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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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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칼 발트(K. Barth)는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본질"이라고 했고, 에밀 부른너(E. Brunner)는 "기독교는 부활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세상의 근본 질서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1.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두렵고 슬프기만 했던 죽음이 이젠 찬양과 감사로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내가 죽거든 우울한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밝고 경쾌한 개선 행진곡을 불러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준 은총입니다.

 2. 무덤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애굽 임금들의 무덤인 피라밋은 정말 엄청난 불가사이한 작품입니다.

그렇게 무덤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부활신앙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래세와 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생명이 한 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초연했고, 순교자들이 초연하게 순교한 것은 래세와 천국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살리셨고, 이른 새벽 무덤의 돌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황제들이,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저지하려고 안간 힘을 다 기우렸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언제 부활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어서 만날 수 있습니까 부활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엠마오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두 제자의 삶을 통해서 조명해 보면 됩니다.

 1.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 계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의 예수님은 익명의 낯선 사람으로 변장하고 제자들 사이에 끼어 드시어 동행하시고 계셨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주님을 만나려 하지 말고 평상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시시하고 형편없는 신앙의 길을 걸었던 엠마오의 두 사람에게 주님은 임재하시어 대화의 자리에 끼어드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우리의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삶의 현장 속에 주님은 관심을 갖고 지금도 익명으로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더디 믿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형편없는 제자들에게도 부활 주님은 그들 중에 끼여드시고 함께 계시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일상 속에 보이지 않지만 늘 함께 계심을 믿고 나가면 부활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촌에 이르러 제자들은 이미 날이 저물었기에 낮선 객을 "강권하여 유하시어 음식을 나누자"고 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 떡 떼며 사랑을 나누던 그 자리에서 두 제자들은 부활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나그네 속에 변장하신 그리스도를 보는데 심혈을 기우려 왔습니다.

아브라함도 나그네 속에 계신 하나님 발견한 사람입니다(창18장). 사르밧 과부도 나그네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한 여인입니다. 중세 신앙의 꽃은 나그네 속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씨스의 프랜시스는 문둥이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알고있다"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그 날 따라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거지에게 "형제여! 내가 마침 한푼도 가진 것이 없소. 정말 미안하오"하며 쑥스럽게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문제입니까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훨씬 더 값진 것을 받았어요. 선생님은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사랑을 받을 때 행복감에 빠지듯이, 사랑할 때 부활의 주님을 느끼게 합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에 어느 구두장이 한 분이 있었는데 늘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내일 네 집에 가겠다"는 겁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맛진 음식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기다리거나 반갑지도 않은 불청객 거지가 오는 겁니다. 또 한번은 청소부영감이 오고, 저녁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오는 겁니다. 세 사람은 모두 가난하여 추위에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구두방 할아버지는 이 세 사람이 불쌍하게 생각되어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맛진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습니다. 해가 저물도록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가서 세 번 다 잘 대접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마다 부활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형제의 얼굴속에는 부활주님의 광채를 발하여 친구의 마음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웃과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이 뜨겁게 역사되는 곳에서 부활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객이 되셨던 부활 주님은 선지자의 글을 비롯해서 성경의 말씀들을 풀어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의 가슴이 뜨러워지기 시작하면서 부활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연 사경회였지만 한 귀로 듣고 흘러내려가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말씀을 전해야 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말씀을 듣어야 거기에 부활 주님이 오십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는 성경의 각 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제자에게 "자기에 관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27절).

두 제자는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때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말씀에 뜨거워져야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 두 제자는 즉시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엠마오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매 순간 말씀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일상속에 와계신 부활의 주님, 사랑과 교제속에 끼여들고 계신 부활의 주님, 뜨거운 말씀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복된 심령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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