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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주님을 돌아보라 (시 편 130:1-8; 요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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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꺾고 부활하신 이 아침,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부 활의 기쁜 소식이 온 누리에 전파되어 죽음과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 습니다. 그가 왜 무덤을 찾아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한번 더 향유를 바르려고 하였는지, 아니면 존경하고 사랑하던 분 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무덤 앞에서 울면서 그를 생각하려고 왔었는지 모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한 때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이며 창녀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 앞에 나와 고침 받고 새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래서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그를 받들어 섬 겼고, 그의 교훈과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였던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골고다 언덕에도 마리아는 있었 으며, 안식일이 지난 첫 새벽에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 중에 그가 끼어 있 었습니다.

자기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삶을 완전히 새롭게 해 주신 예수 님은 마리아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예수님을 위해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 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믿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메시야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녀에 게 있어서 예수님은 존경의 대상이오, 자기의 모든 사랑을 바칠 그런 대 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청년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의 희망이요 삶 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있 어 이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렸고, 그의 모든 삶의 기쁨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녀의 모든 삶의 의미였던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를 알지 못한 채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평생을 예수님의 무덤이나 지키면서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 다. 그래서 그는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 니다.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다가 무덤문이 열려 있고 거기에 예수님의 시체 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뛰어가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베 드로와 또 한 제자가 와서 보고 돌아간 후 마리아는 그대로 무덤에 남아 무덤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 니다. 거기에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고 묻자, "누가 저의 주님을 가져갔습니 다.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의 시체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거기에 천사가 있었음에도 놀라지도 않았고,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없어진 예수님의 시체의 행방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자기의 뒤에 누가 서 있는 것을 느끼고 뒤로 돌아 섰을 때, 거기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계셨는데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만 알고 그에게 예수님의 시체의 행방을 물었던 것입니다. 철저하게 죽은 예수님에 대해서만 집착하고 있었던 마리아를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여!"

그 부르심에서 마리아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거기 서 계신 예수님 을 뵈옵게 된 것입니다. 죽은 시체를 찾던 마리아 앞에 예수님은 다시 사 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온 사건은 우리의 신앙의 삶에 반성과 새로운 빛을 던져 주고 있습니 다.

마리아의 잘못된 신앙

우리가 먼저 살필 것은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을 따르게 된 것은 그에게 병고침을 받고 나서입니다. 이 마리아를 비롯 한 몇 사람의 여인들은 공식적인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며 뒷 바라지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 할 사람으로 알고 따랐던 것처럼, 여인들도 예수님을 그와 같이 생각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물론 여인들은 제자들과 같은 어떤 정치적인 욕망을 가 졌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인간적으로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 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가 지닌 인간적인 매력과 그의 인격에 이끌 리어 그를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특별히 그의 병을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그를 따르며 사랑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에 그렇게 집착하였던 것도 인간 예수를 사랑하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하면서 그 복음을 담고 있 는 외형적인 요소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거기에 이끌리거나 거기에 반 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요인 가운데 다분히 인간적인 것들 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조상 적부터 믿어 왔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습관 적으로 교회에 나올 수도 있고, 교회당 건물이 마음에 들어서 나오는 사 람도 있으며, 혹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여가의 즐거움 을 얻을까 하고 나오기도 하며, 또 어떤 젊은이들은 이성을 사귈까 해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요소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복음의 본질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껍데 기들이 벗겨지고 복음의 핵심이 드러나 그 진리를 접할 수 있을 때 비로 소 우리는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열심히 찾았지만 끝내 그 시체는 찾지 못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사모하던 인간 예수의 껍데기는 영원히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인간 예수 의 껍데기에 집착하고 있는 한 우리는 끝내 그가 전하시려던 복음의 진 수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을 헤치고 들어가 서 복음의 핵심에 도달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 교회의 문을 들어설 때는 어떤 인간적인 관계나 요인들에 이끌려 왔다 할지라도 마침 내는 그것들을 벗어나서 진리를 발견하며 변함없는 진리와 더불어 참된 신앙의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의 하나님 아들 되심은 알지 못한 채 사람되심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전혀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리라 는 예상은 하지 못한 채 계속 그의 시체만을 찾았던 것처럼, 현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한낱 신화적 허구로만 생각 하는 까닭도 바로 예수를 한 인간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동시에 고백 하는 까닭은 그 양성(兩性)을 통해서만 비로소 대속(代贖)이 가능하고 부 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만을 믿는다면 그의 십자가도 부활도 한낱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지도 않을 것이고, 따라서 처음부터 부활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되심만을 믿는다면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부활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시며, 참 사람이심을 동시에 고백할 때 비로소 그가 온 인류를 대표하는 주님으로서 그가 지신 십자가가 대속의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 대속 함을 통하여 죄의 모든 값이 지불되면서 죽음의 문이 열리고 부활이 가 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적인 요소들에 매어 있는 한 우리 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신앙 자체가 흔들려 마침내는 불 신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적인 요소들은 자꾸 바뀌고 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아 알고 그 복음 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쁜 부활절 아침 우리가 집착했던 복음의 껍데기들을 버리고 부활하여 우리 앞에 계신 예 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발전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덤을 향하고 있는 마리아

