리의 영원한 나라로 유업으로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무궁한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력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누구에게 대하여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을 하게 되는 것인가 모든 이웃에게 대하여 서로가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을 하게되고, 여기서 넘쳐 흘려서 영계에 있는 영물과 물질계에 있는 만물들에게 대하여 낮고 높은 순위대로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을 하게 되는 것인데, 하늘 나라의 생애는 제사장생애요 선지자 생애요 왕의 생애요, 하늘나라의 실력은 제사장실력이요 선지자실력이요 왕의실력인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는데 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투자해야하고, 또 다투자하되 깨끗하지 못한 것이 섞여있다고하면 안되기 때문에, 먼저 깨끗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참되게 정비 정돈하여 간추리고 그 다음에 간추린 이것을 다투자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투자할때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고 이행하게 되고, 또 자기가 이 세 가지 직분을 이행하므로 인하여 많은 제사장이 생겨지고 선지자가 생겨지고 왕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일 위를 이루신 분으로서, 예수님의 인성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인데, 예수님의 인성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것은 무엇을 말하는것인고하니, 예수님의 인성의 자체와 소유, 이 전부를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고 이행하는데 에 다투자하신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것인고하니, 예수님께서 인성자체와 소유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투자하셔서 세 가지직분을 감당하시고 이행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셔서, 다투자하여 세가지직책을 완전히 이행한 예수님의 인성에게 대하여 승격시켜주신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세 가지 직분을 영원히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예수님의 인성을 영원토록 투자하고 투자해도 없어지지 않고 줄어지지 않고, 예수님의 인성을 계속해서 영원토록 투자해도 모자람이 없는, 무한한 것으로 승격시켜주신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처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인성의 유한한 모든 것을 세가지직분을 감당하는데 에 다 투자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투자하신 예수님에게 “네가 작고적은것으로 충성하였으니, 크고 많은 것으로 네게 주겠고, 네가 때를 따라서 맡은 식구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었으니 네게 모든 것을 전부 주겠다.” 라고 약속하신 이 약속이 임하여 이루어진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성의 유한한 것을, 세가지직분을 이행하는데 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투자하였을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이제는 세 가지 직분을 영원히 감당하는데 에 있어서. 투자하고 투자해도 영원토록 투자할것이있는 무한한 것으로 변화시켜서, 무한한 투자의 자본으로 승격시켜주신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하시기 위하여 인성을 가져 사람되어 오셨고, 이 신성과 인성이 일 위가 되어져서 세가지직분을 감당하실 때에, 영원 전에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그대로 신성이 인성을 붙드시고, 세가지직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성이 영원 전에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대로 33년 수개월동안 인성을 붙드시고 세가지직분을 감당하실 때에, 이 인성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모든피조물사이에 중보자인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는데 에 있어서, 하나도 아낌없이 아무런 지체없이 단 마음으로 남김없이 투자하시고, 아무런 흠없이 투자하셨을 때, 영원전 계획과 준비로 함께 하신 신성이, 이것을 심히 기쁘게 여기시고, 이제는 영원히 투자하고 투자해도 모자람이 없는 무한한 인성으로 성화 시키고 승격시켜서, 인성과 영원히 함께 하여 인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피조물사이에서 영원히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게 하시므로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토록 제사장 선지자 왕의 혜택을 입혀서 피조물로 하여금, 