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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노래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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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하여 부활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활장은 부활에 대하 여 의심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자들 때문에 쓰인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절)까지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의심하는데 대한 답을 주고 있으며, (35-49절)은 죽은 자들이 산 다면 어떻게 살며 어떠한 몸으로 사느냐에 대한 답을 주고, (50절) 이하 오늘 본문은 부활 신앙의 결론으로 죽음을 정복하고 승리한 자의 승리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에게 찢기고 조롱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 시지 않았다면 신앙은 헛것입니다. (고전15:13,14)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 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렇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계기로 확고한 부활신앙으로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활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가 하는 질문은 수세기 동안 신앙인들을 괴롭혀 온 난제입니다. 믿자니 이성이 울고 안 믿자니 믿음이 없는 것 같고. 그 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안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보지는 못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용감함을 믿습니다. 그의 임진왜란 때 활약을 모르 는 사람이 없습니다. 옥포해전, 한산도해전의 승리, 노량해전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역사가들의 증거를 통해 압니다. 또 세종대왕의 숭고한 업적을 믿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훌 륭한 인품을 믿습니다. 모두 만나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만나보고 전해 준 사람들의 역사적 증거를 통해 믿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이들이 증거해 줍니다. (고전15:5-8)에서 부활의 목격자로 베드로, 열 사도, 5백 여명의 제자들 그리고 바울에게까지 나타나셨다고 증거합니다. 한두 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5백 여명이 일시에 본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환상일 수가 없습니다. 복음서에도 목격자들이 많 습니다. 마리아 등 여자들이 보았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제자들 과 음식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부활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만약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면 허구 때문에 죽었단 말이 됩니다. 없는 것, 조작된 것을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 로 같은 이는 주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못 박힐 때만 해도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도망하였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고 그게 조작된 거라면 베드로가 그리 죽을 수 있겠 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힘을 줍니다. (고전15:20,21) "이제 그리스도께 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 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예수님이 부활의 테이프를 끊었으니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부활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얻은 죄를 예수님의 부활 과 함께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활신앙인 힘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부활합니까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의 개 념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이 따로 있습니다. 지상에서도 사람이나 짐승, 새의 육체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라고 다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는 하늘의 형체가 있습니다. 지상의 썩을 몸은 부활의 썩지 않을 몸으로, 육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난다 고 합니다. (고전15:43,44)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 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썩을 몸이 썩은 후에 영원히 있을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신령한 몸을 적절히 표 현하기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몸을 입고 부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는 것, 본 것, 경험한 것을 말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오해가 있기도 합니다. 하물며 아직 경험하지 않은 신령한 몸을 잘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가 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의 제한적인 삶과는 다른 시공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의 몸이 있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도마 같은 이는 만져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육안을 가지고 있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눅23:13-35)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음식을 함께 잡수셨습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몸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몸과 같지 않다는데 우리의 희망이 잇습니다. 아픔이나 죽음이 없습니다. 작고 큰 것 도 없습니다. 잘생기고 못생긴 것도 없습니다. 뚱뚱하여 다이어트할 필요도 없습니다. 얼마 나 희망적입니까 바울이 이 신령한 몸의 신비성에 도취되어 있듯 여러분도 이 신령한 몸을 확신하며 미래지향적인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쁨은 어떻습니까

본문은 사망을 정복한 부활과 승리의 노래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의 무덤이 삶의 벅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어둠이 대낮 같은 밝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희망가를 부릅니다. (55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얼마나 기세 등등합니까 사망이라도 무섭지 않다는 바울 사도의 각오가 서려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울도 한 때는 이렇게 말했던 사람입니다. (롬7:24)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죄의 너울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바울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러던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기에 전혀 다른 신앙의 승전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는 이런 신앙이 나 올 수 없습니다.

 부활을 확신하는 한 신앙인의 이 승전가는 바울의 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 어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 후에 절대적인 사망이 우리를 옥죄었습니다. 그 사망 의 끈을 끊을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 사망의 끈을 끊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15:51-53)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 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 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 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활절 아침, 부활신앙으로 재무장하고 부활의 승전가를 부르며 이 세상에서도 바울처럼 기쁨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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