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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장 강해6 (고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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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영적인 사랑에 대해 증거하면서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의 뜻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라는 말 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전을 보면 자랑이란 '자기의 일이나 물건을 드러내어 떠벌리는 것'이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또는 자 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 지만 만일 그 자랑거리가 자기와 상관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자랑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다 른 사람에 관계되는 자랑에는 오히려 인색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부끄러운 일인지요. 물론 자랑 한다는 자체도 무익한 일이지만, 나를 자랑하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좋은 일도 드러내어 자랑하기를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랑하는 것이 이렇게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사람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안에 이생의 자랑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 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자랑을 절 제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에 이생의 자랑이 있는 이상은 언젠 가는 은연중에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들을 때 얼른 비교해 보아서 무엇인가 자기 가 남보다 더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남에게 드러나고 알려지기를 바 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만일 그것 이 육에 속한 것이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고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왜 냐하면 그것은 지나고 나면 결국 헛되고 헛된 것일 뿐, 결코 영원한 생 명이 되지 못하고 멸망을 자초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요, 오히려 다 른 사람의 시기와 질투심만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 구나 이생의 자랑이란 하나님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육의 세상, 즉 어둠의 세상, 마귀로부터 좇아 온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 왕이라 해도 전도서 1:3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 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국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 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며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낱 안개와 같이 사라질 헛된 것들을 내세워 자랑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우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때로는 오히려 자랑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했으니 세상적인 자 랑이 아닌 주 안에서의 자랑은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의 자랑은 곧 나를 위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기 위한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의 자랑이란 자기 자신 의 변화된 모습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랑을 말합니다.

즉 보잘것 없는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티끌만도 못한 나를 통해 역사 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위에 영광의 꽃을 피우게 하신 하나님을 마음 껏 자랑하며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의 자랑은 참으로 값 지고 아름다운 일이지요.

물론 주 안에서의 자랑도 무턱대고 함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혹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직 마음 속에서 이생의 자랑을 벗어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악의 모양인 것입니 다. 은근히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자랑은 설령 그것이 주 안에서의 자 랑처럼 보인다 해도 결국은 사단의 송사를 받게 되니 상대방에게 믿음 과 은혜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습 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는 속일 수도 없고 반드시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선악간에 다 드러나 부끄러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도우심으로 이런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라고 간증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상대에게 은혜를 끼치며 믿음과 생명을 심 어 줄 수있는 것입니다.

 2.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교만이란 자기 스스로 잘난 체하여 뽐내고 방자한 것을 의미합 니다. 즉 겸손과 반대되는 것이지요.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제일이기 때 문에 자기 뜻만 앞세우려 하고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받아 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 누구는 상대하지 못하겠다. 나와 생각이 안 맞으니까 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하며 어찌하든지 자신 을 상대와 구별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자기밖에 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독선적인 사람, 타협이 없고 남을 관용해 줄 수 없는 사람, 자기 의 말은 굽히지 못하는 사람, 자기의 말만 옳고 남의 말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 등이 다 교만한 사람에 속하지요.

잠언 16:18-19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 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마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고, 잠언서 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했 습니다. 마태복음 23:1 이하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바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 아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이 나옵 니다.

그래서 육의 사람들이 자기가 높아지려고 해서 높아졌을 때 결국은 교 만하여지고 패망의 선봉이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지요. 그 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웃어른을 섬길 때나, 동료를 섬길 때, 어린 소자를 섬길 때나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동일한 섬김의 마음을 가지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교만은 크게 육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 다. 먼저, 육적인 교만이란, 눈에 띄게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고 남을 무 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이런 육적인 교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점점 믿음이 자라면서 이런 육적인 교만은 대부분 빨리 벗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주 단단한 사람은 이러한 육적인 교만도 버리 지 못하고 목을 세운다거나 어깨에 힘을 준다거나 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육적인 교만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영적인 교만이란 자신이 말씀을 들어서 안다고 하는 것으로 상대를 지 적하고 정죄하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자신은 자기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정당하게 시비를 가리고 진리를 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악을 행하고도 잘못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즉 자신이 교만하면서도 교만한 줄을 모른다는 말이지요. 이런 상태를 눈 에 드러나지 않는 교만이라 해서 영적인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교만하면 자신이 안다고 하는 것으로 원수를 맺고, 상대를 비방하고 헤아리며 상대를 낮추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믿음 가운데 살다가도 누가 죄를 짓기라도 하면 스스로 재판장이 되 어 금세 그를 정죄하고 폄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은 더욱 큰 악을 행하면서도 그 악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이 육적인 교만보 다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대를 비방하지 말라 하셨고(약 4:11),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마 12:36)하신 말씀을 명심하여 악한 말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영적인 교만은 어떠할 때 틈타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 신이 남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되거나 영의 세계를 조금 맛보았다고 인 정될 때 틈타기 쉽습니다. 영계는 끝없이 넓은 무한대의 세계인데 영적 인 교만이 틈타게 되면 영계의 문턱에서 안주해 버리게 됩니다. 즉 말 씀을 듣고도 계속해서 행치 않거나 끊임없이 불순종해 나갈 때 생기는 신앙의 정체현상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6을 보면 주님께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말씀을 듣고 쉽게 흘려 버림으로 더 이상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미지근한 신앙 은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교만 하면 신앙이 정체되어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 버리니 쓰임받고도 결국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교만이 이러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항상 두렵 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결되기 전에는 영적으로 교만해질 수 있는 무서운 죄 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죄성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은 매우 중 요합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를 알아갈수록 우리는 더욱 삼가 조심하여 오로지 겸비함으로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으니 지식과 경험의 유무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서로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피차 섬김의 본 을 보임으로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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