제사장 선지자 왕의 본질과 본성으로 영생하고 활동하고 작용하고 역사하는것으로 영생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사람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고난이요, 부활하신 것은 영광이라” 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석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인생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것이요,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이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 것이요, 고난 끝에 평안히 온 것이라” 고 생각하고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서는 슬픔으로 맞이하고 부활에 대하여서는 기쁨으로 맞이하고 부활에 대하여서는 기쁨으로 맞이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기독 자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믿는생활 신앙생활을 하면, 고난에 고난이 겹쳐서 최종적인 고난은 순교라, 십자가의 죽음이라, 이것으로서 수고와 고생과 고난은 끝이 났고, 그 다음에는 부활의 영광과 평강이있다” 라고 이렇게 십자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순종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으로 투자하는 것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하기 위함이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제사장 선지자 왕의 혜택을 입혀주기 위함인데,“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이 나고, 그 다음에는 평강이있다” 라고생각하는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나, 성도가 순교당하는것은, 유한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모든 존재를 위하여 희생으로 투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쁘게 여겨서 “네가 네게 있는 유한한 것을 가지고 나의 소원하고 기뻐하는 대로 모든 존재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 아낌없이 희생으로 투자하였으니, 이제는 영원히 투자하고 투자해도 모자람이 없고, 끝이없는것으로 성화시켜주고 승격시켜주겠다” 라고 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요, 믿는 성도의 성화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1차적으로 사랑과 희생으로 승리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이제 유한한 희생을 무한한 희생으로, 유한한 수고를 무한한 수고로, 유한한 봉사를 무한한 봉사로, 유한한 투자를 투자로 바꾸어 주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요 성도의성화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부활은 어떤것인고하니, 우리를 위한 처음수고와 희생 봉사와 투자를, 이제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수고와 희생, 봉사와 투자로 바꾸어 가지고서 출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은, 유한한 희생 이였는데, 이제는 무한한 희생자로서, 영원한 희생자로서, 이 희생을 입고 출발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생과 고난이 다 지나가고, 영광과평강을 가지는 것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고생이 끝나고, 부활로 영광과평강을 가지는 것이라” 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의 소유와몸과생명을 바친다 고해도, 인간의 보기에 그렇다고 하는 것이지, 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바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멸망가운데에 있어서 제사장이 필요한자에게 제사장직을 주어서 감당하게 하고, 선지자직이 필요한자에게 선지자직을 주어서 감당하게 하고, 왕의직이 필요한자에게 왕의직을 주어서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소유와몸과생명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모든 존재에게 대하여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영원한 것으로 승격을 시켜주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유한한 것을 가지고 일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이행하신 것이요,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영원한 것을 가지고 영원토록 세가지직분을 이행하시기로 시작하신 것인데, 우리믿는성도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제사장의 나라요 선지자의 나라요 왕의 나라요 봉사의 나라요 희생의 나라요, 그리고 봉사하고 희생해도 끝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자본을 가진 나라입니다.

