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의 증거와 소망 (눅 24:13-23)

첨부 1


새 천년대에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좋은 소식은 주가가 올라가고, 경제가 회복되고, 남북정상회담이 성립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장래의 희망과 비전이 없으면 어떤 일시적인 성공도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이제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기 위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가서 이 소식을 전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맑고 밝고 환한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의 소식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믿고 전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에 부활하셨습니다(눅 24:1-6).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500여 명의 성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습니다(고전 15:5-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후에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성경 기록자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또 사도 바울, 야고보, 베드로, 유다 등 신약성경 저자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부활이 예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9-10)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의 무덤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비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구세주이시며, 나와 너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날줄과 씨줄과 같은 것입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천이 짜질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이는 기독교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시다.

지금도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는 곳마다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과 같이, 오늘의 서구 문명은 부활의 소식을 안고 가는 바울이 탄 배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1885년 부활주일날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고 발을 디딘 이후로 이 땅 또한 복음화 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4만5천 교회, 10만 주의 종, 천2백만 신자가 있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은 성령 충만할 때 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말씀했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상식이나 논리, 현대 과학으로 도저히 입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능력을 통해서만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믿음만이 부활의 생명과 능력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부활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예배는 마치 부패한 세상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뿜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의 종료는 일종의 선교 파송식과도 같은 것으로, 부활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세상에 나아가 부활의 소망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으로, 직장으로, 세상으로 가서 받은 사랑을 나누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활의 기쁨을 나눕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의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알고 있던 그 두 사람이 약 11km 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크게 낙심하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구약의 예언들을 설명해주시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떡을 떼어 주시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운동력 있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받을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와 명예와 쾌락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부활의 소식이 절대로 들려질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형벌만이 뒤따르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4-25)

예수님께서는 특정인에게만 기쁨을 주시지 않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다 기뻐하도록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성령세례 받고, 영혼육이 잘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부활의 소망을 가집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모두 소망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제일 큰 자산은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입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꿈이고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세주가 되실 수 없었습니다. 삼일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의 정복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청산하시고, 그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까지도 영원히 철폐하신 사건입니다. 부활은 절망의 황무지 속에서 소망의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죽지 않은 것이 부활이 아니듯이, 절망을 통과하지 않은 것은 진정한 소망이 아닙니다. 어렵고 부정적인 환경 가운데서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한편 부활은 새로운 실체의 경험입니다. 그것은 내세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현세의 변화된 삶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썩어져 가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 약하고 힘없는 사람,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어 줄 때,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더불어 행복하고 복되게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며, 소망이자 꿈입니다. 세상에 나아가 이웃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증인이 될 때,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 평화가 있는 나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나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깜짝 놀라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그 부활의 주님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과 더불어 연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희망과 꿈과 소망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