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로 열린 역사의 지평 (요 20:19-29)

첨부 1


부활 주일 아침에 먼저 두 팔이 없이 태어난 스웨덴 태생의 중증장애인이며 수영선수요 가스펠 싱어인 레나 마리아(Lena Maria)에 관해 발췌한 기사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설경이 눈부셨다. 그녀는 단위로 오르면서 자꾸 눈을 깜빡거렸다. 바람이 불자 헐거운 듯 옷자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라올림픽(장애자올림픽) 개막식이었다. 장애자들의 올림픽. 성화대에 점화가 되자 불꽃은 눈빛보다 더 환하게 타올랐다. 그녀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그동안의 일들이 눈앞을 스쳤다. 이 자리에 자기 이름으로 서기까지 가족들이 겪었던 일, 자기가 당했던 일, 그리고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러자 읍-하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혀를 깨물고 참았다.

잠시 후 그녀는 힘들게 한 걸음씩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빛나는 날을 바라볼 때...'
그것은 삶의 노래였다. 감사의 노래이기도 했다. 폐부를 찌르는 듯 싸한 공기가 장내에 가득했다. 내면 깊숙이 숨겨둔 감사의 말씀이 꽃망울 터지듯 하나 하나씩 솟아나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노래를 부르다 말고 자꾸 하늘을 보았다. 지금껏 늘 빛나는 자리로 이끌어 주신 그분의 미소가 그녀의 가슴으로 다가왔다. 감사, 감사합니다. 신음처럼 그녀의 입에서 한 단어가 튀어 나왔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그녀의 몸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팔은 흔적조차 없고 그나마 한쪽 다리는 다른 다리의 반밖에 안되는 것을, 그런 중증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르는 노래는 평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그녀의 이름은 레나 마리아, 스웨덴 태생의 가스펠 싱어였다."

레나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장애아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순간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얼마동안 그 아이를 부모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간호원이 다른 곳에 갔다 두었던 아이를 포대에 싸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습니다. 어머니가 포대에 쌓인 아이를 넘겨 받아 포대를 젖혔을 때 그 속에 있는 아이는 두 팔이 없었고, 한쪽 다리는 다른 다리의 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두 부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한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부인은 나즈막한 목소리를 토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이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까르르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의 웃음을 본 부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키우면 돼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로 우리가 키워요."
부인은 미리 지어두었던 이름대로 아이 이름을 레나라고 했습니다.

그 후 생의 의욕이 강한 레나는 발로 글쓰는 것을 배웠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 살 때부터 어머니는 레나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고운 목소리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국왕의 도움으로 국제성서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레나의 삶은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며 대중 앞에서 가스펠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다큐멘타리로도 방영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는 함께 가스펠을 부르는 팀의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때때로 자신의 비참한 몸뚱아리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하나님은 약하디 약한 자신을 들어 사람들에게 부활의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나는 하나님의 도구이자 사랑의 메신저였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 절망, 슬픔을 없이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삶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어 운명하고 무덤에 장사된 후,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던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은밀히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의 방문은 행여나 밖에 알려질까 하여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라" 하시며 못자국이 있는 그의 손과 창 자국이 있는 그의 옆구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사실에 놀라며 기뻐했습니다.
예수께서 놀라는 제자들에게 다시 평강의 기원을 하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며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예수님을 만나뵌 이야기를 했을 때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예수님 손의 못자국을 보며 자기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자기 손을 예수님의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었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평강의 문안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그의 손과 옆구리를 내보이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의 저자와는 달리 예수님의 부활 기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이 당황하며 기뻐하였다는 것,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을 때 문이 굳게 닫겨 있었다는 것, 제자들에게 그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기사에서 닫혀진 현실과 새롭게 열려진 부활의 현실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급적이면 오래 장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과 더불어 질병, 고통, 전쟁, 죽음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몸도 흠이 없는 몸으로 보존해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흉터라도 그것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악을 없애지 않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변형시켜 놓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중단시키지 않으시고, 부활이 있게 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예수의 역사는 모두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생이 죽는 것으로 모두 끝난다고 생각한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 오고 있는 통상적인 신념이며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인간적인 통념으로 생각할 때 그의 생은 불행 그 자체였습니다. 그에게 불행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는 장애로 인해 그 삶이 죽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넘어선 새로운 삶이 있었습니다. 그 새로운 삶은 성형수술로 손과 발을 정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로이지만 그에게는 새 생명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불행도 꺾을 수 없는 새 삶 그것입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성형수술로 이루어진 외모가 아닙니다. 심히 손상된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 새 생명의 아름다움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전해주는 부활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무덤. 그것이 인생, 역사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 새 삶, 새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굳게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는 제자들의 시선은 십자가에서 절규하며 운명하신 그들의 스승 예수의 모습,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묘지에 안치된 그의 시신, 큰 돌로 굳게 닫혀진 무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비굴했던 그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돌로 굳게 닫혀진 무덤 외에 다른 미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그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절망의 상황에 있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 역시 지금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그 현실 너머 다른 새로운 현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동료 제자들이 예수를 보았다고 했을 때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는 물론 도마까지도 그들이 믿고 있던 믿음 넘어서 새로운 믿음의 세계가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자국, 옆구리의 창자국은 제자들이 굳게 믿어왔던 그들의 역사며, 생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에게서 그것이 아닌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후부터 그들의 삶은 부활의 증인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새롭게 열려진 삶에 대한 희망, 기쁨은 용암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분출될 때 그것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역사 밑바닥에 그러한 새 생명의 용암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 것과는 다른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종국에 그 역사가 승리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의 손과 발의 못자국, 옆구리의 창자국은 예수님의 몸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생에서 우리가 경험해 가고 있는 죄의 고통, 절망, 죽음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를 볼 때 그러한 것들을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어둠, 절망의 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으실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의 몸에서 보게 됩니다.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레나 마리아의 몸은 이 현실에 그가 갖고 태어난 고통스러운 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적인 몸에서 부활의 새 삶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할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몸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어떻게 그러한 절망 가운데서 발로 피아노를 배우고, 글 쓰는 것,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기술적인 것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힘이 무엇이냐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러한 불가능한 삶이 지금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신앙고백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무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무덤을 넘어서 오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두 주간 동안 그 새로운 현실을 내다보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훈련을 했습니다. 슬픔과 절망이 있는 현실, 고통과 아픔이 있는 현실, 어둠과 죽음이 있는 현실에서 새 생명을 가진 삶, 즉 희망과 기쁨, 사랑과 화해의 현실을 살아가는 길을 익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손과 발, 옆구리를 내보이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당하고 있는 슬픔, 절망, 어두움, 죽음을 없애주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넘어선 다른 영원한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그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그 새로운 부활의 삶에 맞춥시다. 만약 무덤에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맞추면 우리의 생은 닫혀집니다. 닫혀진 생은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은 무덤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덤을 넘어선 영원한 생이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