본문--빌립보서 3장 10-12절
제목--예수님의 부활(2)

우리믿는사람이 섬기는 예수님은, 신선과 인성이, 한 위를 이루신 분으로서, 참하나님이시요, 참사람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기전, 신성으로 계실 때에, 영계와 우주를 지으셨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셨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 영원토록 그것들의 주인이요, 그것들을 주장하시고, 관리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자시요, 전지전능자시요, 주재주권자시요, 창조주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지혜도 무한하시고, 능력도 무한하시고, 모든 것을 다 가지신분이신데, 이 예수님께서 많은 다른 길을 다 제쳐두고, 유일하게 택하신 길은 어떤것인고하니, 그리스도직을 이행하시는 것으로 죽으시고, 그리스도직을 이행하시는 것으로 부활하시는, 이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것을 가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영원전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홀로 계실 때에, 목적을 정하셨는데, 정하신 목적의 사역이 무엇 인고하니, 그리스도 직분을 이행하는, 그리스도 노릇을 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사역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시고, 섭리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직을 위한 역사였고, 그리스도직을 이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고, 세상에 오신 후에도 그리스도직을 위해서 전부를 기울였고, 그리스도직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로 전부 기울였고, 또 십자가로 전부 기울인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직을 이행하실 자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생애의 뜻과 가치를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서, 자기도 이제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에게 소망을 가지지 아니했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취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아니했고, 모든 것과의 접촉에서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자기의 소득과 수입으로 삼지아니했고, 그리스도만을 소망했고, 그리스도만을 취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세상에 있는 것을 그리그도를 수입하는데 에 이용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이 길을 택하셔서 당신의 길로 삼으셨고,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신후에도, 이 길을 당신의 길로 삼으셨고, 인성이 십자가로 이 길을 끝내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 인성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이제는 인성으로 하여금 영원히그리스도직을 이행할 수가 있도록 승격시키시고,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셔서, 다시 출발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실히 깨달은 성령의 사람, 사도바울은 11절에 “내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한다” 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어찌하든지” 라고하신말씀은, “내가 어떤 순서, 어떤 환경, 어떤 입장을 만나든지 상관없다” 는 말씀이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한다” 라고하신말씀은, “유한한자인 내가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나의 가진 것을 전부 드려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직을 이행하시는데 에, 당신의 소유와몸과생명을 남김없이 전부 드리므로, 하나님의 긍휼로 영원히 그리스도직을 이행할수있는자로 부활하심과 같이, 나도 하나님의 긍휼로 영원히 그리스도직을 대행할수있는자로, 부활시켜주심을 받는 것을 소원한다” 는말씀인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것은 영원성, 완전성, 영생성의것이 아니고, 정죄 아래에 있는 것이요, 저주받은 것이요,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요, 유한한 것이요, 불완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쾌락이나 지위나 권세도 유한한 것이요, 불완전한 것이요, 정죄아래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위하여 투자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세상에 있는 그무엇때문에 허비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사용한 것을, 온전하고 무한하고 신령한 것으로 성화 시키고 영화 시키고, 승격시켜서 영원히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 재료로, 자본으로, 자원으로 사용하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도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이미가지고있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을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다 투자하므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서, 유한하고 불완전한 이것을 영원히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영원히 투자할 수 있는 재료로 자원으로 자본으로 승격시켜주시고, 성화시켜주심을 받으려고, 소원했고, 이것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11절에 보면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한다” 라고말씀하신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전에는 다른 것에게 소망을 가졌지마는, 이제는 그리스도만을 소망했고, 이전에는 다른 것을 마련하느라고 노력했지마는, 이제는 그리스도만을 마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를 접촉할 때에 거기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수입하려고 애를 썼지마는,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것의접촉에서, 근본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의실력을 갖추어서, 사도바울 자기에게 주실 때에 이것을 받고, 또 받은 것을 자기 아닌 모든 이웃에게 이행하여 그리스도의혜택을 입혀주는 이것을 자기수입으로 삼고서, 이것을 수입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를 받고, 또 받은 그리스도로 자기자신이 장성해지고, 또 받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만물접촉에 내포되어있음을 깨닫고서, 이것을 자기수입으로 삼아 가지고 수입하고, 이 것 외에 다른 것은, 알맹이를 위해서 껍데기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주고받는 이것을 위하여 있는, 배설물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이것을 소원하고,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이것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죽은 자 가운데서” 라고 말씀하신 여기에 죽는 것은, 죄를 범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죽고 싶어서 자살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것에 욕심을 가지고 이것을 위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보기에는 죽는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그리스도 직책을 충성되게 이행하기 위해서, 유한하고, 제한되고, 불완전한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드리는 것으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충성되게 이행하시므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긍휼히 여겨서 부활시켜 주심과 같이, 우리믿는사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충성되게 이행하는데 에 투자하면, 하나님께서 투자한 것을 영원성, 완전성, 영생성의 것으로 변화 승격시켜 주셔서,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게 하시는데, 사도바울은 이것을 소원하고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 전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직을 목적으로 정하셨고, 또 이 직책을 영원히 당신의 직책으로 삼으셨고, 또 이 직책 이행을 당신의 사역으로 삼으셨고, 또 이 직책 이행으로 말미암아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 신하여 사람되어 오셨고,

또 사람되어 오시기전, 영원 전에도 이 직책을 이행하는데 에, 당신의 전부를 투자하셨고, 그리고 이 직책을 이행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후에도, 이 직책을 이행하는데 에, 당신의 전부를 투자하셨고, 또 일차적으로 인성을 가지시고 투자하신 것으로 끝내지 않고, 투자하신 후에 영원투자의 인성으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심을 받는 이 길을, 모든길중에서 당신의 길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선택하신 이 직책의 목적과 사역의 가치성과 존귀성과 권위성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직 이 것 외에는 소원이 없었고, 소망이 없었고, 이 것 외에는 취할만한것이없음을 확실히 알았고, 이 것 외에는 수입으로 삼을만한것이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고, 해로 여겼고,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되고, 그리스도를 얻고, 취하고, 또 모든 세상살이 속에는 보배로우신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세상살이는 껍데기요 배설물이요, 그리스도는 알맹이라,

