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하신 예수님 (마 28:1-10)

첨부 1


부활주일을 맞이한 우리 성도들과 가정 위에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의 부활은 큰 기쁨을 주었다.
주님께서 부활을 예고하신 안식 후 첫날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이미 주님은 부활하신 뒤였고 천사들로부터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무서움과 기쁨으로 그곳을 떠나 이 엄청난 기쁨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다고 했습니다(8절).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천사들로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놀랍고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부활절에 성도들의 가정과 개인들께 주님 부활하심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장차 고난 당하실 것과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16:21,막 8:31, 눅 9:22, 요 2:19).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의 구원을 선언하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죄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죽음의 문제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 즉 우리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새 생명의 창조의 역사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대답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새로운 의미의 생활을 하게 되며 이것이 부활신앙의 윤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내세관 역시 부활신앙 위에 있습니다. 내세가 있기에 부활이 있고 부활이 있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사람을 이기고, 거짓을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어떤 생활 환경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이며,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우리도 반드시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유대 나라 베들레헴 말구유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자 마자 헤롯 임금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해야 했습니다. 30세가 될 때까지 가난하고 천대받는 목수의 아들로 자라면서 일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높은 관직을 가진 적도 없고, 큰 도시에 나가서 입신양명할 기회를 엿보신 적도 없습니다. 태어난 곳으로부터 200 마일 이상을 여행하신 적도 없습니다. 육신의 형제들도 그를 멀리 했고, 가까운 제자들 마져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예수님을 수 없이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다른 제자들은 다 그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께 억울한 누명을 씌워 갈보리 산으로 끌고가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뒤짚어 씌운 죄목은 1)그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요 18:33, 19:2, 눅 23:2)
2)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요5:18, 2

5. 19:7)
3)그가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 8:53-59, 10:33)
4)그가 백성을 미혹하여 반란을 선도하는 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눅 23:2)
5)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눅 23:2)
그러나 이것은 조작이며 억지로 뒤집어 씌운 죄이다.
벧전 2:22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즉 그는 `의인이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
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요 1:29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은 세상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두 강도와 함께 못 박히셨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절규 하셨습니다. 운명 하실때에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2
백부장과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군병들도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요 19:33)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동산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몇 차례 `내가 죽은 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역사 속에 인간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
셨습니다.

첫째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왕의 보좌를 버리시고 천민의 자리에 내려 올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둘째로,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 신 고난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셋째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온 부활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인류최대의 충격적인 소식이며 극적인 소식을 천사들이 전해주었습니다. 천사들이 전한 메시지는 ①`무서워 말라'라는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②부활의 소식이었습니다. 부활의 소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되고 현장을 통해 증거 되어졌습니다.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부활이 입증됩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리 주님은 부활의 약속을 책에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봄에 자라나는 나무 잎에 마다 쓰셨다'
피어나는 버들잎, 노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꽃 속에서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알 수 있습니다. 생명 있는 씨앗은 굳은 땅을 헤집고 새싹이 튀어나오듯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무덤을 여시고 일어나신 것입니다. 죽음 저 너머에는 영화로운 부활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상상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허다합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인류최대의 적은 `사망의 폭군이다' 인류사회는 이 사망의 폭군의 장난으로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저 북망산의 첩첩히 쌓인무덤을 보라 고관대작, 영웅호걸, 절세미인... 다 사망의 폭군의 채칙에 휘몰려 음부에 가고 말지 않았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이 폭군을 이기셨습니다. 할렐루야 !

[

199

9.

4.

4. 주일 새벽예배

본문:고전 15:1
주님의 부활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첫째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중생한 새 사람이며 열심과 충성이 뛰어난 여성입니다. 주님의 지체에 빠른 행동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부활의 날 새벽에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열성적인 성도입니다.
그가 완전한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러한 마리아에게 성스러운 모습을 제일 먼저 보이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의 주님은 마리아처럼 충성하고 열심있는 오늘의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한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락방에 숨어있는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적대감정을 갖고 있는 유대인―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들이 두려워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 가운데 부활하여 오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죽음의 공포와 사업상의 불안과 온갖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주님은 바로 그들의 공포심과 두려움을 쫓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셋째로, 주님은 도마에게 보이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의심, 불신, 회의의 대표자입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은 의심과 불신과 회의의 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에게 "서로 신뢰하라." "나를 믿는 자가 되라"고 격려하십니다.

넷째로,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보이시며 동행하셨고, 말씀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자 절망을 자인하며 실패를 선언하고서 낙향길에 있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핍박당하다 보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가난하다고 못생겼다고 못배웠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체념하며 숙명론자로 전락됩니까 그러나 누구든지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절망했던 엠마오 길을 박차고 일어나 희망의 예루살렘을 향해 부활의 아침 햇살을 가르며 줄달음쳐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대면하셨습니다.
"소자들아 고기가 있느냐" 옛 생활로 돌아갔으나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여 기진맥진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요깃거리를 준비해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옛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오셔서 스스로 버렸던 사도직을 다시 맡기셨던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귀중한 직분을 포기하고 옛 생활로 되돌아 간 탕자같은 사람에게도 스스로 찾아오십니다.

또한 부활의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주 안에서
사는 자들의 소망이 되십니다.
이처럼 주안에서 죽은 자들에게나 충성스러운 성도에게나 불안과 공포에 의심과 불신에 절망과 체념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리고 부끄러운 옛 생활로 타락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부활하신 주님은 치솟는 희망과 벅찬 기쁨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