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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부활과 그 의미 (고전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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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천 년 전,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절망과 죽음의 굴레를 폭 파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부활주일이다. 본장 고전15장은 이른바 `부활장`으로서 사도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 전파 곧(케그리마)도, 거기에 따른 믿음, 곧(피스티스)도 헛 것이 될 것이 라고 했다.

 이처럼 바울 사도가 힘 있게 증거한 예수 부활사건은, 오늘 우리 모두 경 건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분명히 십자가에 죽어 장사된 지 사 흘만에 부활하심을 확실히 믿으며 또 고백구미 한다. 과연 기독교는 확신 으로 넘치는바 생명의 종교요, 또한 부활의 종교이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 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11:25)고 하셨다. 본문의 말씀을 통 해 주님의 부활하심에 대해 확신하기 바란다.

 1. 예수 부활은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아주 강하게 증거하고 있는데 그의 증거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째, 복음전파의 핵심이다.

 본문 1 절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 했는데 이는 바울자 신이 생명을 바쳐 전한 복음의 핵심이 3-4절에 말한 대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 이며, 장사된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부활' 이라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인 사실이다.

 예수의 부활하심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 같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서 결코 신화나 그 누구에 의한 조작설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5,8절에서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 곧 예수께서는 먼저 게바에게 그후에는 오백여 형제에 게 일시에 보이시고, 야보고에게 또한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고 맨 나중에 바울 자신에게 보여 주셨명莘고백했다. 예수의 부활은 소위 사상적 부활, 기절설, 도적설, 환상설이 아닌 분명한 신체적 부활이심을 성경은 밝히 말 해 주므로 예수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도 분명하다.

 2. 예수 부활의 능력은

예수 부활은 죄와 사망을 이긴 능력, 곧 무덤을 폭파한 위대한 능력이다.

 첫째, 구원의 능력이다.

 본문 2절에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죄와 사망을 이긴 능력은 곧 생명의 능력이요, 이는 곧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바 구원의 능력임을 말씀해 주심이다. 예수 부활의 능력! 이는 곧 생명의 능력이요, 능력인 것이다. 이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한 자는 어떠한 세력에서도 능히 이길 수도 견딜 수도 있다.

 둘째, 변화의 능력이다.

 본문 9-10절에서 바울 자신이 변화받은 사실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있다.

 자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자라고, 그런 자신이 주님의 사도가 되었음 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핍박자가 주의 사도가 됨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부활의 능력은 곧 위대한 변화의 능력이다.

 부활의 능력은 곧 성령의 능력으로 그 능력은 주의 부활하심을 가져다 주시 니 참으로귀한 축복인 것이다.

 세째, 봉사의 능력이다.

 본문 10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복음을 위한 그의 수고, 이 는 사명에 충실한 아낌없는 수고로써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참 미음의 경건한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신체적 부활과 그 부 활의 능력을 믿는다. 그 믿음이 오직 주의 복음과 교회를 위한 충성된 삶 으로 그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제 목:부활절 절 기:부활절 구 절:막 16:5-6

그는 다시 사셨다!

현대의 교회는 부활절은 부활절 때에만 생각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 이다. 우리가 부활과 내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부활절 때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부활의 신앙을 노해한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부활절 때에만 거의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우리는 주님의 날인 일요일의 기원을 잊어 버 린 것이나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유대 사람의 거룩한 날인 안식일은 하나 이 6일 동안 천지 창조하시기 위해 일하고 7일 만에 쉬신 것을 기념한 것이 지만 , 주님의 날인 일요일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 날인 것이다. 주 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부활이야말로 교회의 별자리 중에서 가장 큰 별이었다.

 부활은 모든 예배 및 모든 삶을 기초짓는 유일한 영광에 찬 사실이었다.이 중심적인 부활절 신앙, 곧 부활 신앙에 우리는 쉬지 않고 되돌아가야 할 것 이다.

 우리가 인생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부활절 신아,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 아 계신 주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라는 사실을 믿는다 면, 당연히 모든 삶은 그의 앞에서 운영되고 있다 것, 우리가 혼자는 절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리스도 없이 노력한다든가, 슬픔을 참 는다든가, 유혹에 직면한다든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등을 믿지 않을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맞대면할 수 있는 것은 부활절 신앙, 부활하여 지금 도 살아 계신 주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다.

 살아서 죽고, 그리고 또한 영원히 사시는 분, 죽음을 정복하신 분을 친구 로서 또는 동료로서 사귀는 것이 부활절 신앙이다. 이 세상의 생활에서 함 께 계시는 분은 죽음에서도, 죽음의 저 편의 생활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시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그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나 이 들어 병상에 누워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작가는 아버지를 깨우기 위 해 그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노인이 말하였다. "덧문을 열어다오.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게." 아들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햇살이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노인은 머리를 베개에 깊이 묻고서 숨을 거두었다. 죽음은 아침 해가 솟는 일이었던 것이다.

 부활절 신앙은 1 년중 어는 시기에만 생각하는 일 없이, 그리스도인이 그 것에 근거해서 매일을 살며, 근거해서 죽는 (그것도 다시 살기 위해 서지만), 그와 같은 신앙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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