하나님께서 “알맹이신 그리스도를 수입하라” 고, 세상모든것을 사도바울 자기에게 접촉시켜 주신 것임을 깨닫고, 자기의 접촉하는 세상살이라 고하는 이 껍데기 속에 있는, 세상살이라 고하는 보따리속에있는, 그리스도를수입하는이것을 소원하고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가 어떻게 하든 지간에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내게 있는 것을 전부 드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전부 드린 자에게 전부 드린 것을 영원서, 완전성, 불변성, 생명성, 영생성의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변화승격시켜주셔서, 이제는 영원히 그리스도직을 이행할 때에, 그 자본이 모자라지 않는, 그리스도의 실력의 자본가가 되게해주시는것을 원한다“ 고 하신말씀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 사도바울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세상에서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자원으로 다 투자하고, 또 투자한 것으로 끝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의 투자한 것을 영원하고 완전한 것으로 바꾸어주셔서,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직을 감당하게 해주시는 이것을 소망했는데,

믿음의 사람들도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 이것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직을 이행하는데 에 자기전부를 기울였고, 또 그리스도직을 이행하고 감당하므로 말미암아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밀알이 맺게된다” 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계대자가 많이 생겨져서,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있는것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그리스도화 되어서, 그리스도로 충만한 그리스도 나라를 만들고,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노릇을 하는 것으로 자기의 생애로 삼고, 이것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요,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있는 존재들은, 그리스도가 아니지마는, 그리스도와 같은 본질과 본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를 하는 존재들로서,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과 생애로 충만하여 있는 곳이요, 그리스도와 이질된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그리스도와 동질이요, 동성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고, 중생을 입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되다” 고 말씀하셨는데, 믿는 사람이 썩어지고 없어질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직을 감당했으면, 얼마나 어떻게 감당했는지, 이것을 심판하시고, 감당했으면, 얼마나 어떻게 감당했는지, 이것을 심판하시고, 감당한 것에 따라서 영원히 그리스도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상시켜주시는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심판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것인고하니,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노릇을 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자를 만드시는데, “믿는 사람 자신들이 얼마나 그리스도화 되어있느냐” 고하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어있는것, 이것만 남겨놓고, 이 것 외에는 모조리 뺏고 깎아서 유황불 못에 던져버리십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화 된 것만 용납하는 나라요, 세상에서 그리스도 노릇을 하는데 에, 투자한 유한한 것을, 무한하고 신령한 것으로 변화 승격시켜 주시는, 이런 보상을 받는 나라요, 그리고 보상받은 것으로 사는 나라인데, 우리믿는사람의 생활은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생활이요, 하늘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의 생활로서, 우리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인데,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각 행한 대로 갚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어떤 사물이나 인간을 상대하고 접촉할 때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썩을 것만 탐하고 취하지마는, 성령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믿는사람은 모든 것을 접촉하는데서, 양면을 가지는데, 한 면으로는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요, 또한 면으로는 받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한 면으로는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를 받아서 그리스도로 부유해지고, 또한 면으로는 받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들에게 충만케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믿는사람의 양면생애인 것입니다. 우리믿는사람이 어떤 사물을 접촉하든지, 어떤 사람을 접촉하든지, 거기서 그리스도를 받는 일과 주는 일을 해야하는데,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받고 주는 일이요, 이 일만이 우리믿는사람의 자기일 이요, 자기수입입니다.

그런데 우리믿는사람이 이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세상에있는 온갖 것을 바꾸어주십니다. 필요에 따라서 온갖 것을 바꾸어주십니다. 사람들의 보기에 좋은 것도 주시고, 나쁜 것도 주시는데, 우리믿는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주시든 지간에, 거기서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므로 그리스도를 얻고, 주는 일만 할 것뿐입니다.

