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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의미 (눅 24:1-10, 고전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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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물론이요, 예수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실의에 빠지게 하였을 것입니다. 일터와 생업을 내버린 채 주님을 삼 년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의 실망과 낙담은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슬픔과 낙심 가운데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이 주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향품을 준비하였습니다. 연약한 여인들로서 무덤을 찾으려 한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믿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죽음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비통함과 슬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누가복음18:31-33
믿음은 말씀이 중심이요, 예수님이 중심이지 나의 감정이나 나의 기대가 아닙니다. 나의 감정만을 믿음의 중심으로 삼으면 감정이 식을 때, 믿음도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의 기대만을 믿음의 바탕으로 삼을 때,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나의 믿음도 낙심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낙심하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여인들은 자신들의 슬픔과 낙심이 너무 커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바로 곁에 와 계셔도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낙담한 두 제자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주님이 동행하며 말씀을 나누어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정이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낙심이 맑은 정신과 영혼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저들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낙심이 바뀌어서 소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바뀌어서 기쁨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단순히 인간 예수이거나, 훌륭한 선생님이 아니라 세상의 구세주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의 구주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겁쟁이요, 변덕쟁이요, 나약하여 늘 낙심하던 제자들, 여인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는 다시 사셨다!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구세주이시다!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렇게 신앙의 중심이요,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부활이 믿음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을 증거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부활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탄생이나 십자가의 죽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부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심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그 짧은 생애를 마치셨다면 오늘날 성탄절도, 교회도, 기독교 신앙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셨음이라.
고린도전서15:14-15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의심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② 죽은 사람이 살아난 일이 역사 속에 없었다.
그러나 과학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세상의 끝을 알아낸 적이 없습니다. 생명의 프로그램인 게놈의 구조를 알아냈다고 해서 생명의 본체를 알아낸 것도, 생명을 창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밖에 없다고 해서 있는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밖에 없어도 사실을 사실이요, 진리는 진리입니다.
주님만이 죽은 자를 살리셨듯이 주님만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만이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셨듯이 주님만이 생명의 주이십니다. 주님만이 십자가를 지신 대속의 양이 되셨듯이 주님만이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진리는 진리이기에 진리이지 확률에 따라서 결정되는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도착하였을 때, 무덤문은 터져 나갔고, 지키던 병사들은 도망쳤는데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에는 세마포가 가지런히 개켜 있었고, 머리맡과 발치에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놀람으로 여인들이 엎드리니 그 두 천사가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누가복음24:5-6
믿음은 부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여인들도 다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믿음은 부활 사건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여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은 인간적인 감정으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여인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다음에 변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믿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믿음이 되기 싶습니다. 성경말씀을 옛날 이야기로 알아듣거나, 주님의 말씀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성현의 좋은 말씀정도로 이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죽은 자를 찬양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생명의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오늘 여기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이해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돌보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고민을 아시며, 나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며, 나의 부족을 채워 주시며, 나의 허물을 용서하시며, 나의 손을 잡아 주시며,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부활의 믿음입니다.
부활절은 저기 2000년 전에 거기서 다시 사신 주님을 기념하는 기념절이 아닙니다. 여기 나의 삶 속에서 오늘도 부활하시는 주님을 믿는 것이 참 부활의 믿음입니다. 부활하시어서 오늘 내 삶 속에, 내 생활 속에, 나의 가정 속에, 나의 하는 일 가운데, 나의 미래 위에 함께 계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부활절의 의미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것이 부활절의 의미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정신으로 살 것을 명령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부활은 삶에 소망을 주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성도에게 절망은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의의 최후 승리를 보증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죽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몰라도 하늘은 잊지 않으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성도들은 어느 시대에나, 어떤 환경에서나,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신앙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낙심스러운 일을 만나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어떤 문제도 뚫고 나가는 위대한 힘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도요, 이러한 성도의 힘은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10
성도 여러분, 부활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부활정신으로 사십시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신앙,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부활정신, 육신의 질고도 이기고, 영혼의 아픔도 이기고, 물질의 궁핍도 이기고, 환경의 어려움도 이기고, 죄의 유혹도 물리치고, 부활하십시오. 주님 부활하셨듯이 여러분도 생활 속에서 부활하십시오. 날마다 새로와 지십시오. 고난을 이기신 주님처럼 여러분도 이기십시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입니다.

우중충한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지저분한 굼벵이가 매미가 되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말랐던 뿌리에서 백합의 미소가 피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어두운 모태에서 생명의 울음이 터지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사나운 소리가 들려도 너무 겁내지 말게 하시며
꾸지람을 들어도 너무 낙심하지 말게 하시고
바람이 분다고 아무데로나 끌려가지 않게 하시며
햇볕이 뜨겁다고 그늘만 찾지 말게 하시며
기왕에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지 말게 하시고
어둠이 덮여와도 외로워하지 않게 하소서
몽치가 다가올 때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던 주님
제자의 배반에도 위로의 시선을 던지던 주님
침뱉는 자들도 용서하시던 주님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던 주님

오, 주님,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내 가슴이 푸른 하늘이 되게 하시고
내 생각이 넓은 바다가 되게 하시며
내 영혼이 봄 동산이 되게 하소서.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를 영광과 승리로 바꾸신 주님의 부활의 은혜와 축복이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 위에 같이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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