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 (눅 24:1-10, 고전 15:12-22)

첨부 1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기독교에 두개의 큰 절기가 있다고 하면 성탄절과 부활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탄절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부활절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부활절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있는 절기입니다. 사실은 기독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요, 최고의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말인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일--참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까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문둥병자를 낫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까 다시 말해서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의 아무 것도 안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양파와 같이 껍질을 벗기고 그 속의 어떤 것을 먹으려 하면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어지지만, 통채로 먹으면 그것이 바로 알맹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못 믿는 것은 이미 아무 것도 안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은 참으로 우스운 얘기입니다. 이 넓은 우주공간에서 이 수많은 신비를 과학이 몇 개나 증명하였습니까 어떤 과학자가 이 무한한 우주를 증명하였습니까 태양계가 어디로 움직여 가는지 누가 증명하였습니까 누가 우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었습니까 과학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다 안 것처럼 말하는 것은 참으로 과학을 모르는 사람의 무식의 소치입니다. 현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뉴턴은 '내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은 저 넓은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작은 조개껍질 하나를 줏은 것에 불과하다.'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신비에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부활의 증거를 보면 세 가지입니다.

1) 예수님의 예언 size="2">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이미 십자가에 죽고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여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마태복음19:18-19

2) 빈 무덤

비어있는 무덤이 예수님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묻었던 무덤은 인봉하고 제사장들의 파수군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천사들이 무덤의 돌문을 깨뜨렸을 때에 도망친 파숫군들에게 제사장들이 돈을 주면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선전하게 했다고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28:11-15).

 3) 제자들의 증언 size="2">

사람이 임시변통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그 거짓말을 위해 생명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을 위해서도 생명을 내놓기를 꺼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어찌 거짓을 위해 생명을 걸겠습니까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12제자 모두, 또 120명의 성도들까지도. 예수님의 제자 11명은 모두 이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는데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모두 겁쟁이들이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의리 때문이었을까요 선생님께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까요 그들이 분명히 주님의 부활을 보았기 때문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또 그 증거를 위하여 생명을 바쳤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요, 오히려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도들을 잡으려 다니던 바울 조차도 나중에는 예수부활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2-19

그러나 부활절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기념함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연례행사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만다고 하면 이것은 참다운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절은 부활신앙을 갖는데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는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장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낙심하는 일을 만나도 다시 소망중에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시작하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행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낙심합니다. 실패하고, 실수하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믿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믿음, 낙심중에 다시 희망하는 믿음, 눌러도 다시 솟아오르는 믿음,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8-10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누가복음24:5-6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 가운데 계신 생명의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십자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아름다운 봄에 겨울철의 움추렸던 초목이 새싹을 내듯이 여러분의 심령에 믿음이 소생하고, 사랑이 용솟음치고, 기도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심령의 부활이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다시 살아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다시 살아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감사가 다시 넘쳐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송이 다시 생명력을 갖고,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기 바랍니다.

 낙심중에도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고통중에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호와 이레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오늘 이 아침, 이러한 믿음의 벅찬 가슴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축복이 온 누리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