다시말 하면 하나님은 우리믿는사람을 보시고, 어떤 때는 권세 속에서, 어떤 때는 물 질 속에서, 어떤 때는 가정 속에서, 어떤 때는 원수 속에서, 영감과 진기대로 행하라고 명령하시고, 우리믿는사람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권세 속에서, 가정 속에서, 물질 속에서, 원수 속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행할 때에, 그리스도를 받게되고 주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믿는사람은 자기에게 권세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물질이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고난이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평안이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영광이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매장이라는 껍데기가 왔든지, 어떤 종류의 껍데기가 왔든지, 상관이 없고, 이런 껍데기 속에서 진리와 영감대로 행하므로, 그리스도를 얻고 주는 이것만이 자기수입으로 삼고서, 이것을 위하여 노력해야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의 사상이요, 활동이요, 노력인 것입니다.

본문--히브리서 2장 14-18절
제목--성도가 사망을 이기는 법

오늘은 세계에 있는 기독교에서 “부활절이라” 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를 합니다. “부활이라” 고하는말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것을 말하는데, 이부활은 죽은자에게 있고, 죽지아니한 자에게는 없스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 죽은자들에게만 해당된 말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우에서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기때문에, “부활하셨다” 고말합니다. 그러니까 부활하기전에 먼저 죽어야합니다.

그런데, 죽음에는 몇가지종류가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죽음인데, “일반적인 죽음이라” 고하는것은, 인간으로서는 죽지아니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이 죽음을 “일반적인 죽음이라” 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1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요, 사람들이 제1좋아하고 소원하는것이생명인데, 사람들이 제1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이 사람들에게 오게된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죗값으로 오게된것입니다. 죽음이 오게된 그 원인은 죄값인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있는데, 영은 단일체이기때문에, 단번에 죽었고,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는 육은 종합체이기 때문에 서서히 죽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완전히 죽게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영의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고, 다만 두려워하는 것은 육의 죽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의 죽음에 있어서도 마음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몸의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고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타락하여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제1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원치아니하는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으로서 그 원인은 죄값인것입니다. 죄는 어떤 것인 고하니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것인데,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죽음이 온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죗값으로 온 것입니다.

(2), 특수적인 죽음인데, 이 특수적인 죽음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죽음으로서, 이 특수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한 범죄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도에게 진리에게 순종하는 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을 가리켜서 “특수적인 죽음이라” 고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에 예수님의 모든 것이 쓰여져서 없어진 죽음인데, 몇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네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여 받으심으로 죽으신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뜻에 맞추어서 복종으로 죽으셨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한 죽음은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을 대신하여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에게 순종치못하고 불순종한 것을 대신해서 순종하신 그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또하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므로 다시 결합시키는 이 결합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결합하는 이 결합으로 죽으신 죽음입니다.

또하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털끝만큼이라도 거역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이 완전히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순종의 죽음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시고 “택하신 자들의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여 받음으로 죽으라, 또 택하신 자들의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것을 대신하여 결합하는 이 결합으로 죽으라, 그리하여 네 전부를 내게 순종하는데 에 다 사용하라” 고 명령하실 때에 그 명령에 순종하여 죽으신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세 가지 요구에 응하여 순종으로 완전히 끝난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요구에 응하여 순종하시되, 그 이상 순종할래야 더 순종할 수 잇는 힘도 없고 몸도 없고, 생명도 없고, 영육의 전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영육으로 완전히 끝나신 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의에 죽음이라, 순종의 죽음이라, 특수죽음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런 죽음인 것입니다.