다음으로 우리는 무덤을 향하여 울고 앉아 있는 마리아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미 죽어 버린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그 무덤에서 어떤 위로를 받으려고 하 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무덤은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덤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죽음을 넘어선 종교입니 다. 기독교는 이미 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는 종교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 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죄와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온 슬픔과 고통 때문에 울고,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 러나 오늘 우리는, 이런 죄와 죽음이 가져오는 고통에 압도되어 그 너머 에서 빛나고 있는 찬란한 흰옷을 입은 천사도 보지 못하고, 부활하여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도 뵙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 덤을 향해서 계속 울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무덤은 인류의 모든 죄와 죽음이 묻혀 버린 무덤입니 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인류의 죄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 무덤 을 향하여 울 것이 아니라 미련 없이 돌아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새 날 을 맞이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덤을 향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덤을 향한 그곳에는 희망이란 있을 수 없습 니다. 새로운 역사의 창조도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벽으로 느끼며 다만 거기서 통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죽음의 절망을 깨트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 늘 비록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이 우리의 죄를 기억나게 하고 우리로 절망케 하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압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 다. 우리에게는 다시는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리스 도에게서 극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덤과는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는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엎드려 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모든 무덤들을 다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 무덤에는 주검이 있을 뿐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기에 무덤은 아무 의미가 없습 니다. 이제 우리는 무덤을 향하여 울던 울음을 그쳐야 하겠습니다. 그리 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마리아

무덤 앞에서 울던 마리아는 그 등뒤에 서 계신 주님을 뵙지 못하였습 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서서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비로소 그가 찾던 예수 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시체를 찾았으나 시체가 아닌 살아 계 신 주님을 뵈옵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마리아가 찾던 주님은 아닙니다. 그는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며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가 아니라 영광 받으신 예수, 하늘에 들리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으로 마리아 앞에 서 계신 것입니다. 죽음에 압도당하지 아니하시고 그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무덤을 향하여 울고 있었던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는가 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의 슬픔이 공연한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부끄러 웠을 것입니다. 그는 기뻐서 단숨에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하였 습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이제까지 가졌던 그의 껍데기 신앙 이 변화하여 참 신앙이 되었고, 그의 슬픔이 변하여 참 기쁨과 희망이 되 었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은 우리 가까이 계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무덤 을 향하여 울고 있는 한, 예수님의 껍데기인 시체만을 찾고 있는 한 우리 는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 다. 여러분이 당한 고난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만난 슬픔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모든 고통과 죄와 아픔을 담당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가까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빠졌던 슬픔과 고난과 번민에서 벗어나 가까이 와 계신 부활의 주님을 돌아봅시 다. 막달라 마리아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여인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 은 그 여인을 따로 만나 주셨습니다.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나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주님은 기억하시고 나를 따로 찾아오시는 것입니 다. 그는 내가 울음을 그치고 그의 음성을 듣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 다. 우리가 당한 고난에 압도되거나 잘못된 신앙에 현혹되어 가까이 계신 주님을 뵙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무덤을 향하 여 울고 있던 자리에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부활의 주님이 우리 에게 참 기쁨과 소망을 주시려고 서 계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뵈올 때 이제까지의 모든 근심과 슬픔이 사라질 것입니다. 절망이 사라지고 새 희 망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이 나올 것입니다. 기쁨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이제까지 마리아 같은 신앙이 아니 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시체나 찾으며 무덤을 향하여 울고 있는 신 앙이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시다. 진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껍데기들을 벗겨 버리고 그 진리를 만나며 거기서 참된 신앙을 이룩해 가시기 바랍 니다. 동시에 우리 앞에 닥친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가까이 와 계신 부활의 주님을 돌아봅시다. 그는 우리의 모든 슬픔을 위 로하시며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 로 날마다 새로운 삶의 기쁨과 희망이 여러분들 속에 넘쳐 나시기를 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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