(3), 둘째사망이라고하는 죽음인데, 이 둘재사망은 일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한해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 일반적인 죽음으로 죽어있는자들의 받을 죗값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의가 없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의가 없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의를 가진 의인이 되었고,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서 끊어져있는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결합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법적으로 결합의 새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죽어 있고, 실질적으로도 죽어 있고, 다시 사는 깃이 없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으로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영육이 살았고, 도 영은 죽음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진리와 성령의 역사로 단번에 살아났고 단번에 중생 되었고, 심신으로 되어있는 육은 실질적으로는 죽어있으나 법적으로는 생명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주체인 영은 살아있고 육은 법적으로는 살아있지마는, 그 자체는 아직까지 완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에는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일반인은 생명이 사망으로 기울어져서 생명이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더 사망과 생명의 갈림길을 2차적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기 독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받은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1차사망을 벗어나서 2차적으로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이 순서를 특별히 받았는데, 이것이 우리기 독자들이 예수님의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받은 특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 우리기 독자에게는 둘재사망이 있습니다. 일반인은 첫째사망에서 영원히 사망이 되었고, 우리 기독 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또 주격 적으로 살아 생명에 속하였지만, 심신으로 되어있는 육은 자체가 생명으로 살아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사느냐 죽느냐” 고 하는 이것이 남아있습니다. 다시말 하면 심신으로 되어있는 이 육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받지아니하느냐” 고 하는 이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0-11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아니하리라” 고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사망의 해는 기독자의 심신의 기능사망을 말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의 영은 주격으로서 살았고, 소유격인 육이 “사느냐 죽느냐” 고 하는 이것이 미결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사느냐 죽느냐” 고하는 이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가 있도록 되어있는것이 우리믿는사람의 육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사람은 죄의 사망으로 완전히 죽었고, 우리믿는사람들도 죄의 사망으로 죽은 자였는데, 예수님의 의에 사망으로 설전하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다시 사망과 생명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갈림길이 왔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 특혜요,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우리믿는사람은 죽었던 것이 예수님의 대속공로로 다시 살아났는데, “살아난 이것이 다시 죽느냐, 다시 죽지 아니할 것으로 영생하게 되느냐” 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 앞에 남아있는 걸음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앞에 남아있는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사람의 죽음이 있고 또 예수님의 특수죽음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서 죽은 죽음이요, 예수님의 죽음은 의에 죽음이니, 순종으로 끝난 죽음입니다. 또하나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둘째 죽음인데, 우리믿는사람은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사망을 받은 사람이요, 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에 죽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믿는사람은 이 두 가지 죽음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택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은 일반적인 죽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첫 아담의 죽음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죽음에 관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단계에 있는가 “네가 첫 아담에게 소속해서 첫 아담처럼 죄의 죽음, 불순종의 죽음으로 영원히 죽느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소속해서 예수님처럼 의에 죽음 순종의 죽음으로 영생하느냐” 고하는 이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죽음과 둘째 죽음에 관련된,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자손이된자로서 우리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당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죽음 곧 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또 둘 때 아담이신 예수님의 특수적인 죽음 곧 순종으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의로 말미암아 죽은 죽음, 이 두 가지 죽음에게 관련되어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님의 자손된 우리들이 “오늘에 어떤 죽음을 취할 것인지” 이것으로서 첫 아담에게 소속한 것과 둘째 아담에게 소속한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첫 아담에게 소속해서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이 죄로 말미암아 죽으면, 이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는 것이요,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소속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의로 말미암아 죽으면, 다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 순종으로 끝이 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아니하고 영생하는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는 부활에 대하여 간단하게 증거 하겠습니다. 부활은 순위 적으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제1먼저 부활하셨고, 이제 남은 것은 택자들의 부활과 불택자들의 부활인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일반적인 부활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로 말미암아 죽으신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단신자체와 택하신 자들의 의에 문제 생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말로 하면 당신자신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결합으로 다시는 거역이 없고 죄가 영원히 있을수가없고, 하나님과 끊어짐이 없는, 완전순종 완전결합으로 죽으신 그 죽음에서 3일만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죽음에서 3일만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다 잡으신 죽음입니다. 생명과 사망 생사의 주권을 잡으신 주권 적인 죽음이기 때문에, 껍데기는 죽었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생명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껍데기가 죽은 그 죽음도 의로 끝이나 서 다시는 사망이 해할 수 없는 완전생명으로 끝난 죽음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완전순종으로 끝난 부활입니다. 완전히 의로 끝난 부활입니다. 모든 죄와 사망과 음부를 완전히 이기시고 깨트리신 부활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잡으셨고, 생명의 주권을 가지시고, 심판의 주권을 가지시고 순종으로 말미암은 부활인 것입니다.

(2), 믿는 사람의 부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부활은 심신의 기능부활과 몸의 부활입니다. 심신으로 된 것을 육이라고 말하는데, 마음위치에 속한 것은 그 기능이 부활할 때에 그 자체도 부활하여 마음과 마음의 기능부활은 동시에 되고,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이 몸만 이 세상에 남겨두고 그 마음과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갑니다.

누가복음 16장23절 이하에 보면,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이 음부에 있는 부자와 대화를 하였는데, 대화를 한 그 기관은 영이 아니고, 영이 마음이라고 하는 그 기관을 통하여 심적인 대화를 한 것입니다. 자색 옷을 입은 부자도 음부에 갔는데, 죽은 영이 죽은 마음을 입고 마음의 기능이 죽은 그 대로 음부에 갔습니다.

그런데 “죽은 영이 죽은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다” 고 하는 말은 무슨말인고하니, 자색 옷을 입은 부자의 마음의 기능은 음부에 가서도 그 기능작용은 한마디 말을 하는 것이나 무엇을 소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것이요 자기단독주장대로 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하여 합당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자기단독 주장대로 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죽은 영이 죽은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음부에 갔다”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그 마음의 기능이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의로 살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소원하는 것이나 지식하는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이나 속성을 가지는 것이나 전부가 하나님과 꼭같은것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산영이 이런 마음의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갔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산영이 산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 낙원에 갔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산영이 산 마음과 그 기능을 입고서 낙원에 가는데, 그때에 몸과 그 기능은 세상에 두고 갑니다. 그런데 지금에 부활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는 것은 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기능뿐인데,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마음과 마음의 기능을 구별해서 말한 것이요, 마음은 어떤 물체가 아니고 몸과 같은 물체가 아니고 기능으로서 신비한 물질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몸의 부활을 합해서, 요한 복음 5장29절에는 “생명의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20장6절에는 “첫째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는데, 이 생명의 부활 속에는 마음의 기능부활이 내포되어있고, 몸의 기능부활이 내포되어있고, 몸의 부활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의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염려할 필요도 없고, 다만 마음의 기능부활과 몸의 기능부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서 이 부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노력인 것입니다.

(3), 안 믿는 사람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을 “이방인의 부활이라” 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에 대해서는 요한 복음 5장29절에 보면 “심판의 부활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은 언제 하는고 하니, 믿는 사람의 부활, 곧 생명의 부활이 있은 지 후, 천년왕국후에 전부 부활합니다. 부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유산된 아이든지, 조산된 아이든지, 사람의 형태를 갖춘 것은 다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생명의 부활에 참가하지 아니하면 심판의 부활에 참가하는데, 영생하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을 “생명의 부활이라” 하고, 하나님에게 심판 받아서 영원히 사망하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을 “심판의 부활이라” 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세 가지 종류요, 부활도 세 가지종류입니다. 죽음의 종류에는 죄로 인하여 죽은 일반적인 죽음과 의로 인하여 죽은 순종의 죽음과 또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죽음인데, 우리는 첫 아담에게 속한 자손이요 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속한 자손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냐, 받지 아니하느냐” 고하는 이것이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 아담에게 속하고 연합한자가 되어서 죄를 범하므로 끝나느냐, 이 시간에 사용할 진 액을 죄로 범해서 없애느냐, 당장에 해당된 기능이 죄를 범해서 없어지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둘째 아담에게 속하고 연합한자가 되어서 의를 행하므로 끝나느냐, 이 시간에 사용할 진 액을 의를 행해서 없애느냐, 당장에 해당된 기능이 의를 행해서 없어지느냐” 고하는 것이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한말로 해서 “죄의 사망이냐 의에 사망이냐” 고하는 이것이 우리 앞에 갈림길로 놓여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아담에게 속한 죄의 죽음은 다시는 살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이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의에 죽음은 벌써 살았고 또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부활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죽음 이것을 단단히 명심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부활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 가지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있는 생명의 부활과 불택자들에게 있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고, 없어지는 것으로 없어지는 것을 이기고,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결합으로서, 의에 완성 순종완성 결합완성을 이룬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인 것입니다. 또 택하신 자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도 있고, 이것을 포기하고 생명의 부활을 받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생명의 부활 속에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몸의 부활이 포함되어있고 몸의 기능부활도 포함되어있고 마음의 기능부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기능부활이나 몸의 기능부활은 오늘에 당장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중복적으로 되어지고, 몸의 부활은 예수님 재림 때에 단번에 되어집니다. 우리는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확증하고 단단히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